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포뮬러 1 월드 챔피언십도 이제 종반전을 향해 달려가고 있습니다. 모두 18번에 걸친 레이스 가운데 이제 남은 레이스는 여섯 번. 3분의 2 고지를 넘어선 상황입니다만 아직까지 절대 강자가 없는 혼전이 계속되고 있는 상황입니다. 과연 올 시즌 챔피언십의 향방은 어떻게 될지, 유럽 그랑프리를 마치고 난 시점을 기준으로 포뮬러 1 월드 챔피언이라는 단 하나 뿐인 왕좌를 놓고 치열한 혈투를 벌이고 있는 드라이버 세 명을 대상으로 남은 시즌을 점쳐 보겠습니다.
1. 루이스 해밀튼 (맥클라렌) : 현재 1위 - 70 포인트
일단 해밀튼으로서는 작년과 달리 상황이 꽤 좋게 돌아가고 있습니다. 작년에 팀을 뒤흔들어 놨던 스파이 스캔들 같은 사건도 없고, 무엇보다도 서로 제살 깎아먹기를 했던 드라이버 사이의 불화도 없는 상황입니다. 한솥밥을 먹는 마사와 키미가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는 상황입니다만 해밀튼의 팀 동료인 헤이키 코발라이넨은 일단 챔피언십 경쟁에서는 뒤처져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한결 편안한 상태라 할 수 있습니다. 게다가 초중반에는 약했던 예선 성적이 요즘은 많이 좋아졌기 때문에 레이스에서도 유리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남아 있는 서킷들도 주로 고속 서킷입니다. 소프트-수퍼 소프트 타이어를 쓰는 싱가포르, 그리고 미디엄-소프트를 쓰는 브라질을 제외하고는 벨기에, 이탈리아, 일본, 중국 그랑프리는 모두 하드-미디엄입니다. 올 시즌 고속 서킷과 저속 서킷에서 성적이 극명하게 엇갈리는 맥클라렌과 페라리의 차량 성능을 생각해 보면 맥클라렌에 좀더 유리하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게다가 마지막 경기인 브라질이 작년에는 소프트-수퍼 소프트였지만 올해는 미디엄-소프트로 바뀐 것도 수퍼 소프트에서 특히 타이어 펑크와 같은 문제점이 많았던 해밀튼으로서는 좋은 소식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키미 라이코넨이 유난히 강한 벨기에와 저속 시가지 서킷인 싱가포르에서 지난 유럽 그랑프리처럼 타이어 펑크나 트러블을 피하고 2위 자리만 고수할 수 있다면 해밀튼으로서는 챔피언십에서 아주 유리한 상황이 될 수 있습니다.
해밀튼이 안고 있는 약점은 역시 앞에서 얘기했던 대로 저속 서킷에서 타이어 펑크와 같은 트러블로 경기를 망치거나 리타이어할 위험이 아직도 여전하다는 점입니다. 워낙에 타이어를 혹독하게 쓰는 해밀튼이다보니 빠르게 마모되는 수퍼 소프트 타이어는 해밀튼에게는 그야말로 아킬레스 건입니다. 따라서 이 경기들에서 얼마나 위험을 피해가면서 넉넉한 포인트를 얻을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점이 올해 우승을 위한 핵심이 될 듯합니다.
또한 작년 브라질에서 보여줬던 것처럼 결정적인 순간에 실수할 수 있다는 점 또한 위험 요소입니다. 이제 겨우 두번째 시즌에다가 워낙에 많은 관심을 몰고 다녔기 때문에, 특히 작년에 팀의 불화를 몰고 온 주범이라 할 수 있기 때문에 올해 만큼은 뭔가 보여줘야 한다는 부담감은 자칫 치명적인 실수를 부를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얼마나 이런 강박관념을 잘 이겨내고 안정된 모습을 보여줄 것인가가 특히 마지막 경기인 브라질 그랑프리에서 중요할 것입니다.
