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진, 트랜스미션, 타이어, 어느 하나 중요하지 않은 것은 없습니다. 하지만 엔진이나 트랜스미션은 한번 개발이 이루어지고 나면 큰 변화를 만들지는 않습니다. 더구나 엔진은 개발이 동결되어 있는 상황이라서 지금으로서는 엔진을 가지고 뭘 할 수는 없는 상황입니다. 하지만 타이어는 좀 다릅니다. 물론 타이어 그 자체는 브리지스톤이라는 단일 회사에서 똑같은 타이어를 공급하고 있지만 이 타이어를 어떻게 쓰느냐, 하는 문제는 수많은 변수가 존재합니다. 당연히 타이어를 장착하는 휠과 서스펜션이 큰 비중을 차지하고, 차량을 화려하게 장식하고 있는 여러 가지 공기역학 장치들 역시도 개입됩니다. 물론 선수들의 드라이빙 스타일 역시도 많이 작용합니다. F1에서는 이런 얘기가 있습니다. "엔진을 죽어라고 개발한다면 한 바퀴에 0.1초 정도 빨라질 수 있다. 하지만 타이어는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서 0.5초 이상 차이가 난다." 그만큼 치열한 경쟁 상황에서는 타이어야말로 승패를 가르는 아주 중요한 물건이 되는 셈입니다.
타이어의 구조는 복잡한 층을 이루고 있지만 표면을 구성하는 물질은 고무를 기반으로 해서 탄소와 여러 가지 복합 물질들을 혼합한 것입니다. 이것을 컴파운드(compound)라고 하는데 타이어의 종류와 용도에 따라서 컴파운드를 만드는 방법들이 다양합니다. 당연한 얘기겠지만 컴파운드 제조 공식은 타이어 회사에게는 콜라 회사에서 콜라 원액 제조하는 공식 만큼이나 가장 중요한 비밀입니다. 어쨌거나, 현재 포뮬러 1에 공급되는 타이어는 컴파운드 재질이나 용도에 따라서 다음과 같이 나뉩니다.
- 마른 날씨용
- 하드
- 미디엄
- 소프트
- 수퍼 소프트
- 젖은 날씨용
- 웨트 타이어
- 익스트림 웨트 타이어
어쨌거나, 마른 날씨용 타이어와 젖은 날씨용 타이어는 '트레드'의 문제입니다. 위 사진에서 왼쪽은 익스트림 웨트 타이어, 오른쪽은 마른 날씨용 타이어입니다. 원래 마른 날씨용 타이어는 슬릭(slick)이라고 해서, 표면에 아무 무늬도 없는 밋밋한 타이어입니다. 보통 승용차용 타이어에는 복잡한 트레드가 파여 있지만 타이어의 성능은 접지면이 넓을 수록 더 좋습니다. 하지만 비가 오는 상황에서는 슬릭은 트랙 위의 물을 배수시킬 트레드가 없기 때문에 타이어가 스케이트 타듯이 미끄러져 버립니다. 포뮬러 1은 슬릭을 끼고 달리다가 비가 오면 피트로 들어와서 젖은 날씨용 타이어로 바꾸면 됩니다만, 보통 승용차는 그렇게 타이어를 쉽게 갈아낄 수가 없죠. 그래서 트레드가 있는 타이어를 끼고 다니는 겁니다.
어쨌거나, 포뮬러 1의 마른 날씨용 타이어는 원래 민무늬 슬릭이었습니다. 하지만 기술이 발전하고 차량의 속도가 너무 빨라지다보니까 너무 위험해져서 규정을 바꾸어 타이어에 원호를 따라서 홈을 파도록 했는데 이걸 그루브드(grooved) 타이어라고 합니다. 이렇게 홈이 파인 만큼 접지력이 약간 떨어지기 때문에 이 홈은 그저 성능을 떨어뜨리기 위한 제한일 뿐, 아무런 장점도 없습니다. 이 홈도 처음에는 하나였는데 그래도 계속 타이어 기술이 발전하다보니까 홈의 갯수도 늘어나서 지금은 네 개입니다. 만약 이 홈이 다 없어질 때까지 타이어를 바꾸지 않고 계속 쓰면 실격 당합니다. 사실 이런 타이어는 포뮬러 1에서만 쓰는 좀 변태적인 타이어라서, 내년부터는 슬릭으로 돌아가는 대신에 타이어 자체의 성능을 떨어뜨리는 쪽으로 규정이 바뀔 것 같습니다.
