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무척이나 큰 관심을 끌었던, 그만큼 걱정도 많았던 싱가포르 그랑프리가 드디어 그 첫 발을 내딛었습니다. 한밤에 시가지에서 불을 휘황찬란하게 밝히고 벌어지는 F1 사상 초유의 야간 레이스. 당연히 이 역사적인 레이스에서 우승을 차지하려고 군침을 흘리는 드라이버들이 많았습니다. 물론 챔피언십이 막바지로 치달으면서 챔피언 후보라 할 수 있는 드라이버들은 더 말할 나위도 없습니다. 과연 그 영광을 차지한 인물은?

올해 유난히 뜻밖의 결과가 많았던 시즌입니다만 다시 한번 파란의 레이스가 벌어졌습니다. 그럼 싱가포르의 밤거리를 수놓았던 각본 없는 반전 드라마를 지금부터 따라가 볼까 합니다.




정말 풍경 하나 만큼은 일품입니다. 사실 싱가포르 그랑프리가 야간에 벌어지는 이유는 물론 멋진 볼거리를 제공하는 것도 있지만 아직은 F1의 주요한 시장이 유럽이기 때문입니다. 통상 규정에 따라서 경기를 현지 시각으로 오후 2시에 개최하게 되면 유럽에서는 아침이 되는데 이렇게 되면 유럽에서는 중계 흥행이 떨어질 수밖에 없지요. 그래서 야간에 개최함으로써 유럽의 낮시간과 맞추는 겁니다. F1 총수인 버니 에클레스톤은 호주에 대해서도 야간 레이스를 하지 않으면 개최를 계속 보장할 수 없다고 위협하는 분위기입니다.




트랙 구성을 보면 그 꼬불꼬불하기 그지 없는 모나코와 비교하자면 좀 단순해 보입니다. 직선이 죽죽 그어져 있고 그 사이사이에 한번씩 요동을 치는 구조입니다. 하지만 루이스 해밀튼의 말에 따르면 모나코보다도 더 힘든 것 같다고 합니다. 일단 브레이크와 타이어에 상당한 부담을 주는 면이 있는 데다가 날씨가 덥고 습도가 높아서 드라이버로서는 죽을 맛이겠죠. 5km가 약간 넘는 서킷이지만 랩 타임을 보면 장장 7km인 벨기에보다도 더 늦습니다. 레이스 전체 바퀴 수가 벨기에는 44, 이곳은 61이니 혹시 비가 오거나 세이프티 카라도 몇 번 나오는 날에는 전체 바퀴 수를 다 소화하기도 전에 2시간 제한에 걸릴 수도 있을 듯합니다.





대부분 드라이버들이 소프트-수퍼 소프트 타이어 중에서 소프트를 선택하고 포메이션 랩이 시작되었습니다. 사실 싱가포르의 날씨가 계속 비를 예보하고 있어서, 야간 레이스 + 시가지 레이스 + 웨트 레이스라는, 증권시장으로 말하면 '트리플 위칭 데이(세 마녀의 날)'가 될 뻔한 싱가포르 그랑프리였지만 다행히 경기가 열리는 시간 만큼은 트랙은 멀쩡했습니다. 해밀튼 말로도 "비는 오전에만 오는 것 같다. 일어나 보면 땅은 젖어 있어도 비는 그쳐 있더라"고 한 걸 보면 나름대로 날씨 운은 괜찮았던 것 같습니다. 특히나 폴 포지션과 세 번째 그리드를 차지해서 오래간만에 예선에서 좋은 성적을 거뒀지만 빗속 레이스에서 약점을 보여 왔던 페라리로서는 다행스러운 일입니다. 포메이션 랩 때 기상 예보 역시 레이스 동안에는 비가 오지 않을 것이라고 합니다.