강점
- 작년과 같은 팀내 불화가 없다
- 이미 헤이키 코발라이넨과 포인트 차이가 많다
- 예선 성적이 확실히 좋아졌다
- 남은 여섯 경기 가운데 네 경기가 맥클라렌에게 유리하다
- 소프트-수퍼 소프트 타이어 서킷에서 페라리에 밀린다 : 특히 타이어 펑크 조심
- 아직은 경험 부족 : 결정적인 순간에 작년 브라질 GP와 같은 치명적인 실수를 할 수도 있다
2. 펠리페 마사 (페라리) : 현재 2위 - 64 포인트
일단 마사로서는 후견인 장 토드가 팀에서는 공식적으로 손을 뗐기 때문에 앞으로도 계속 페라리에서 뛰기 위해서는 올해 뭔가 보여줘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계속 키미의 그늘에 가린다면 우승은 여러 번 챙기고도 슈마허에게 가려서 빛은 못 봤던 같은 브라질 사람, 루벤스 바리켈로와 같은 신세가 될 확률이 높기 때문입니다. 올해는 상황이 괜찮은 편입니다. 일단 지금 분위기로는 적어도 키미는 리드할 수 있을 듯합니다. 키미가 계속해서 예선 성적이 좋지 않은 상황이기 때문에 일단 예선에서 계속 유리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마사가 챔피언십 경쟁에서는 좀더 유리할 것입니다. 해밀튼과는 6 포인트 격차가 있지만 이를 만회할 만한 경기는 충분히 남아 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마사에게 반가운 소식은 마지막 경기가 작년과 마찬가지로 브라질이라는 점입니다. 지금 상황으로 보면 막판까지 챔피언이 결정되지 않을 확률이 크기 때문에 세 명 중에서 유일한 남미 출신 드라이버인 마사에게 압도적인 응원이 쏟아질 것이 뻔합니다. 작년에도 키미에게 자리를 내 주기는 했지만 알론소와 해밀튼이 헤메고 있을 때 월등한 기량을 자랑한 바 있습니다.
하지만 남아 있는 경기가 대부분 고속 서킷이라는 점은 마사에게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습니다. 앞에서도 언급했습니다만 남아 있는 여섯 경기 중에서 네 경기가 고속 성향인 데다가 특히 일본과 중국은 가을로 접어들기 때문에 트랙 온도가 그다지 높지 않습니다. 서킷 온도가 높고 소프트 계열 타이어를 쓸 경우에 과열되어 핸들링이 불안해지는 맥클라렌 머신의 약점과는 반대로, 페라리는 서킷 온도가 낮고 하드 계열 타이어를 쓸 때 열이 빨리 오르지 않아서 초반에 타이어로부터 충분한 그립을 얻지 못하는 약점을 안고 있습니다. 또한 홈 그라운드 경기인 브라질 그랑프리도 마냥 안심할 수만은 없는데, 날씨가 워낙에 변덕이 심하기 때문에 소나기라도 내린다면 올해 빗속 레이스를 타이어 그립 부족과 작전 실패로 계속해서 망쳤던 페라리의 악몽이 재연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싱가포르 그랑프리 역시 경기 시간이 밤 9시부터기 때문에 트랙 온도가 생각보다 높지 않을 수 있다는 점도 감안해 볼 필요는 있겠습니다.
어쨌거나 마사로서는 올 시즌이 챔피언에 등극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 할 수 있겠습니다. 남은 경기에서 안정된 기량을 계속 보여 주고 고속 서킷에서 포인트를 많이 잃지 않는다면 막판에 해밀튼을 제치고 챔피언 자리를 노려볼 수 있을 듯합니다. 어쨌거나 마지막 경기까지는 가야 할 듯합니다.
강점
- 머신 트러블만 없다면 성적이 고른 편
- 키미보다 예선 성적이 월등히 좋다
- 마지막 브라질 그랑프리는 마사의 홈 경기
- 팀내 치열한 경쟁 : 키미의 도움을 받기는 어려울 듯
- 머신, 특히 엔진에 대한 불안감
키 포인트 : 고속 서킷(이탈리아 - 일본 - 중국)에서 해밀튼을 따라잡을 수 있을까?
3. 키미 라이코넨 (페라리) : 현재 3위 - 57 포인트
키미가 안고 있는 가장 큰 문제는 예선 성적이 좋지 못하다는 점입니다. 최근 예선 성적을 보면 폴 포지션은 고사하고 4-6위 수준을 오락가락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이러다보니 레이스 출발 때 여러 대를 앞지르지 못하면 자신보다 느린 머신에 가로막혀서 초반에 상당한 시간을 까먹어버리게 되고 만회하기 힘든 상황이 되곤 합니다. 이 점은 키미도 인식하고 있기 때문에 최근에는 "레이스 때 성능을 조금 양보해서라도 예선 때 차량 성능을 좀더 향상시키겠다"는 얘기를 한 바 있습니다.
