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2학년이던 88년에 당시로서는 꽤 엽기적인 사건이 하나 터졌습니다. 당시 중앙일보 자매지였던 중앙경제신문의 기자였던 오홍근 씨가 출근길에 회칼에 찔려 중상을 입은 사건이었죠. 나중에 이 사건은 국방부 정보사령부가 배후였던 것으로 드러났습니다만, 이른바 '백색테러'란 게 대한민국에도 있었구나 싶었는데 알고 보니 그렇게 친한 정도까지는 아니었지만 안면은 있었던 저와 같은 학교 학생의 아버지였습니다. 당시 테러를 당한 이유는 '청산해야 할 군사문화'란 칼럼을 썼기 때문이었지요. 한동안 잊고 지냈는데 요즘 가끔 블로고스피어에서 이 분의 블로그 포스트가 보이더군요. 반갑기도 하고, 오홍근 씨의 아들이었던 그 친구는 잘 지내고 있는지 궁금하기도 합니다. 그 이후에도 현대중공업 노조에 대한 식칼테러도 있었습니다만 군사정권 때야 굳이 테러가 아니라고 해도 법의 이름으로 마음대로 잡아다가 고문하고 가두었으니까 정권 자체가 백색테러집단이라고 봐도 될 정도였죠.
그런데 이제는 추억이겠거니 했던 백색테러가 요즘 들어서 모습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진보신당 당사에 대한민국특수임무수행자회 회원들이 난입해서 폭력을 휘두르고 당사에 깽판을 놓더니 이번에는 조계사에서 식칼테러로 세 명이 중상을 입고 그 중 한 명이 목숨이 위태한 지경까지 이르렀습니다. 이번에 조계사에서 벌어진 일은 아예 목과 머리를 노리고 찌른 것으로 봐서는 애초부터 죽일 생각까지 있었던 듯합니다. 이제는 그냥 '손 봐 주는' 정도를 넘어서 살인까지도 벌어질 판입니다.
인터넷에서는 진작부터 좌빨척결을 주장하는 외침들이 활개를 치고 있었습니다. 좌빨들은 북으로 가라는 얘기는 얌전하죠. 빨갱이들은 아예 죽여버려야 한다는 섬뜩한 댓글들이 정치 사회 뉴스에 넘치도록달리곤 했습니다. 정말 글만 봐도 살벌한데 이제는 글로 끝나는 게 아니라 실행에 옮겨진 셈입니다. 이번 조계사 테러를 두고도 자신들의 그 살벌한 증오와 테러를 부추긴 데에 대한 반성은 커녕 '정말 잘했다', '속이 시원하다', '이참에 아주 다 죽여버려야 한다'는 더욱 살벌한 부추김들이 판을 치고 있는 상황입니다. 도대체 지금이 자유당 때 서북청년단이 활개치던 그 시대는 아닌지, 잃어버린 10년 운운하더니 시계를 10년 전이 아니라 아예 50년 전으로 돌리는 건 아닌지 몸서리쳐지는 모습입니다.
백색테러가 활개를 치는 데에는 정권의 방조와 방관이 한몫 하게 마련입니다. 진보신당 테러 때도 그랬고 이번 조계사 테러 때도 그랬고, 촛불 앞에서는 '인간사냥 마일리지'까지 들고 나왔던 그 경찰들은 참으로 느슨하고 나태한 모습들입니다. 심지어 한 여당 의원은 '대한민국특수임무수행자회가 무슨 불법을 저질렀느냐, 그들은 신고하고 집회를 했다'면서 가스통을 들고 MBC로 쳐들어갔던 그 집단들을 옹호하는 발언까지 서슴치 않은 바 있습니다. 이런 상황이라면 백색테러는 더욱 활개치게 마련입니다. 인터넷에 가면 '빨갱이 죽여버려야 한다'는 글들이 넘쳐나고 '정권이 우리를 비호하고 있다'는 생각이 충분히 들만큼 경찰의 모습들은 촛불 앞에서 맹수 같았던 모습에 비하면 너무나 헐렁하기 때문입니다.
아마도 이명박 임기 5년 동안 정권의 방조와 방관 속에서 제2, 제3의 조계사 회칼 테러 사태는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습니다. 인터넷에서는 좌빨 척결, 빨갱이 몰살과 같은 구호들이 아무 거리낌없이 터져 나오고 있지만 이 정부는 저런 살인 선동에는 무관심하고 그들의 인터넷 사냥은 오로지 촛불에만 모여 있지요. 그들은 식칼을 휘두르고 사람을 죽이고도 죄책감도 느끼지 않을 것입니다. 빨갱이를 죽였는데 무슨 죄냐고 오히려 더 당당하게 주장하겠죠. 그러고도 그들은 이 나라를 자유민주주의라고 외칠 것이고, 자유민주주의를 사수하기 위해서 빨갱이들을 죽였다고 말할 것입니다. 그들에게 법질서 따위는 필요치 않습니다. '저 놈은 빨갱이다'라는 낙인만 찍으면 그걸로 끝이죠. 극과 극은 닮는다고 했던가요? 북한의 인민재판과 똑같은 꼴을 이 나라에서 '빨갱이 척결'이란 이름으로 보게 될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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