또한 이렇게 되고 보니 소프트-수퍼 소프트 타이어가 제공되는 싱가포르에서는 밤에도 여전히 더운 날씨이기 때문에 소프트 계열 타이어에서 약점을 보이는 맥클라렌보다는 잇점을 많이 안게 되었습니다. 벨기에 그랑프리에 관련된 루이스 해밀튼의 항소가 기각되어서 벨기에 우승을 확정한 마사로서는 선두 해밀튼과 포인트 차이는 단 1점. 이번 경기에서 우승을 차지한다면 해밀튼이 2위를 하더라도 드라이버 챔피언십 순위가 역전됩니다. 물론 3위에 있는 키미 라이코넨 역시도 챔피언십은 거의 힘들어졌지만 싱가포르에서 우승을 차지한다면 실낱 같은 희망을 다시금 키워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 둘 사이에 낀 해밀튼은 초조할 노릇이지요. 선두는 마사에게 빼앗긴다고 해도 격차를 최소화해서 맥클라렌에게 유리한 면이 있는 일본과 중국 그랑프리에서 재역전을 노려야 할 것입니다. 이미 팀에서는 앞지르기가 무척 어려운 데다가 코스에서 벗어나면 그대로 방호벽을 들이 받기 쉬운 이곳 시가지 서킷에서 "위험 부담을 안지 않겠다"고 말한 바 있습니다.





드디어 역사적인 F1 사상 첫 야간 레이스가 시작되는 순간입니다. 마사가 기세 좋게 선두로 치고 나가고 해밀튼이 그 뒤를 따라갑니다. 키미가 해밀튼의 뒤에 붙어셔 역전을 노려 보지만 여의치 않습니다. 일단 1위부터 4위까지는 예선 성적이 그대로 유지됩니다. 별 사고 없이 무난한 출발입니다.





한편 5위였던 헤이키 코발라이넨은 제대로 자리를 잡지 못하고 7위까지 밀려납니다. 반대로 연습 주행 내내 페이스가 아주 좋았지만 2차 예선에서 머신 트러블로 15위로 주저앉은 알론소는 번개 같은 출발로 12위까지 올라옵니다. 코발라이넨으로서는 자꾸 출발 때 순위를 많이 까먹는 일이 되풀이되는 게 올 시즌 아킬레스건이 되는 듯합니다.




한 바퀴를 돌았습니다. 일단 선두 마사가 좋은 페이스를 보이고 있고 루이스 해밀튼도 1.3초 안팎으로 많이 처지진 않았습니다. 키미는 약간 간격이 벌어져 있는 모습입니다. 아직까지는 드라이버 사이에 격차가 많이 벌어지진 않았습니다만 앞지르기가 어려운 이곳에서는 느린 차량이 연료를 가볍게 실었거나 해서 예선에서 성적이 좋았다면 그 뒤에 더 빠른 차량이 있어도 발이 묶여서 한참 뒤처질 것 같습니다.





포인트권은 아닙니다만 9위부터 12위까지 경쟁이 무척 치열합니다. 9위에는 토요타의 야르노 트룰리가 있고 그 뒤를 윌리엄스의 니코 로즈베르크가 바짝 뒤쫓고 있습니다. 약간 간격을 두고 니코의 팀 동료인 나카지마 카즈키가 달리고 있고 바로 뒤에 르노의 페르난도 알론소가 있습니다. 한편 해밀튼은 두번째 바퀴에서 가장 빠른 랩 타임을 기록합니다. 비록 마사를 이기지는 못해도 일단 2위만 확보해서 챔피언십 선두가 마사에게 넘어가도 1점 차이니까 남은 경기에서 역전을 노려볼 수도 있겠죠.





드디어 10위 니코가 트룰리를 공략합니다. 왼쪽으로 치고 나가서 앞지르기에 성공합니다만...






인코스를 파고 들다 보니까 각도가 나오지 않아서 제 라인을 타지 못하고 트랙 바깥으로 살짝 이탈합니다. 그 틈을 놓치지 않고 트룰리가 다시 튀어 나와서 자리를 되찾습니다.





기록을 보면 니코가 확실히 페이스가 좋습니다. 2 섹터에서 트룰리보다 처지는 건 앞지르기를 성공하는 듯했다가 실패했기 때문입니다. 더 문제는 선두 마사와 랩 타임 차이가 무려 한 바퀴에 5초가 나고 있다는 점입니다. 트룰리의 토요타가 페라리보다 많이 처지는 데다가 뒤에서 기회를 노리는 니코를 트룰리가 견제하다 보니까 심한 격차가 나고 있는 것입니다.




한편 나카지마도 알론소에게 계속 압박을 받고 있는 판입니다. 역시 압박을 견디기는 쉽지 않은지, 코너에 들어설 때 너무 브레이크를 늦게 잡아서 타이어가 심하게 잠기는 모습입니다. 흰 연기를 많이 내뿜었지만 그래도 알론소를 가까스로 막고 있습니다.




