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하재근 씨가 블로그에 올린 '간호사는 성적 대상으로 희화화하면 안 되나'란 글을 보고 벌린 입 다물지 못해서 글을 올립니다. 일단 너무나 당당하게 붙인 저 제목만으로도 그야말로 눈을 의심하게 만들 얘기입니다. 저도 야동 볼 만큼 본 놈이고 성에 대해서는 나름대로 오픈되어 있다고 생각합니다만, 그건 어디까지나 개인의 문제입니다. 하지만 간호사고 뭐고를 떠나서 여성이 절대 다수를 차지하는 직업을, 그리고 이미 여러 경로를 통해 성적 아이콘으로 종종 왜곡되어 온 직업을 매체를 통해서 대중들에게 성적 대상으로 희화화하는 것이 뭐 어떠냐는 발상에는 그야말로 어이가 없을 따름입니다. 물론 그 동안 '간호사 비하 논란'을 비롯해서 특정 직업에 대한 폄하 시비가 자주 있어 왔고, 다른 문제에서는 저도 표현의 자유 쪽에 손을 들어 왔습니다만, 문제는 이번 경우는 단순한 직업에 대한 비하를 넘어서 하재근 씨 본인도 인정했듯이 간호사를 '성적 대상'으로 만들어 버렸다는 겁니다.

남자들끼리 노는 커뮤니티나 술자리에서 지저분한 성적 얘기나 여성에 대한 성적 비방 가운데 가장 많이 등장하는 직업을 꼽으라면 간호사와 승무원입니다. 이게 일본 야동의 영향을 많이 받아서인지 원래 여성 제복에 대한 페티쉬가 있어서 그런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유난히 단골로 등장하는 직업군 1, 2위를 다투는 게 저 두 직업입니다. 그리고 온라인에서, 오프라인 술자리에서 이런 '찐한' 얘기를 주고 받는 사람들을 보다 보면 저게 그냥 농담만은 아니더라는 겁니다. 그런 사람들의 사고 속에서는 그 직업의 여성들이 속된 말로 '잘 주는 여자' 정도로 생각되게 마련이라는 겁니다. 바꿔 말하면 남자들의 성적 판타지 속에서는 간호사복이나 승무원복이 성적으로 문란한 여성들의 유니폼처럼 되어 버렸다는 겁니다. 사실 남자들 중에서 그 제복에 대해서 성적인 공상을 안 해 본 사람 있다면 거짓말일 겁니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그게 그저 머릿 속 공상으로만 끝나는 게 아니라 현실 속에서 드러난다는 겁니다. 그런 성적인 이미지 때문에 간호사들은 병원에서 상당히 곤란한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호소합니다. 남자 환자들 중에서 노골적으로 간호사들을 그런 '잘 주는 여자' 취급하면서 음란한 성적 농담을 던지거나 그야말로 '끈적한 시선'으로 간호사를 훑어보는 경우들이 종종 있습니다. 엉덩이 툭툭 치고 팔꿈치로 은근슬쩍 가슴 만지고, 그렇게 간호사 알기를 우습게 아는 환자들의 머릿 속에 뭐가 있을까요? 물론 밖에 나가서 아무한테나 그런 짓을 할 수도 있겠죠. 하지만 병원에서는 간호사에 대한 성적 판타지에 더해서, 자신이 몸이 아픈 약한 환자라는 게 방패가 됩니다. 간호사들이 남자 환자들의 음란한 말이나 성희롱에 종종 시달린다는 호소는 어제 오늘 일이 아닙니다. 여기에 의사들로부터 받는 성희롱이나 성폭력 스트레스도 만만치 않습니다. 그러다 보니 과중한 업무와 불규칙한 근무 시간, 여기에 잦은 성희롱으로 오는 스트레스까지 겹쳐서 요즘 종합병원들이 간호사가 모자란다고 아우성인 판입니다. 간호사란 직업은 여전히 우리나라에서는 수요에 비해 공급이 달리는 지라 거의 철밥통 수준이라고 봐도 좋을 정도입니다. 그런데도 그나마 간호사 면허증 가진 사람들도 종합병원을 기피해서 병원마다 간호사 못 구해서 난리일 정도면 심각한 상황입니다. (급여는 종합병원이 개인병원보다 좋습니다) 그런 성희롱에 간호사 제복을 성적 대상으로 희화화했던 야동이나 에로 비디오들이 한몫했다면 비약인가요?

비디오 가게에 빨간 딱지 붙어 있는 에로 비디오도 아니고, TV를 통해서 안방으로 버젓이 방송되는 뮤직 비디오를 보고 여성들이 성적 수치심을 느낄 정도였다면 이건 성폭력입니다. 그 뮤비의 주인공이 여성이라고 해서 성폭력이란 비난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하재근 씨는 지금 '성폭력이 뭐 어때서?'란 얘기를 하고 있는 겁니다. 정말 그렇습니까? 하재근 씨? 여성 간호사란 직업을 안방 TV에서 성적으로 희화화해도 괜찮다는 겁니까? 그것도 표현의 자유니까 막아서는 안 된다, 이 말씀이신가요? 그럼 아예 교복도 성적으로 희화화하면 어떻겠습니까? 제복 페티쉬의 결정판은 교복 아니겠습니까? 왜요? 미성년자는 안 되고 성년 지나면 자기 뜻과 상관 없이 성적으로 희화화 당해도 괜찮나요? 그야말로 '보는 놈이나 볼' 에로 비디오도 아니고 음악 채널을 통해서 주야장천 안방에 나갈 뮤직 비디오에서 말입니다.

덧붙여, 저도 남자입니다만 하재근 씨의 글에서는 정말이지 마초로서 여성에 대한 몰이해가 짙게 묻어납니다. "간호사가 섹시한 컨셉으로 나오던 뭐가 문제란 말인가?"라는 문구에서 '뭐 이 정도면 섹시하지 여자들이 뭘 오버를 해?'라는, 다분히 남성의 관점에서 여성을 성적 대상으로 취급하는 게 뭐 어떠냐는 시선이 그대로 드러납니다. 회식 자리에서 여성이 성적 수치심을 느낄 만한 성희롱을 해 놓고서, "예쁘고 친한 후배라서 귀엽다고 토닥거려 줬는데 뭘 그걸 가지고 오버야?" 하는 늑대같은 회사 상사의 논리랑 통하는 얘기죠. 남자들의 눈에는 문제의 장면이 "간호사가 섹시한 컨셉으로 나오던 뭐가 문제란 말인가?" 정도로 비칠 수 있겠죠. 하지만 여성의 눈으로 봤을 때에도 과연 그게 '섹시한 컨셉' 정도로 비치고 말 문제라고 생각하십니까? 하긴, 그런 관점이 아니었다면 이런 어처구니 없는 '여성을 성적 대상으로 희화화 하는 게 뭐 어떠냐'는 글은 나오지도 않았을 겁니다. 아무래도 하재근 씨는 이런 글 다시 쓰기 전에 성폭력에 관한 여성 단체의 교육을 먼저 받으시는 게 합당할 듯합니다.
Posted by MP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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