젖은 날씨용 타이어는 보통 차량용 타이어와 비슷하게 표면에 트레드가 새겨져 있습니다. 웨트 타이어와 익스트림 웨트 타이어는 이 트레드가 얼마나 깊고 많이 파여 있느냐의 차이입니다. 따라서 약한 비가 내릴 때에는 접지면이 좀더 넓은 웨트를, 많은 비가 내릴 때에는 배수 성능이 좋은 익스트림 웨트를 선택합니다. 위 사진이 웨트 타이어입니다. 처음 사진에 보셨던 익스트림 웨트와 비교해 보면 트레드가 적고 단순한 모양임을 아실 수 있을 것입니다.
마른 날씨용 타이어의 컴파운드 재질은 하드에서 수퍼 소프트까지 네 가지로 나뉩니다. 하드, 소프트와 같은 말처럼 컴파운드가 부드러운지 단단한지에 따라서 구분이 됩니다만, F1 타이어는 가장 단단한 하드라고 해도 우리가 보통 쓰는 승용차용 타이어보다 훨씬 부드러워서 손으로 누르면 쑥쑥 들어갈 정도로 부드럽다고 보시면 됩니다. 이 정도로 컴파운드가 무르지 않으면 단 100 미터 만에 300km/h가 넘는 속도에서 100km/h 아래로 속도를 떨어뜨리는 괴물같은 F1 머신도 없을 것입니다. 승용차용 타이어 같으면 이렇게 브레이크를 잡았다가는 그냥 스키 타듯이 미끄러져서 방호벽을 들이 받겠죠. 어쨌거나 하드에서 수퍼 소프트에 이르는 네 가지 컴파운드 가운데서 경기마다 타이어 제조사에서는 두 가지 컴파운드를 선택해서 각 팀에게 공급하게 됩니다. 어떤 컴파운드를 공급할 지는 서킷의 구조나 경기와 테스트를 통한 데이터 수집을 통해서 결정하게 되는데, 대체로 직선이 많고 코너가 적으며 평균속력이 높은 서킷에서는 하드 쪽으로, 코너가 많고 평균속력이 낮은 곳은 소프트 쪽으로 공급하게 됩니다. 아무래도 타이어의 마찰력이 필요한 곳은 직선보다는 코너이기 때문입니다.
어쨌거나 이렇게 컴파운드가 선택되면 세 차례 연습 주행, 예선 한 번, 그리고 결승 레이스로 구성되는 경기 기간 동안에 차량 한 대당 마른 날씨용 타이어는 두 가지 컴파운드가 각각 7 세트씩, 젖은 날씨용 타이어는 웨트 타이어 4 세트, 익스트림 웨트 타이어 3 세트가 제공됩니다. 그리고 공급 받은 세트 이상은 돈이 있어도 쓸 수 없습니다. 한 팀에서는 차량을 두 대씩 운영하지만 한 쪽 차량이 타이어가 남는다고 동료 차량에게 줄 수도 없습니다. 그래서 지급되는 타이어에는 항상 몇 번 차량에게 공급되는 타이어인지를 식별하는 표식을 하게 되어 있습니다. 팀에서는 타이어 갯수 제한을 감안해서 연습 주행부터 레이스까지 경기를 운영해야 합니다.