한편 다섯 바퀴 째 기록을 보면 마사가 확실히 해밀튼을 뿌리치고 선두를 지키는 모습입니다. 초반에는 마사와 대등한 듯했던 해밀튼은 처지는 분위기입니다. 키미는 아직 힘을 못 쓰고 선두와 8초대까지 격차가 벌어져 있습니다. 분위기를 제대로 타면 막을 자가 없는 마사, 이번에도 역시 시가지였던 유럽 그랑프리(발렌시아)처럼 해밀튼에게 완승을 거둘까요?






그런데 트랙 위에 뭔가가 떨어져 있는 게 보입니다. 다른 차량에서 떨어져 나온 파편인지, 밖에서 누가 던지거나 날아온 것인지는 몰라도 아무튼 포스트에서는 황색 깃발이 나가고 마사는 급하게 이를 피합니다. 뒤따르는 차들도 잘 피해 갑니다. 하지만 결국 마크 웨버가 이를 밟아서 파편이 튕겨져 나갑니다. 웨버의 차량에 별 일이 없는 걸로 봐서는 크게 위험한 건 아닌 모양입니다.




그건 그렇고, 확실히 해밀튼이 마사에게 처지기 시작합니다. 소프트 타이어가 과열되어 오버스티어가 나는 문제가 역시 발목을 잡는 듯합니다. 꽤 처져 있었던 키미가 슬슬 피치를 올리기 시작하면서 해밀튼은 그야말로 샌드위치 신세가 되어 버린 셈입니다. 과연 버텨 줄 수 있을지...





한편 니코 로즈베르크는 드디어 트룰리를 제치는 데 성공합니다. 타이어를 태우면서까지 브레이크를 늦게 잡으면서 가까스로 트룰리보다 먼저 코너를 빠져 나가는 데 성공합니다.







니코를 잘 잡았지만 결국 자리를 내어 준 트룰리. 이제는 진이 빠졌는지 니코와 비교하면 너무나 쉽게 나카지마와 알론소에게 잇달아 자리를 내줍니다.





한편 아직 트랙에 남아 있는 파편을 결국 선두 마사가 가지고 갑니다. 차량 어딘가에 낀 것 같은데 별 일 없습니다. 페이스도 전혀 떨어지지 않고 말입니다. 아마 피트스탑 때 누가 빼주던가 다시 어디로 튕겨 나가겠죠.





알론소가 트룰리를 제치가 이제는 마크 웨버가 트룰리의 뒤를 노립니다. 하지만 이제는 트룰리가 아까처럼 그렇게 무력하게 자리를 비켜주지는 않습니다. 여덟 바퀴가 흘러서 이제는 초반전인데, 사실 이쪽 혈투를 빼고는 별다른 경쟁 구도가 보이지 않습니다. 그나마 이 전투라도 없었으면 좀 밋밋할 뻔했습니다.





피치를 올리기 시작한 키미가 드디어 9 바퀴째에 가장 빠른 랩 타임을 기록하면서 해밀튼을 추격합니다. 가장 빠른 랩 타임 차트에서도 알 수 있지만 키미와 해밀튼의 최고 기록은 0.5초가 넘습니다. 그렇다면 10 바퀴쯤 더 지나면 키미가 해밀튼 뒤에 바짝 붙어서 앞지르기를 노리는 상황이 올 듯합니다. 키미가 한번 꼬리에 불이 붙으면 무시무시하게 빨라지는 광속 모드이기 때문에 더 빠르게 격차를 줄일 지도 모르죠. 선두 마사보다도 한 바퀴에 0.3-0.4초 정도 빠른 상황입니다.





10 바퀴째에도 다시 랩 타임 기록을 경신하면서 더욱 가속이 붙습니다. 싱가포르 서킷 도로가 울퉁불퉁한 건 확실한가 봅니다. 차 바닥이 도로에 닿아서 불꽃이 팍팍 튈 정도니... 어쨌거나 키미한테 한 바퀴에 0.4-0.5초씩 잡히고 있는 해밀튼으로서는 점점 사면초가에 몰리는 꼴이 되어 가고 있습니다.




