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바 '자유민주주의자'를 자처하는 사람들이 늘 외치는 것 가운데 하나가 '낡은 이념'입니다. 냉전 시대의 낡은 이념에서 탈피해서 이제는 탈 이념과 실용과 경제 살리기와 기타 등등과... 뭐 이런 미래로 나아가자, 이런 게 이른바 '자유민주주의자'들이 주문처럼 외우다시피하는 멘트입니다. 이명박 정부도 예외는 아닙니다.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 5월에 중국을 방문했을 때, 베이징대학교에서 한 연설에서도 이런 구절이 나옵니다.
"대한민국 국민은 낡은 이념이나 정파 정치에 연연하지 않는 새로운 리더십, 국민에게 행복과 희망을 주는 '비전의 리더십'을 원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이른바 '자유민주주의자'들이 가장 전가의 보도처럼 휘두르는 게 바로 낡은 이념의 프레임입니다. 신자유주의를 기반으로 했던 노무현 김대중 정권을 '좌파'라고 몰아붙이는 것에서부터 이들이 얼마나 낡은 이념의 포로가 되어 있는지를 잘 보여줍니다. 낡은 이념에 매여 있는 이른바 '자유민주주의자'들 덕택에 한미동맹만 떠들다가 중국한테는 야단이나 맞고, 북한 한테는 왕따 당하고 해서 주변국 외교에서 헛발질을 연발하고 주도권을 뺏긴 이명박 정부의 외교 실책은 바로 그들이 낡은 이념의 프레임에 갇혀 있다는 것에서 그 근본 원인을 찾을 수 있습니다.
이명박 정부가 낡은 이념의 틀에 갇혀 있음을 보여주는 사건이 또 하나 터졌습니다. 바로 '사노련' 사건입니다. 이미 좌파 지식인의 원로격으로 자타가 공인하는 오세철 연세대 명예교수를 주축으로 해서 사회주의를 표방했던 인사들이 공개적으로 간판 내걸고 활동했던 단체가 '사노련'입니다. 사실 군사정권 같았으면 뉴스나 특집 방송으로 무시무시한 음악을 깐 가운데 살벌한 멘트로 이들이 얼마나 이 나라를 무너뜨릴 만한 위험한 인물들인가를 역설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정도는 덜 하지만 이명박 정부는 이들을 국가보안법으로 엮어서 감옥에 가두려 하고 있습니다.
그야말로 낡은 이념에 갇힌 이명박 정부의 모습을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세상은 좌파하고 우파 밖에 없고 좌파는 박멸해야 할 존재들이고, 폭력혁명으로 정부를 전복하고... 이런 냉전 시대 낡은 이념의 틀에서밖에는 '사노련'이라는 존재를 보지 못하는 게 바로 이른바 '자유민주주의자' 이명박입니다. 이미 좌파도 우파도 수많은 변화와 분화 과정을 거쳐서 다양한 스펙트럼과 기치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뭉뚱그리기 힘들 정도가 되었음에도 좌파-우파, 이런 이분법밖에는 없는 셈입니다. 물론 '사노련'은 진보신당과 같은 세력들과는 달리 합법적 대중정당보다는 노동자 전위정당의 기치를 내걸었던 조직이라서 우선 타겟이 되었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그 수준은 선언적인 정도에 머무르고 있으며, 옛날과 같은 무력 혁명과 같은 것을 내걸고 있지도 않습니다. 경찰이 기껏 밝혀낸 것도 유인물 나눠주고 촛불시위 참여한 정도입니다. 촛불시위 주도도 아니고 그냥 다른 시민들처럼 시위에 참여한 '단순가담자'에 불과하죠. 물론 그들의 주장을 '낡은 이념' 정도로 치부할 수는 있겠지만 이념이 낡았다고 해서 잡아 가둬도 된다는 발상은 그보다도 훨씬 낡은 군사독재 시절에서나 나올 법한 발상입니다. 그보다 더 낡은 '조선왕조 복원' 같은 주장을 하는 사람도 국가보안법으로 가둬야 할까요?
만약 '사노련'의 이념이 낡은 이념이었다면, 이명박 대통령이 베이징대에서 자신있게 얘기했던 것처럼 국민들은 그 이념을 선택하지 않을 것입니다. 국민들의 외면 속에서 자연스럽게 도태될 이념입니다. 이미 낡은 프레임의 진보는 쇠퇴의 길을 걷고 있습니다. 지금 진보를 자처하는 세력들 속에서는 좀더 새롭게 업그레이드된 틀을 짜고자 노력하는 움직임이 점점 커지고 있습니다. 낡은 것은 결국 때가 되면 도태하게 마련입니다. 문제는 그걸 강제로 때려잡고 억압해서 누르고자 하는 낡은 이념의 세력들입니다. 역사 속에서 이념의 문제가 억압하고 강제해서 해결된 적이 있었던가요? 잠시 효과를 보는 것처럼 느껴지지만 언제나 그 결과는 그저 그때 뿐이었습니다. 결국 억압과 탄압은 낡은 이념의 목숨을 더 연장시키는 것 뿐이었습니다. 왜 철지난 종북주의가 아직도 살아남아 있는가, 이 점을 생각해 보시면 탄압의 역효과를 알 수 있을 것입니다.
낡은 이념의 틀에 갇혀서 시계바늘을 거꾸로 돌리는 이명박 정권이 앞으로 어떤 공안사건 시리즈를 선보일 지, 아마 '사노련'은 그 시작에 불과할 것입니다. 뭐 어쨌거나 중요한 것은 탄압은 언제나 그 약발이 일시적인 대증요법에 불과하기 때문에 원하는 결과를 얻기는 커녕 오히려 긁어 부스럼을 만드는 결과가 되기 쉽다는 것입니다. 이번 사건을 통해서 이명박 스스로가 자신이 낡은 이념의 노예임을 입증해 버렸으니 그가 아무리 탈 이념을 주장한들, 미래의 비전을 주장한들, 그저 냉전시대 이념의 틀에 얽매인 노예에 불과한 그에게 무슨 미래에 대한 비전을 기대할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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