사실 제 의견은 올해 키미는 좀 비관적입니다. 물론 작년에 가물가물했던 상황에서 막판 뒤집기로 월드 챔피언을 차지하긴 했지만 작년과 올해는 여러 모로 다른 점이 많습니다. 첫째로 작년에는 가장 강력한 라이벌이었던 맥클라렌 듀오가 스파이 스캔들과 알론소-해밀튼 불화로 무너지는 바람에 타격을 크게 봤지만 올해는 맥클라렌에게 별달리 그런 변수가 없다는 점입니다. 둘째로는 작년에는 같은 팀의 마사만큼은 줄곧 리드해 왔지만 올해는 최근 들어서 마사에게 밀리고 있는 상황입니다. 셋째로 작년에는 이길 수 있는 경기는 확실히 우승을 챙기는 모습이 있었지만 올해는 계속 예선에서부터 중위권으로 밀리고 있는 상황이라서 이 문제를 해결하기 전에는 남은 경기 역시도 장담하기 어렵습니다.
그리고 또 한가지, 그다지 크다고 볼 수는 없지만 예상치 못한 결과를 낳을 수도 있는 약점이 하나 더 있는데 셋 중에서 키미만이 이미 엔진 '조커'를 썼다는 점입니다. 원래 F1 규정에서는 엔진 하나로 두 경기를 써야 하고 그 전에 엔진에 고장이 났다던가 해서 다른 엔진으로 바꾸면 10 그리드 페널티를 받아야 합니다만 올해부터는 엔진에 대한 규정이 바뀌어서 시즌 마지막 경기인 브라질 그랑프리를 빼고는 처음 한 번 바꾸는 것에 대해서는 페널티 적용을 받지 않습니다. 그런데 해밀튼이나 마사와는 달리 키미는 영국 그랑프리를 앞두고 프랑스 그랑프리에서 겪었던 배기부 문제 때문에 엔진을 바꿨습니다. 그래서 앞으로는 2 경기 수명 전에 엔진을 바꿀 경우 페널티를 받게 됩니다. 키미가 엔진을 바꿔야 하는 상황이 온다면 치명타가 되겠지만 그렇지 않다고 해도 다른 두 경쟁자는 아직 조커를 쓰지 않은 데서 오는 잇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만약 브라질 직전 중국 그랑프리에서 해밀튼과 마사가 새 엔진을 썼다면 마지막 경기에서는 둘 다 페널티 없이 다시 새 엔진으로 교체할 수 있습니다.
그래도 키미에게 마냥 어두운 면만 있는 건 아닙니다. 일단 작년도 보았듯이 시즌 막판으로 갈 수록 노련함에서 오는 안정성이 빛을 낼 수 있습니다. 아직까지 경험이 부족한 해밀튼이 결정적인 순간에 큰 실수로 리타이어를 하거나 경기를 망칠 불안감은 여전히 도사리고 있기 때문에 이런 면에서는 키미의 안정성에 점수를 줄 수 있습니다. 또한 마사는 유리한 상황에서는 아주 좋은 기량을 보이지만 그렇지 못한 곳에서는 실수를 연발하고 기량이 확 떨어지는 모습을 보인다는 점에서, 페라리에게 핸디캡이 있는 고속 서킷에서는 꾸준한 안정성을 보여주는 키미가 마사보다 유리한 면이 많다고도 볼 수 있겠습니다. 브리지스톤 쪽 얘기대로 '머신이 잘 맞으면 110%, 안 맞으면 90%'인 마사보다 '언제든지 100%'인 키미가 남아 있는 경기에서는 좀더 좋은 전망을 갖게 합니다.
키미가 지금과 같은 판을 다시 뒤엎고 강력한 우승 후보로 나서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경기가 바로 다음 벨기에 GP입니다. 맥클라렌에서나 페라리에서나 벨기에 그랑프리에서는 강했기 때문에 이번 경기에서 제 모습을 찾고 자력으로 좋은 성적을 거둔다면 키미로서도 동기부여가 될 것이고 다시 한번 작년과 같은 막판 대반전을 노릴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 상황을 놓고 볼 때, 솔직히 자력으로는 챔피언이 쉽지 않은 상황이고 다른 경쟁자들이 머신 트러블과 같은 문제점으로 흔들린다거나 하는 '도움'이 필요할 듯합니다. 하지만 스포츠는 언제나 우리의 상상을 뛰어넘는 대단한 시나리오를 만들어 내는 법입니다. 아직은 더블 월드 챔피언 꿈을 포기하기에는 한참 이릅니다.
강점
- 시즌 막판으로 갈 수록 강해지는 뚝심
- 남은 경기는 키미에게 유리한 편
- 마사와 마찬가지로 팀내 치열한 경쟁과 머신 트러블에 대한 불안감
- 계속 예선 성적이 좋지 못하다
- 엔진 교체 '조커'를 이미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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