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충격적인 소식 두 가지를 들었습니다. 재즈 색소폰 주자인 자니 그리핀, 그리고 재즈와 블루스,  펑크(funk)를 넘나들면서 걸죽한 기타와 보컬을 보여주었던 하이럼 불록이 같은 날짜인 7월 25일에 세상을 떠났다는 사실입니다. 사람 좋아 보이는 외모에 호탕하면서 선 굵은 색소폰을 보여주었던 자니 그리핀이 타계한 것도 충격이지만 제게는 하이럼 불록이 세상을 떠난 게 더 큰 충격으로 다가 옵니다. 사실 자니 그리핀이야 1928년으로 올해 80세. 천수를 누리고 세상을 떠났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만, 하이럼 불록은 1955년생으로 이제 겨우 52살입니다. 60이 넘어서도 현역으로 활동하는 뮤지션들이 수두룩하다는 점을 생각해 보면 하이럼 불록이 세상을 떠난 건 정말 생각지도 못한 일입니다.




재즈를 좋아하는 분들이라면 자니 그리핀이란 이름은 많이 들어보셨을 것입니다만, "하이럼 불록이 누구지?" 하고 고개를 갸우뚱하는 분들이 상당히 많으실 줄로 압니다. 이 정도로 얘기하면 이 분이 대단한 뮤지션이라고 고개를 끄덕이실까요? 봄여름가을겨울의 기타리스트인 김종진 씨가 하이럼 불록이 쓰던 기타를 비싼 값에 사들이고 어린애처럼 좋아했다는 얘기가 있죠. 하이럼 불록이 마약에 빠져서 한참 헤메던 때에 가지고 있던 악기까지 헐값에 팔아치운 것을 앨범 녹음 차 미국에 있던 김종진 씨가 우연히 건진 거라고 합니다(헐값이라고 하지만 그래도 비싸죠). 나중에 하이럼 불록이 그 기타를 돌려 달라고 요청을 했는데 김종진 씨가 그랬대나... "그 양반 마약 끊으면 생각해 보죠." 그에 대한 불록 쪽 관계자의 대답은 이랬답니다. "그냥 당신이 평생 써라!" 어쨌거나 천년동안도에서 한상원 밴드 공연 때 김종진 씨와 하이럼 블록이 잼 세션을 한 적도 있고, 종종 내한 공연을 통해서 한상원 씨를 비롯한 한국의 뮤지션들과 즐겨 어울린 분이니 이 양반 우리나라 음악계와도 인연이 많은 분입니다.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김종진 씨의 기타를 들어 보면 하이럼 불록의 영향이 꽤 많다는 점이 느껴질 뿐더러, 우리나라에서 블루스와 재즈에 락이 섞인 듯한 끈끈한 기타를 구사하는 분들이 손꼽는 우상 가운데 하나가 하이럼 불록입니다. 하이럼 불록은 자코 패스토리우스, 칼라 블레이, 스틸리 댄, 마커스 밀러를 비롯한 거물들과 함께 재즈 락 퓨전을 풍미했던 인물이자. 저 유명한 <데이빗 레터맨 쇼>의 하우스 밴드로도 인기를 얻었던 인물입니다.

그리고 그의 음악 활동은 재즈에만 그치지 않았고, 샤카 칸, 스팅, 제임스 테일러, 폴 사이먼과 같이 재즈에서 팝에 걸쳐 있는 뮤지션들의 공연에서도 그 실력을 뽐낸 바 있으며, 길 에반스 & 마일즈 데이비스 오케스트라에 참여한 바도 있습니다. 그만큼 다양한 음악 세계를 품에 안으면서 대단히 화려한 초절 기교를 자랑하는 스타일은 아닙니다만, 특유의 점도가 높고 귀에 끈끈하게 달라 붙는 듯하며, 펑키한 그루감으로 윤기가 잘잘 흐르는 기타 스타일로 특히 뮤지션들이 많이도 선망했던 그런 기타리스트였습니다. 하이럼 불록이 타계했다는 소식을 들으니 걸쭉한 목소리와 찰진 기타로 주욱 뽑아내던 'Sooner or Later'가 어른거립니다. 단순히 '재즈 뮤지션'이라고 말하기 뭐할 만큼 폭이 넓었던 뮤지션이었습니다. 아마도 락을 좋아하는 분들이라면 '락 뮤지션'으로 기억할 이름이겠죠.