11 바퀴째, 어느새 격차가 2초대로 줄어들었습니다. 그렇다면 5-6 바퀴 정도만 더 돌면 접전이 벌어질 판입니다. 한편 알론소가 12 바퀴째에 무척 일찍 피트스탑을 했습니다. 3 스탑인가 싶었지만 9.6초가 걸린 것으로 봐서는 연료를 많이 싣고 두번째 스탑까지 꽤 길게 달릴 모양입니다.





아래 트랙에서는 해밀튼과 키미의 쫓고 쫓기는 추격전이 벌어지고 있고, 고가도로 위에서는 차량들이 언제나처럼 전조등을 켜고 한가롭게 밤하늘 속을 달리고 있습니다. 시가지 서킷에서만 볼 수 있는 광경이겠습니다만 모나코에서도 이런 풍경은 없었던 듯합니다. 고가도로 위나 아래나 모양은 달라고 차가 달리고 있지만 전쟁과 일상이 교차하는 곳이랄까요? 아무튼 마사와 해밀튼은 이제 4.5초나 벌어졌고 키미는 많이 따라왔습니다.





토로 로소의 세바스티앙 부르대가 주차장(?)에 잠시 들렀다 가는 모습이 보입니다. 코너에서 제때 브레이크를 타서 돌지 못하고 그대로 주차장으로 진입한 셈이죠. 세바스티안 베텔은 지금 저 앞쪽에서 달리고 있는데, 내년 시즌에 F1에 남아 있을 지도 불안한 부르대가 지금 한가하게 주차 연습이나 할 때는 아닌데...




한편 트룰리를 제친 로즈베르크는 포인트권에 턱걸이하고 있는 하이드펠트를 무섭게 쫓아갑니다. 한 바퀴에 0.8-0.9초를 쫓아가고 있습니다. 트룰리가 그동안 그 느린 차량으로 아까까지 니코를 막은 게 용하다 싶습니다. 아무튼 윌리엄스가 이 서킷에서는 무척 잘 적응하고 있습니다.





14 바퀴째, 키미가 또다시 가장 빠른 랩 타임을 경신하면서 해밀튼이 저만치 앞까지 보일 정도로 쫓아 왔습니다. 2 스탑 작전을 쓰는 팀들이라면 아마도 3-4 바퀴 정도 안에 들어오지 않을까 싶습니다. 해밀튼이 말했던 것처럼 트랙이 아닌 피트스탑을 통해서 순위가 바뀌기 쉽다면 첫 피트스탑에서 두 사람의 순위가 바뀔 확률도 지금으로서는 꽤 높습니다.





그런데... 유난히도 운명의 장난이 많았던 올 시즌, 이번에도 그냥은 넘어가지 않습니다. 어쩌면 방호벽으로 둘러싸여 있는 시가지 서킷에서는 피할 수 없는 운명일 수도 있겠죠. 르노의 넬시뇨 피케의 차량이 방호벽을 들이받고 대파된 모습이 카메라에 잡혔습니다. 아니, 이게 웬일? 부딪친 자리를 보면 차량들이 빠르게 달리기 위해서 타는 레이싱 라인은 아닙니다만, 파편도 트랙에 많이 흩뿌려져 있고 부서진 차량을 치우기도 쉽지 않은 상황입니다. 결국 세이프티 카가 출동합니다.




차량 두 대가 출동했는데 앞 차량은 주행하는 차량들을 잡기 위한 세이프티 카이고 뒤 차량은 구난을 위한 메디컬 카입니다. 일단 세이프티 카가 가장 먼저 잡게 된 차는 같은 르노의 페르난도 알론소입니다. 일단 차량을 잡아서 대열을 정리한 다음에 순위 정리도 다시 하게 됩니다.






사고 상황을 보면 피케가 코너를 빠져 나오다가 스핀, 일단 오른쪽 방호벽에 뒤를 살짝 받은 다음에 트랙을 가로질러서 다시 방호벽에 부딪쳐 뒤쪽이 대파됩니다.






일단 차량에서는 나온 피케, 그런데 어디로 가야 할까요? 자기가 있는 편은 관중석만 있어서 탈출할 곳이 마땅치 않고, 마샬들이 있고 비상통로가 있는 쪽은 반대편 방호벽입니다. 결국 피케는 목숨을 걸고 무단횡단(?)을 하게 됩니다. 아, 불쌍해라...