언뜻 생각하기에 사흘 동안 마른 날씨용 타이어를 총 14 세트가 공급 받는데 모자랄 일이 뭐 있겠는가, 싶을 수도 있습니다. 보통 승용차들은 타이어를 한 번 끼우면 오랫 동안 쓰게 됩니다만, F1에서 쓰는 타이어들은 컴파운드가 훨씬 부드러운 만큼 닳는 것도 무척 빠릅니다. F1에서 레이스 한 경기의 거리는 305km를 넘어가는 가장 적은 바퀴수이므로 대략 305km-310km가 됩니다. 하지만 연료 주입을 위해서 적어도 한 번 정도는 피트로 들어와야 하므로 이 때 타이어도 같이 갈게 됩니다. 따라서 F1 타이어도 여기에 맞춰서 내구도를 잡게 되는데, 하드 컴파운드라고 하더라도 레이스를 한 번 뛸 정도 거리밖에는 내구성을 보장할 수 없다는 정도로 생각하시면 됩니다. 수퍼 소프트 같은 경우에는 그보다도 훨씬 빨리 닳아 버리죠. 그리고 예선 때에는 낭비가 더 심해서 딱 한 번 속력을 내서 서킷을 날아다닌 차량은 피트로 들어와서 타이어를 새 것으로 바꿔서 나갑니다.
이 때문에 타이어를 어떤 것으로 쓰느냐는 레이스 작전을 짜는 데 중요한 영향을 줍니다. 레이스 작전 가운데서 가장 중요한 것이 과연 피트스탑을 몇 번 할 것인가 하는 점입니다. 피트스탑을 한 번 하게 되면 대략 22-25초 정도를 까먹게 됩니다. 따라서 피트스탑을 적게 할 수록 좋겠지만 그러자면 연료를 많이 실어야 하고 차량 무게가 많이 무거워지므로 느려지게 됩니다. 또한 피트스탑을 적게 하려면 타이어 한 세트로 긴 거리를 달려야 하고 따라서 타이어 컴파운드를 그에 맞춰서 하드한 쪽으로 써야 하지만 느린 서킷에서는 충분한 접지력을 확보할 수 없어서 역시 기록에 나쁜 영향을 줍니다. 따라서 이런 여러 가지 면을 고려해서 피트스탑을 몇 번, 언제쯤 할 것인지를 고려하게 되며 타이어도 중요한 변수가 됩니다.
그리고 작년부터 타이어 규정이 여러 모로 바뀌었는데 가장 큰 변화는 마른 날씨용 타이어를 쓸 때 두 가지 컴파운드를 모두 써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전에는 각 팀마다 두 가지 컴파운드를 공급하면 팀에서 예선 전까지 한 가지 컴파운드를 선택해서 그것만 쓰도록 되어 있었습니다. 하지만 작년부터는 공급되는 두 가지 컴파운드를 레이스에서 반드시 한 번씩은 써야 합니다. 예를 들어서 미디엄과 소프트 컴파운드를 공급 받았을 때, 내 차량에는 미디엄이 더 맞다고 해도 반드시 피트스탑을 해서 한 번은 소프트로 바꾸고 나가서 달려야 한다는 겁니다. 따라서 피트스탑 작전이나 운영에 큰 변수로 작용하게 됩니다. 예를 들어서 앞에서 말한 예와 같은 경우에 팀에서는 피트스탑을 두 번 가져가서 미디엄 → 미디엄 → 소프트로 가져가는 방법을 생각할 수 있겠죠. 소프트가 영 맞지 않는다면 두번째 피트스탑을 최대한 늦게 가져가서 소프트를 끼고 달리는 거리를 최대한 줄여야 할 것입니다.
어쨌거나, 2008년 시즌 얘기를 하자면 지금 타이틀 경쟁은 맥클라렌과 페라리 2파전으로 가고 있습니다. 한때 BMW 자우버가 두 팀의 삽질을 틈타서 1위로 치고 나온 적도 있습니다만 다시 처지는 추세입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맥클라렌과 페라리의 기세가 거의 널뛰기 수준이라는 겁니다. 대박을 치는 경기가 있는가 하면 쫄딱 망하는 경기가 이어지면서 혼전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톱 팀이 이 정도로 편차가 심한 경우는 드문지라 여기에 대해서 여러 분석들이 있는데, 그 가운데서 가장 설득력을 얻고 있는 게 바로 타이어 문제입니다. 다시 말해서 양쪽 팀의 차량이 타이어를 쓰는 방법이 다르다는 겁니다.