2007년에 후두암 진단을 받았지만 병마를 이겨낸 듯 보였던 하이럼 불록. 하지만 끝내는 10년을 넘게 이어졌던 약물 중독을 이기지 못하고 그 때문에 얻게 된 암과 합병증으로 세상을 떠났다고 하니, 참 허망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재즈 뮤지션들은 왜 이리도 약물에 나약한지... 아마 하이럼 불록이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들으면 김종진 씨도 왠지 하이럼 불록이 썼던 그 기타를 붙들고 한잔 들이키고 있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재즈 역사에서는 자니 그리핀이 차지하는 무게가 훨씬 묵직합니다. 'The Little Giant'라고 할 만큼 키가 무척 작았지만 그가 부는 색소폰의 음색은 마치 거구가 부는 것처럼 호탕하고 선이 굵었습니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블루스 기타의 거장인 T-본 워커와도 함께 했고 학교를 졸업한 뒤에는 라이오넬 햄프턴의 밴드에 들어가면서 프로 생활을 시작할 만큼 재능이 출중했죠.

모던 재즈에서부터 이를 넘어선 포스트 시대까지 자리를 차지하면서 텔로니우스 몽크, 아트 블래키의 재즈 메신저에도 이름을 올렸고, 존 콜트레인, 행크 모블리라는 당대 최고의 명수들과 함께 한 <A Blowing Session> 같은 굉장한 앨범도 있습니다. 이 앨범은 테너 말고도 피아노에 윈튼 켈리, 베이스에 폴 챔퍼스, 드럼에 아트 블래키라는 지독할 만큼 슈퍼 세션을 자랑합니다. 호탕하고 묵직한 느낌을 가지면서도 스피드 넘치는 주법에도 일가견이 있었던 테너 주자였지요. 60년대에는 여러 재즈 뮤지션들에게 유행이었던 유럽 이주에 그리핀도 올라타서 프랑스에 둥지를 틉니다. 네덜란드에서도 살았다가 다시 프랑스에 정착한 그리핀은 평생 프랑스에서 살았고 그 곳에서 유럽, 그리고 미국의 뮤지션들과 교류하면서 꾸준한 활동을 펼치다가 프랑스에서 숨을 거두었습니다. 숨지기 겨우 나흘 전인 7월 21일에도 프랑스에서 공연을 했다니 정말이지 천상 뮤지션이었나 봅니다.




두 사람이 한 날에 숨을 거두었다는 사실도 참 안타깝습니다만, 무엇보다도 아직은 50대 초반이라 한참 더 할 일이 많은 하이럼 불록이 일찍 세상을 등졌다는 사실이 정말로 안타깝습니다. 뭐 어쩌면 많은 재즈 팬들에게야 자니 그리핀 타계가 더 안타까운 일이겠습니다만, 저는 그리핀보다는 깨진 유리창 너머로 정면을 응시하는 하이럼 불록의 얼굴이 인상적이었던 <World of Collision> 판 찾아서 'Sooner or Later'나 들어 보면서, 아니면 자코 패스토리우스와 클럽 라이브 했던 실황을 대충 휴대용 녹음기로 녹음한 아주 음질 꽝인 <Live in the New York>에 실린 'Late Night Talk with You'(몇 번째 장에 있더라)라도 들으면서 두 거장의 명복을 빌어야겠습니다.

  • 뱀발 1 : 한 가지 재미있는 것은 하이럼 불록은 일본 오사카 태생이라는 점입니다. 하지만 태생이 그랬을 뿐이고 두 살 때 미국으로 와서 주욱 미국에서 살았습니다. 아마도 부모가 주일 미군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만.
  • 뱀발 2 : 한국의 콜트 악기에서 하이럼 불록 시그니처 기타를 만들었지요. HBS-II라는 모델입니다.
  • 뱀발 3 : 봄여름가을겨울은 다섯번째 앨범에서 하이럼 불록에게 헌정하는 'Geko Funk'란 곡을 넣은 바가 있습니다.
Posted by MP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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