아직 세이프티 카가 트랙을 돌고 있지만 아직 피트 레인이 열렸다는 신호는 나오지 않고 있습니다. 그런데 윌리엄스의 니코 로즈베르크가 피트로 들어옵니다. 규정에 따르면 세이프티 카가 발령되면 일단 피트 입구가 폐쇄됩니다. 이 때 들어와서 재급유를 하는 드라이버는 10 초 스톱-앤드-고 페널티를 받게 됩니다. 아직 "PIT LANE OPEN" 메시지가 레이스 관제에서 나오지 않았는데 니코가 들어왔다는 건 결국 연료가 다 떨어져서 페널티를 감수하고 들어왔다는 뜻이겠지요. 아마도 곧 조사가 이루어질 겁니다. 잠시 후에는 BMW 자우버의 로베르트 쿠비차도 역시 피트가 아직 열리지 않았는데 들어와서 재급유를 합니다. 역시 조사를 받겠지요.





한편 세이프티 카가 나온 상황에서 루벤스 바리켈로의 차량이 트러블을 일으켜서 트랙에 멈췄습니다. 결국 리타이어. 이래저래 코스에서 할 일이 많게 됐습니다. 세이프티 카가 해제되려면 몇 바퀴 더 돌아야 할 듯합니다.




드디어 피트 레인이 열렸습니다. 16 바퀴를 마친 상황이니까 2 스탑을 할 주자들은 아마도 피트로 쏟아져 들어올 듯합니다. 어차피 세이프티 카 상황. 차량들 사이에 간격도 얼마 되지 않는지라 피트에서 순위가 역전되는 경우도 심심치 않을 듯합니다. 과연 그 결과는?





선두 마사가 피트로 들어옵니다. 그 뒤로는 해밀튼도 방향을 피트로 돌렸고, 키미까지도 피트를 향합니다. 마사가 빨리 작업을 하고 나가 줘야 키미가 기다리지 않을 텐데...







그런데 이게 웬일? 아직 마사의 차량에 꽂혀 있는 연료 주입 장치가 채 빠지지 않았는데 마사가 클러치를 놓고 출발해버렸습니다. 연료 호스가 그대로 마사의 차량과 함께 딸려 나갔고 미케닉 한 명이 넘어지는 사고가 벌어집니다.




게다가 마사가 개러지 앞에서 피트 주행 라인으로 들어설 때 그 바로 뒤에 포스 인디아의 아드리안 슈틸이 있었습니다. 하마터면 슈틸의 차량이 호스에 맞을 뻔한 아슬아슬한 모습까지 보입니다.





마사는 뭔가 잘못된 것을 알고 피트 끝에서 일단 차량을 세웁니다. 하지만 페라리 미케닉들이 보이지 않습니다. 마사 뒤에 바로 키미 라이코넨이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에 일단 키미의 피트스탑을 마쳐야 했기 때문입니다. 키미 역시도 이 사고 때문에 금쪽같은 시간을 까먹게 되었지만 마사에 비할 바가 아니죠.





유유히 피트를 빠져 나가는 코발라이넨과 아드리안 슈틸... 이미 해밀튼은 트랙에 합류한 지 오래입니다만 여전히 마사는 피트 끝에 서 있고 아직 페라리 미케닉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습니다. 그리고 키미도 피트를 나갑니다. 키미 역시 이미 꼴찌로 밀린 상황입니다. 도대체 마사는 얼마나 더 기다려 할지...





키미의 피트스탑이 끝난 뒤에야 헐레벌떡 미케닉들이 뛰어 왔습니다. 주입구에 콱 박혀 있는 연료 주입 장치. 길게 호스가 늘어져 있고 끄트머리를 보면 이런 사고가 있을 때 자동으로 저 부분에서 호스 연결부가 빠지도록 되어 있습니다. 물론 연결부가 빠질 때 연료가 좀 튀긴 합니다만, 그 순간에 자동으로 잠기는 밸브가 있기 때문에 튀는 연료가 최소화됩니다.







미케닉들이 연료 주입 장치를 빼 보려고 하지만 잘 빠지지 않습니다. 아마도 차량이 출발하면서 연결부가 틀어진 것 같습니다. 혼자서 안 되니까 두 사람이 붙고, 두 사람이 아무리 빼려 해도 안 되니 세 사람이 됩니다. 가까스로 주입 장치를 빼 내고 마사는 나갈 수 있었지만 당연히 꼴찌 신세가 되고 말았습니다. 한 순간 실수로 1등에서 나락으로 떨어져 버린 겁니다.




