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정부가 출범할 때부터 줄곧 떠들어 오던 구호가 '작은 정부'입니다. 정부의 크기를 줄이고 정부가 직접 해 오던 많은 일들을 민간에 넘기고, 간섭과 규제를 최소화하겠다, 정부의 크기를 줄임으로써 세금을 줄이겠다, 이런 얘기가 바로 이명박 정부가 외치던 '작은 정부'입니다. 자, 그래서 정부가 작아졌습니까?
옛날에 '경찰 국가', 또는 '야경 국가'란 말이 있었습니다. '작은 정부'를 주장하던 사람들이 이상향으로 생각하던 국가가 바로 '경찰 국가'죠. 한마디로 국가는 그냥 경찰 노릇만 하면 된다. 재산과 생명만 잘 지켜 주면 되고 나머지는 다 시장에 맡겨라, 뭐 이런 얘기죠. 요즘 이명박 정부를 보니까 정말 '경찰 국가'를 지향하는 듯합니다. 문제는 그 말 뜻을 엉뚱하게 해석한다는 거죠. 이제는 사람만 좀 모여도 경찰들이 진을 칩니다. 혹시 촛불 시위 할 까봐서랍니다. 올림픽 축구 경기 응원한다고 청계광장에 사람들이 모였는데 촛불시위로 변질될까봐 경찰들이 납시었답니다.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고 했습니다. 얼마나 촛불이 무서웠으면 사람만 좀 모여도 촛불 들까봐 저리도 겁을 낼까요?
그리고 방송사에도 경찰들이 납시었습니다. KBS 안으로 쳐들어간 것도 아니고, 그냥 문화제 하고 축구 잘 보고 있던 사람들 싹쓸이해 갔습니다. 오늘 KBS 이사회에서도 경찰들이 회의장 바깥을 둘러싸고 항의하는 PD와 기자들을 막아섰습니다. 왠지 정부가 작아지는 게 아니라 점점 그 서슬푸른 이빨이 커져가는 모습입니다. 경찰력을 앞세워서 미친 듯이 정권을 수호하겠다고 버티는 군사정권의 모습이 다시 한 번 재현되는 느낌입니다. 혹시나 한 20년 동안 식물인간으로 있다가 깨어나는 사람이 있다면 20년이란 세월이 지났다는 느낌이 안 들 것 같습니다. 그냥 식물인간 되기 전, 그때 그 시절쯤으로 생각하겠지요.
작은 정부? 웃기는 소립니다. 이 정부는 '작은 정부'가 아니라 '자근 정부'입니다. 국민들의 목소리를 경찰을 동원해서 자근자근 밟겠다는 자근 정부입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시위대를 마치 우시장에 경매 나온 소 취급하듯이 5만원 2만원 값어치를 매기는 발상이 나올 수가 있을까요? 재벌과 기득권층에게는 한없이 '작은 정부'이고 서민들에게는 한없이 자근자근 밟아 주는 '자근 정부'입니다. 이명박 대통령은 청와대 뒷산에서 '아침이슬'을 들으면서 다짐했을 겁니다. 저것들, 내가 다 자근자근 밟아주겠다고, 복수심을 키웠을 것입니다. 이제 그 복수심을 현실에 펼칠 시간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촛불이 사그라들면 복수가 찾아오게 마련입니다. 복수극은 이미 시작되었지만 아직은 예고편에 불과합니다. 정부와 국회를 장악하고, 그것도 모자라서 방송까지 장악한 이명박 정부가 무슨 짓을 할 지, 상상이 가십니까? 이 정부는 약속 같은 건 손바닥 뒤집듯이 엎어버린다는 사실, 지금까지 보여온 모습으로도 충분히 입증되었습니다. 믿으십니까? 운하 안 한다는 말, 건강보험 민영화 안 한다는 말, 공기업 무차별 사유화 안 한다는 말, 국민들의 목소리에 귀기울이겠다는 말, 그 약속들은 조만간 언론 장악과 함께 휴지조각처럼 구겨지고 말 것입니다. 그나마 지금은 자근자근 밟히는 목소리에 언론들이 관심이라도 좀 가져 줬지만, 아마도 정권에 장악 당하고 만 방송은 그렇게 되진 않을 것입니다.
YTN은 일단 사장은 앉혀 놨고, KBS도 조만간 정권의 충실한 파수꾼이 저 하늘 위에서 낙하산을 타고 내려올 겁니다. SBS야 원래 알아서 눈치 잘 보는 곳이고, 이제 MBC만 평정하면 이명박은 확실히 여의도와 방송을 '실효적 지배'하는 셈입니다. 지금 KBS 노조야 자기들의 철밥통을 걷어차 버려서 눈엣가시 같았던 정연주 사장을 드디어 쫓아내게 됐다고 축배를 들겠지만, 조만간 구조조정의 칼날이 그 축배를 든 손을 다 잘라버릴 겁니다. 기대하세요, KBS 노조. 고종이 싫다고 한일합방에 찬성한 꼴인 KBS 노조가 갈 길은 두 가지입니다. 확실한 어용 노조로 이명박의 충실한 주구가 되던가, 아니면 구조조정으로 철밥통이 통째로 날아갈 상황에서 그제서야 공영방송 지키겠다고 울부짖던가. 누가 그 밥그릇 지켜 준다고 나설 사람이 있기나 할지 참 궁금합니다.
어쨌거나, 이제는 경찰 없이는 연명할 수조차 없게 되어 버린 이 정부가 작은 정부가 되기는 글러먹었습니다. 기동대도 만들고, 최루액도 쏘고, 마일리지 적립도 해 주고, 그러려면 세금도 많이 필요하고 정부가 작아지기는 틀렸습니다. 아, 그래도 작은 정부가 되는 방법이 있긴 있습니다. 경찰 조직을 다 정리하고 경찰 업무를 세콤(에스원)에 넘기면 되겠습니다. 그래서 시위대 한 놈 잡아 오면 5만 원, 2만 원, 이렇게 현찰 박치기로 주면 정말 작은 정부가 될 것 같습니다. 경찰도 민영화하면 작은 정부는 확실히 될 것 같습니다. 사실 지금 정부가 뭔가 일을 하고 있다는 존재감을 느끼는 게 경찰 말고 뭐 있나요? 경찰만 민영화하면 작은 정부 정도가 아니라 '없는 정부'가 될 수도 있으니 한번 고려해 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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