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재근 씨가 이효리 뮤비 논란에 대해서 다시 한 번 글을 올리셨습니다. 그 글을 읽고 다시 한번 글을 올립니다. 먼저 하재근 씨는 문제가 된 처음 글에서 "성적 대상으로 희화화하면 안 되나"라고 제목을 달았습니다. '그게 뭐 어때서?'라는 투입니다. 그리고 내용 가운데 대부분도 마초들이 여성들을 손쉽게 생각하는 몰이해를 적나라하게 드러냈습니다. 그래 놓고서 달랑, '간호사 이미지의 성적 소비를 비난할 순 있지만 금지할 순 없다' 요거 하나 넣었다고 "내가 뭘?" 하면 진짜 치사한 플레이입니다. 그건 실컷 야동 틀어놓고 마지막에 주인공 죽인 다음에 '건전 성문화를 이룩합시다'라는 표어 하나 넣었다고 '이거 올바른 성문화를 위한 영화라니까!'라고 말하는 거랑 다를 바가 없습니다.

어쨌거나 하재근 씨가 아주 대견스러워하는 "간호사 이미지의 성적 소비를 비난할 순 있지만 금지할 순 없다"는 문구도 사실은 번지수 틀린 자기만의 생각일 뿐입니다. 왜냐하면 문제 장면을 삭제하게 된 것은 간호협회에서 현실적인 협박을 한 것도 아니고 항의가 들어오자 제작사에서 알아서 긴 것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서, 협회에서 '니네들 병원에 오면 치료 안 해 줄거야'라든가 방송사에 단체로 협박 전화를 해서 방송을 못 나가게 만들겠다라든가 집단으로 몰려가서 시위라도 했다던가, 이런 식으로 실체화 된 압력을 넣은 것도 아니고 그야말로 하재근 씨가 말한 '비난' 수준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명예훼손 고소 문제에 대해서 간호협회에서는 박미경 때에도 패소했다는 예를 들면서 법적 대응에는 소극적이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간호협회에서는 그동안 수도 없이 자신들의 뜻과는 전혀 상관 없이 간호사란 상징성을 성적 노리개로 희화화 해 온 대중문화의 폭력에 대한 울분을 토로한 정도이고, 제작사에서는 사실 그 장면을 딱히 지키고 싶은 생각도 없고, 그냥 항의 들어오고 말썽 생기니까 뺀 것에 불과합니다. 간호협회에서도 대응을 고려하는 상황에서 제작사가 알아서 빼겠다니까 없던 일로 하겠다는 게 반응입니다. 막후의 추측은 몰라도 적어도 언론에 보도되고 있는 내용은 이 정도이고 협회에서 공식적으로 '삭제하라'고 성명을 낸 것도 아닙니다. 공개적으로는 기껏해 봐야 아고라에서 청원이 올라온 정도이고 조직적으로 압력을 행사한 어떤 증거도 없습니다. 이걸 가지고 권력 타령을 하는 것은 명백한 '오버'입니다. 이른바 '이익집단'이 그 정도 항의도 못한다면 매체에서 표현의 자유니 예술이니 내세워서 무슨 짓을 하든 그냥 입 다물고 살아라 이건가요? 그것 역시도 권력과 폭력성을 충분히 담고 있는 발상입니다. 그럼으로서 그 이익집단이 현실에서 일상에서 피해 받는 것은 어쩔 겁니까? "남자들에게 올바른 성윤리가 자리잡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하나마나한 얘기나 하실 텝니까?

이번 문제에 대해서 하재근 씨는 이익집단의 권력만을 내세우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익집단의 권력만 권력이 아닙니다. 표현의 자유라는 이름으로 매스 미디어에서 벌어지는 폭력 역시도 하나의 권력이 될 수 있습니다. 매스 미디어란 일방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뮤비는 하나지만 동시에 전파를 타고 나가서 불특정 다수에게 꽂힙니다. 더구나 뮤비는 무슨 편성표에 나와 있는 것도 아니고 그냥 틀다 보면 예기치 못하게 보기 쉬운 비디오입니다. "싫으면 안 보면 된다"는 이명박식 논리만을 강변하기 어려운 이유도, 그렇게 내가 선택한다고 안 볼 수 있을 만큼 통제가 쉬운 게 아니기 때문입니다.