여기서 잠깐 마사의 사고에 대해서 다시 되짚어 보기로 하겠습니다. 보통 피트스탑 때에는 앞뒤로 차량을 떠서 올리는 크루가 한 명씩 있고, 각 휠마다 너트를 풀고 조이는 크루와 타이어를 넣고 빼는 크루 한 명씩이 배치됩니다. 한 명은 급유 장치를, 또 한 명은 급유 호스를 들고 있고, 시동이 꺼질 때를 대비해서 시동 장치를 준비하고 있는 크루 한 명, 마지막으로 드라이버에게 언제 1단 기어를 넣고 언제 출발을 할 지 신호하는 '롤리팝'을 들고 있는 크루가 한 명 있습니다. 주변에는 불이 났을 때를 대비해서 소화기를 준비하고 있는 크루들도 있는데, 아무튼 이 롤리팝이란 녀석이 무척 중요합니다. 롤리팝이 반응이 늦으면 그만큼 드라이버가 늦게 피트를 떠나게 되고, 작업이 다 끝나지 않았는데 롤리팝을 들면 사고가 나게 마련입니다.

그런데 올해 페라리에서는 롤리팝을 없애고 전자 신호 시스템을 채택했습니다. 전자 센서의 도움을 받아서 좀더 빠르게 드라이버에게 신호를 하기 위해서라 할 수 있겠는데, 이 신호가 잘못 나간 겁니다. 위 사진을 보시면 첫 사진에는 오른쪽 위에 있는 램프에 붉은 등이 들어와 있는데 두번째 사진에서는 녹색으로 바뀌었습니다. 이 램프가 바로 롤리팝을 대신하는 신호입니다. 당시 상황을 보면 급유 장치를 크루가 빼려고 하는데 잘 빠지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출발을 알리는 녹색 신호가 들어왔고 마사는 그 신호만 보고 차량을 출발시킨 것이죠. 페라리 팀 얘기에 따르면 당시 신호 조작은 센서가 자동으로 하지 않고 크루가 수동으로 했다고 합니다. 결국 이 신호를 조작하던 크루가 '이쯤이면 급유 장치가 빠진다'고 얼떨결에 눌러버린 셈이죠. 그 한 순간의 실수 때문에 마사는 제대로 어퍼컷을 맞고 다운, 그리고 뒤따르던 키미까지 잽을 한 방 맞은 셈이 됐습니다.




호스를 들고 개러지로 돌아가는 페라리 미케닉들. 그 모습이 정말로 처량합니다. 호스가 마치 아나콘다 같은 생각이 드네요.




순위는 니코 로즈베르크 → 야르노 트룰리 → 쟝카를로 피시켈라 → 로베르트 쿠비차 →페르난도 알론소 → 마크 웨버 → 데이빗 쿨타드 → 루이스 해밀튼 순서입니다. 이 가운데서 트룰리와 피시켈라는 아직 피트스탑을 안 했는데 어쩌면 1 스탑일 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로즈베르크와 쿠비차는 피트 레인이 열리기 전에 재급유를 했기 때문에 페널티를 받을 게 거의 확실합니다. 그렇게 보면 상황이 정리되고 나면 알론소가 선두가 되는 셈인데... 허걱. 지난 번 베텔 우승에 이어서 이번에는 알론소가 한 건 올리는 건가요? 일찍 피트스탑을 했던 게 이런 대박을 가져다 줄 줄은 꿈에도 몰랐을 겁니다. 반면 해밀튼은 피트에서 11초가 넘는 시간을 소비하면서 순위가 8위까지 떨어졌습니다.




18 바퀴를 마치고 세이프티 카가 들어간다는 공지가 나왔습니다. 그에 맞춰서 세이프티 카의 경광등도 꺼졌습니다. 일단 선두는 니코, 과연 세이프티 카가 피트로 들어가고 레이스가 다시 시작될 때 뭔가 또 순위 변화가 일어날 수 있을까요?

초반에 얘기가 너무 길어서 글 하나로 다 얘기하기는 힘들 듯합니다. 일단 첫 세이프티 카 발령 상황까지로 이번 글을 마무리하고 다음 글에서 그 뒤 얘기를 계속 하겠습니다.

2008 포뮬러 1 싱가포르 그랑프리 : 레이스 - 2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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