몇 달 전에 어떤 행사에서 선물로 받은 호주 와인이 하나 있었는데 그동안 신경 안 쓰고 한구석에 박아 놓고 잊어버리고 있었지요. 아참, 그게 있었지 하고 오늘 꺼냈습니다. 요즘 들어서 와인이 장사가 된다니까 대기업들까지도 와인 수입에 뛰어드는 판인데, LG도 뛰어들었네요. 트윈와인이라는 LG상사 계열 회사에서 수입한 와인입니다. 하여간 문어발 재벌들...

예전에 가끔 얘기했던 적이 있는데, 신대륙 와인에 선뜻 손이 가지 않는 이유는 개성이 부족하고 좀 그게 그거 같다는 느낌 때문입니다. 그동안 당해 본 경험에서 나온 편견이랄까요? 지역이나 품종을 넘나들면서 항상 비슷비슷한 느낌이 있다 보니까 질란다 이거죠. 와인을 좋다-나쁘다, 이런 개념으로만 본다면 모를까, 각자가 간직한 캐릭터를 소중히 여긴다면 역시 썩어도 유럽이라는 편견이 깊숙하게 박혀 있지요.




이 와인을 맛본 결과, 역시 그 편견을 흔들어주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좋다-나쁘다, 이런 기준으로 본다면 '좋다'는 부류에 넣을 수 있습니다. 무척 농도가 짙고 묵직하게 한 방 때리는 헤비급 펀치력이 있습니다. 카베르네 소뷔뇽으로 만든 와인이고 잘 만들어 낸 와인인 만큼 맛에서나 향에서나 색깔로 표현한다면 검은색 그 자체라 할 수 있습니다. 블랙커런트를 위주로 한 과일향, 그리고 매캐한 연기 같은 향이 짙게 피어오릅니다. 맛에서도 역시 나무 태운 듯한 느낌, 진하게 뽑아낸 커피가 무척이나 쓰고 무겁게 혀를 누릅니다. 집중력도 있고 중후한 멋이 있습니다. 토대가 튼튼하고 잘 숙성된 모습입니다. 겉으로는 좀 거친 듯합니다만 속이 텅 비고 겉으로만 덤벼드는 스타일이 아닌, 잘 단련된 중량급 권투선수와 같은 느낌이지요.




시간이 지나면 와인잔 속의 공기는 초콜릿과 함께 시원한 민트와 허브향으로 발전합니다. 입 안에서는 좀더 산미가 도드라집니다. 생각보다 탄닌은 많이 나오지 않습니다만 혀에 달라붙는 느낌은 좋습니다. 곱고 매끄러운 느낌이라기보다는 태운 나무숯이 혀의 수분을 빨아들이는 느낌이랄까요?

이렇게 보면 좋은 와인이라는 데에는 이견을 달 여지는 없어 보입니다만, 뭐랄까 우아하고 섬세한 느낌이 강하고 쓴 느낌에 눌려서 기를 펴지 못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균형감 부족이랄까요. 좋긴 한데 재미있지는 않습니다. 사람도 그렇죠. 확실히 예쁘긴 한데 확 호감 가고 재미 있고, 그렇지는 않은 사람이 있는가 하면 좀 덜 예뻐도 호감 가고 같이 얘기하고 데이트하고 싶고, 그런 사람이 있듯이 말입니다. 빈티지는 2003인데 아직은 기가 세다는 생각이 듭니다. 2-3년 쯤 더 숙성한다면 누그러지고 좀더 우아한 느낌이 살아날 수도 있겠다, 싶기도 하네요.
  • produced by: Wingara Wine Group Pty Ltd.
  • grape variety: Cabernet Sauvignon
  • region: Coonawara
  • alchol: 14%
Posted by MP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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