표현의 자유는 존중 받아야 합니다. 문제는 그것이 어떤 채널을 통해서 나가느냐에 따라서는 존중의 정도가 달라질 수 있다는 겁니다. 만약에 공중파 TV에서 <색,계>를 무삭제로 내보내겠다면, 그것 역시도 '비난할 수는 있지만 금지할 수는 없다'라는 논리가 통해야 할까요? 왜냐하면 이런 표현의 채널들은 한 점에서 불특정 다수를 향하는 '일방적'인 매체이기 때문입니다. 수용하는 쪽에서는 당장 반응하기도 어렵고 반응을 한다고 해도 매스 미디어가 내보낸 위력에 비하면 효과가 훨씬 미미합니다. 이런 채널과 경로의 특성을 고려하지 않고 표현의 자유만을 절대시하여 주장하는 것은 그 표현의 자유가 가져올 폭력에 시달릴 사람들을 너무 생각하지 않는 처사입니다. 표현의 자유를 인정해야 하지만 그 표현의 자유 때문에 피해를 볼 사람들에 대한 이해는 너무 부족합니다. 더구나 그 피해가 자신들이 자초한 것도 아니고 정당한 근거조차도 없이 그냥 부당하게 당하기만 해 온 피해라면 더더욱 그에 대한 이해와 배려는 필요합니다. 하재근 씨의 글 어느 곳에 그런 이해와 배려가 있습니까? 그저 이익집단의 권력 행사로 매도하는 모습 뿐이었습니다.

또한 이번 문제는 단순히 '여자라서 행복해요' 식의 문제와는 다른 문제입니다. 그 이유는 첫째로, 이 문제는 단순한 직업의 문제나 여성의 지위 정도가 아니라 여성을 성적 대상으로 희화화하는 데서 오는 성폭력 문제와 연결되어 있고 이것은 이익집단의 권력보다는 우리 사회에서 뿌리 깊게 박혀 있는 남성과 여성의 권력 관계가 더 큰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둘째로, 추상적이거나 예상되는 피해가 아니라 현실에서 이미 구체적이고 지속적으로 당해오고 있는 피해이기 때문입니다. 저도 법이나 물리적 억압을 통한 '금지'까지는 동의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럼 안 되나?"는 철면피같은 얘기에도 동의할 수 없습니다. 간호협회는 직접적인 피해 당사자로서 그들이 할 수 있는 문제제기와 항의를 했고, 제작사는 받아들여서 뺀 것입니다. 어떤 구체적인 물리력이나 협박에 강압을 당해서 마지못해 한 것이 아니라는 겁니다. 그런데 마치 표현의 자유가 심각한 타격을 받은 것처럼 오버하면서 '성적 대상으로 희화화하면 안 되나'라고 얘기하면 곤란합니다. 비판할 권리가 있다고 해 놓고서는 비판에 '금지'란 너울을 덧씌우는 반칙은 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것도 모자라서 '파쇼'란 무지막지한 말까지 나오는 걸 보니까 침소봉대도 이만저만이 아니라는 생각이 드네요. 파쇼란 말은 국가가 권위와 물리력을 가지고 개인을 통제하려고 드는 것을 뜻하는 말입니다. 백번 양보해 봤자 이익집단의 집단 이기주의 쯤이라고 얘기하면 될 것을 파쇼라니 원 오버도 이런 오버가... 그럼 우리 집 앞에 쓰레기장 들어올 수 없다고 데모하는 것도 파쇼겠군요. 하재근 씨의 논리대로라면 민주주의 국가일 수록 파쇼의 천국이겠습니다. 국가가 권력과 권위를 가지고 '그런 건 하면 안 된다'고 말하는 것과 일개 국민이나 별 대단한 힘도 없는 집단이 '그런 건 하면 안 된다'고 말하는 것은 글자는 똑같이 생겼어도 맥락이나 그 말이 가지는 억압의 정도는 차원이 다릅니다. 그거 구별 못하면 민주주의의 ABC부터 다시 배워야 합니다.

마침 어떤 분이 좋은 예를 알려주셨더군요. 2007년에 브리트니 스피어스의 전 남편이었던 패더라인은 잘 나가던 스타에서 한순간 패스트푸드점 종업원으로 전락하는 내용의 보험회사 광고를 찍었는데 전국의 패스트푸드점 종업원들한테 항의를 받았습니다. 식당 종업원들을 패더라인처럼 부인 돈보고 결혼했다 이혼하고 위자료로 먹고사는 한심한 인생으로 그렸다는 이유죠. 이효리 뮤비는 오히려 남성의 여성에 대한 권력, 대중매체의 대중에 대한 권력 속에서 나타난 뮤비 내용에 대해서 항의하니까 강압에 못이겨서가 아니라 시끄럽고 귀찮으니 자기가 헌신짝처럼 '자유로운 표현'을 버린 것에 불과합니다. 간호사들을 매체를 통한 지속적인 성적 왜곡으로 인해서 일상에서 성폭력 속에 시달려 온 피해자로 이해할 생각은 않고 이익집단으로만 보면서 정작 '비판'과 '금지'를 혼동한 나머지 되지도 않은 '파쇼' 칼부림까지 하는 사람은 하재근씨입니다.
Posted by MP4/13

BLOG main image
Drive with your sense. by MP4/13
Add to Technorati Favorites

카테고리

분류 전체보기 (1202)
광속질주 (205)
취생몽사 (160)
주지육림 (3)
독서삼매 (10)
음담패설 (28)
전광석화 (146)
우매상자 (66)
포장후면 (20)
악마사전 (6)
팔도유람 (20)
혹세무민 (508)
일상포착 (30)
Total : 3,916,121
Today : 610 Yesterday : 6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