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는 양날의 칼과 같습니다. 종교가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의 편에 서면 종교는 백성들에게 힘과 위안이 되고 부당한 권력에 감히 맞설 수 있는 용기를 주기도 합니다. 하지만 종교가 돈과 권력을 가진 사람들의 편에 서면 백성들을 억압하면서 자신의 편안한 삶을 보장해 주는 도구가 되기도 합니다. 그래서 사이비 종교가 아닌 바에야, 언제나 힘없고 가난한 사람들의 편에 설 것을 직접, 또는 간접으로 주문하게 마련입니다. 하지만 현실 속에서는 양날의 칼을 다 보게 됩니다.
장로 대통령이 두 번이나 탄생한 덕택에, 그리고 그 장로들이 사이 좋게 나라를 잘 말아 드신 관계로 기독교에 대한 감정들이 상당히 안 좋습니다만, 천주교라고 예외는 아닙니다. 이미 명동성당은 '민주화의 성지' 같은 꼬리표는 떨어진 지 오래입니다. 세계성체대회라는 대형 이벤트를 주관하면서 천주교의 주류는 권력과 급속도로 유착되기 시작했고, 우리나라에 계신 두 분 추기경이 요즘 하는 말씀들을 보면 조중동 논설위원 수준입니다.
그래도 백성을 걱정하는 사제들은 몇 날 몇 달을 거리에 나와서 분노하는 백성들을 위로하고, 분노 대신에 평화를 주기 위해서 거리에서 함께 했습니다. 적어도 그 사제들이 함께 했던 때만큼은 거리에 충만한 평화가 깃들었습니다. 그러나, 추기경 타이틀을 달고 계신 분은 당장 거리를 헤메는 백성보다는 다른 쪽을 걱정하고 계십니다. 스케일이 크셔서 그런지는 몰라도 말이죠. 정진석 추기경은 민주당 정세균 대표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국가신인도와 국가 인상을 늘 염두에 두고 행동해야 한다... 거리에서 무슨 일이 생기면 즉각 전세계로 전파돼 투자자도 적어지고 관광객도 적어질 우려가 있어 결과적으로 국민 전체가 피해를 본다"
참 재미있는 풍경입니다. 정의구현사제단 신부님들은 백성들이 걱정돼서 거리로 나서서 비폭력 평화를 지키는데 추기경은 투자와 관광을 걱정하고 있습니다. 결국 0.01%라도 국민 전체가 피해를 본다는 나비효과식 논리로 말입니다. 그러나 투자와 관광이 는다고 해서 국민들한테 골고루 돌아가지도 않을 정도로 사회양극화는 극에 달하고 있는데, 힘 있고 돈 있는 자의 논리를 앵무새처럼 되뇌이는 추기경님의 모습을 보니 역시 권력 가진 사람들은 세속이나 종교나 다 그런가 봅니다. 저 얘기는 얼마 전 이명박 대통령이 해외 기자들에게 떠들던 딱 그 말을 그대로 생각나게 합니다.
"그러나 (촛불)시위가 계속되면 우리나라의 경제에 부정적 요소가 생기고 외국정부와의 협상은 물론 한국경제의 미래에 대한 외국투자자들의 인식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다."
하지만 못 믿을 미국산 쇠고기가 졸속협상을 통해서 들어오게 되는 데서 오는 국민들의 불안과 분노 역시도 국민들 전체에게 피해로 돌아옵니다. 이미 이명박은 블레어의 뒤를 잇는 부시의 푸들로 국제 사회에서 웃음거리가 되고 있습니다. 외교 정책의 실패와 환율 정책 실패로 국가신인도와 국가 인상은 추락했습니다. '거리에서 생긴 무슨 일'은 이런 실패가 이어지면서 나타난 현상입니다. 이런 거 설마 모르셔서 말 안한 거라 생각하지 않습니다. 권력 가진 사람들의 편에 서서 외면한 거죠.
분명히 예수님은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 편에 서야 한다고 했는데, 추기경님은 투자와 관광의 편에 섰습니다. 성경 어느 구절에도 그런 얘기는 나와 있지를 않습니다. 정진석 추기경님께 외람된 말씀 드리자면, 정말로 투자와 관광이 줄어들까 걱정되면 국민 불안을 해소시키기 위해서 솔선수범해서 삼시 세끼 미국산 쇠고기를 드시고, 곱창이 수입되면 밤마다 곱창도 구워드시기 바랍니다. 믿지 못할 쇠고기가 들어와서 국민들이 불안해 하는 것도 국민 전체가 피해를 보는 것인데, 졸속협상으로 국민들을 불안하게 한 정부에 대한 비판은 외면한 채로 촛불 때문에 관광이나 투자가 줄어드는 게 걱정되신다면 미국산 쇠고기 시식 행렬에 동참해서 국민들의 불안을 풀어 주는 데 몸소 솔선수범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비록 추기경이라는 화려한 간판은 달았을 지언정, 권력에 도취되어서 힘 있는 자의 편에 서서 백성들을 억압하는 데에 가담하는 사제는 결코 양떼들을 올바른 길로 이끌 수도 없으며, 그 양떼들이 그런 목동의 말을 들을 리도 없습니다. 권력이 그렇게도 달콤하면 그냥 푹신한 의자에 앉아서 조용히 즐기시기 바랍니다. 제발 나서서 떠들면서 사제들이 기껏 좋게 만들어 놓은 천주교에 대한 이미지 다 깎아 먹지 마시고요.
'혹세무민' 카테고리의 다른 글
| 2MB 국정철학 구현하는 KBS, 어떤 모습일까? (4) | 2008/07/20 |
|---|---|
| 미국 쇠고기 홍보 사이트로 둔갑한 농림수산부의 농림정보 포털 (6) | 2008/07/19 |
| 백성을 걱정하는 사제, 관광을 걱정하는 추기경 (6) | 2008/07/19 |
| 돌려막기 정부, 금강산과 독도로 쇠고기 돌려막나 (11) | 2008/07/18 |
| 너씨앤개씨, 새로운 대출상품 출시 (0) | 2008/07/18 |
| 2MB가 생각하는 앰네스티는? (3) | 2008/07/18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