맥클라렌의 MP4/23은 타이어가 좀더 빨리 닳고 오버스티어(스티어링을 돌렸을 때 차량이 그보다 좀 더 도는 것)성향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페라리의 F2008은 타이어를 좀 부드럽게 쓰고 언더스티어(스티어링을 돌렸을 때 차량이 그보다 좀 덜 도는 것) 성향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타이어 공급사인 브리지스톤 쪽에서는 이 차이를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기본적으로 페라리는 맥클라렌보다 좀더 언더스티어가 많은 경향이 있습니다. 맥클라렌은 약간 더 오버스티어가 있습니다.
타이어가 그립이 좋으면, 오버스티어 경향이 있는 차량이 중립 또는 언더스티어가 있는 차량보다 한 바퀴를 돌 때는 더 빠를 것입니다. 하지만 레이싱 조건에 대해서 생각한다면 - 특히 헝가로링크의 온도에서는 - 오버스티어링 차량은 언더스티어링 차량보다 뒷쪽에서 더 훨씬 높은 열이 생기게 됩니다.
헝가리에서 (루이스) 해밀튼의 차량 특성을 보면, 몇 바퀴 지나서 그는 오버스티어로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 따라서 많은 카운터 스티어링을 했습니다. 반면 페라리는 몇 바퀴 뒤에 좋은 균형을 얻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온도가 차이를 만드는 이유입니다."
쉽게 말하자면 한 바퀴를 누가 빨리 도는지로 순위를 매기는 예선에서는 열이 빨리 올라서 타이어가 빨리 제 성능을 내는 맥클라렌이 유리하지만 레이스 상황에서는 열을 적절한 수준으로 유지하는 페라리 쪽이 유리하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맥클라렌이 확실한 우위를 가지는 레이스들도 있는데 예를 들어서 비가 오는 상황에서는 확실히 맥클라렌이 우세합니다. 열이 많이 생긴다는 것은 차가워서 열이 잘 날 수 없는 비 오는 상황에서는 오히려 유리한 잇점을 가져다 줍니다. 또한 하드나 미디엄 컴파운드를 쓰게 되는 조건에서는 맥클라렌 쪽이 페라리보다는 좀더 타이어에서 유리한 처지에 놓이게 됩니다. 반면 소프트나 수퍼 소프트 쪽으로 갈 수록 페라리가 타이어에서 잇점을 얻게 됩니다. 트랙의 온도가 별로 높지 않은 상황에서는 맥클라렌이 빨리 열이 오르기 때문에 초반 페이스에서 유리하며, 트랙 온도가 높고 더운 날씨에서는 반대로 페라리에게 잇점이 가게 됩니다.
이제 올 시즌은 일곱 경기를 남겨 놓고 있습니다. 드라이버 챔피언십 1위인 맥클라렌의 루이스 해밀튼과 2위 페라리의 키미 라이코넨은 5 포인트 차이로 큰 차이가 아닙니다. 남은 일곱 경기에서 과연 어떤 타이어가 공급되는지 역시도 경쟁에서 주요한 변수가 될 텐데, 브리지스톤에서 발표한 남은 경기의 타이어 공급 제원은 다음과 같습니다.
| 유럽 | 소프트 - 수퍼 소프트 |
| 벨기에 | 하드 - 미디엄 |
| 이탈리아 | 하드 - 미디엄 |
| 싱가포르 | 소프트 - 수퍼 소프트 |
| 일본 | 미디엄 - 소프트 |
| 중국 | 하드 - 미디엄 |
| 브라질 | 미디엄 - 소프트 |
이렇게 보면 싱가포르와 유럽은 페라리가, 벨기에와 이탈리아, 중국은 맥클라렌이 타이어에서 잇점을 얻을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일본과 브라질은 쉽게 예상할 수 없는데, 작년에는 소프트 - 수퍼 소프트가 공급되었던 브라질이 올해는 미디엄 - 소프트로 공급됨으로써 맥클라렌이 그래도 조금 나아졌다고는 볼 수 있겠습니다. 이제 헝가리 그랑프리를 마치고 3주 동안 휴가에 접어든 각 팀들이 약점을 보완하고 강점을 강화하는 개발 작업에 열을 올릴 것이므로 과연 휴가가 끝나고 나서 달라진 모습을 보여줄 지는 지켜봐야 할 것입니다. 어쨌거나, 결국 올해 챔피언십의 향방은 결국 누가 타이어를 잘 쓰는가가 키 포인트로 작용할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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