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모나코 그랑프리가 팀 오더 문제로 시끄러웠습니다. 맥클라렌 팀이 압도적인 전력으로 1-2 피니시를 차지한 것까지는 좋았습니다만, 루이스 해밀튼이 페르난도 알론소에 이어서 2위로 들어온 것에 '팀 오더'가 작용했다는 게 논란이 된 것이죠.
'팀 오더'란 팀에서 드라이버들에게 결과에 영향을 미치는 작전을 지시하는 것을 말합니다. 가장 많이 나오는 예가 바로 2002년 오스트리아 그랑프리였습니다. 당시 루벤스 바리켈로가 선두를, 미하엘 슈마허가 2위를 달리고 있었고, 그 격차는 꽤 컸습니다. 그냥 널럴하게 달려도 바리켈로가 우승이었죠. 하지만 막판에 들어서면서 바리켈로가 갑자기 페이스를 뚝 떨어뜨리면서 슈마허가 격차를 크게 좁혔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랩에서 마지막 코너를 돌 때, 바리켈로는 페이스를 급격히 늦추었고 슈마허가 자신을 앞지르도록 합니다. 무선 교신 같은 거 들어볼 필요도 없이 이건 명백한 팀 오더였습니다. 슈마허도 미안했던지, 시상식에서 바리켈로를 1위 자리에 올리고 자기 우승 트로피까지 쥐어줬고, 결국 이 사건으로 페라리는 1백만 달러라는 엄청난 벌금을 맞았습니다. 시상식 절차를 흐트러뜨리는 행동은 아주 엄중한 처벌을 받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벌금 가운데 반은 집행유예가 되어서 흐지부지됐죠) 하여간, 그 뒤로는 아예 규정에다가 "레이스 결과에 영향을 미치는 팀 오더는 명백하게 금지된다"라는 조항을 넣었습니다.
이번 맥클라렌 '팀 오더' 논란에서 쟁점은 두 가지입니다.
- 루이스 해밀튼은 페르난도 알론소보다 다섯 바퀴 더 돌 수 있는 연료를 가지고 있었지만, 첫번째 피트스탑은 알론소보다 겨우 세 바퀴 뒤에 이루어졌다.
- 첫번째 피트스탑 뒤에, 팀 단장 론 데니스는 드라이버들에게 서로 경쟁하지 말고 페이스를 늦추라고 지시했다.
첫번째 쟁점에 대해서 얘기해 보죠. 모나코는 워낙에 사고가 많고, 트랙 바깥으로 여유 공간이 없어서 사고가 나면 코스가 막히는 경우가 많아서, 세이프티 카가 자주 나옵니다. 그래서 지난 5년 동안 세이프티 카가 네 번 나올 정도였습니다. 따라서, 이번 경기에서는 많은 차량들이 1 스탑 작전을 선택했습니다. 1 스탑 작전을 쓴 자세한 이유는 앞전에 썼던 모나코 그랑프리 관련 글을 보시면 됩니다. 맥클라렌은 그럼 어떻게 했느냐, 두 드라이버들의 작전을 나누었습니다. 페르난도 알론소는 완전 2 스탑 작전을, 루이스 해밀튼은 상황에 따라서 1 스탑으로 전환할 수 있는 작전을 썼습니다. 그래서, 첫번째 스틴트에 세이프티 카가 발령되면 루이스는 1 스탑으로 전환해서 세이프티 카가 나오든 아니든 두 드라이버 중에 하나는 우승 기회를 잡을 수 있도록 한다, 이게 론 데니스의 생각이었습니다.
아참, 겨우 다섯 바퀴 더 도는 연료를 가지고 해밀튼이 1 스탑이 되냐? 싶으신 분들도 계실 텐데, 세이프티 카가 나오면 연료 소비량이 크게 떨어집니다. 보통 때는 급가속, 급정거가 되풀이면서 많은 연료가 소비되지만 세이프티 카가 나오면 거의 정속 주행을 하기 때문에 연료를 많이 절약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5바퀴보다 꽤 많은 거리를 더 갈 수 있습니다. 그런데, 알론소의 첫번째 스틴트에 세이프티 카가 나오지 않았습니다. 알론소는 루이스와 상당한 격차를 벌렸지만, 백마커들에게 막히면서, 특히나 야르노 트룰리에게 세 바퀴 가까이를 막히면서 루이스와 벌려 놨던 격차를 다 까먹고 피트로 들어갔죠. 만약 예정대로 루이스가 5 바퀴를 더 돌고 피트로 들어갔으면 피트에서 나올 때 알론소보다 앞에 설 수 있었을 것이다, 이게 팀 오더를 주장하는 쪽 얘깁니다.
한편 론 데니스 얘기는 이렇습니다. 만약에 루이스가 다섯 바퀴를 더 도는 동안에 세이프티 카가 나오면 루이스는 큰 손해를 본다는 겁니다. 올해부터는 규정이 바뀌어서 세이프티 카가 발령되면 대열을 잡을 때까지 피트 입구가 폐쇄됩니다. 출구는 폐쇄되지 않습니다. 그럼 어떤 상황이 되느냐. 당시 루이스 해밀튼은 대략 31 랩 정도에 피트인할 예정이었고, 다른 차량들은 40 랩 정도에 피트인 할 예정입니다. 그렇게 되면, 루이스는 세이프티 카에 선두를 잡힌 상태로 격차를 다 까먹은 다음에 피트로 들어가야 합니다. 다른 차들은 10 바퀴는 더 돌 연료가 있었으니까, 5-6 바퀴 정도 돌게 되는 세이프티 카 발령 기간 동안에는 거의 들어가지 않겠죠. 루이스는 결국 가장 후미 쪽으로 내려앉게 됩니다. 그래서 스파이커 같은 차량들에게 한참 시간을 까먹은 다음에야 다른 차량들이 하나 하나 들어가면 경기를 망치는 거죠. 하지만 일단 루이스가 들어간 상태에서 세이프티 카가 나오면 이미 격차가 크기 때문에 어차피 피트아웃할 때 선두를 유지할 수 있고 한번씩 피트스탑이 남기 때문에 결국 순위를 확보할 수 있습니다.
두번째 쟁점은 좀 단순하죠. 팀 오더라고 주장하는 쪽은 론 데니스가 두 사람이 1위를 놓고 경쟁하지 못하게 했으며, 지시가 없었으면 루이스가 알론소를 앞지를 수도 있었기 때문에 팀 오더라는 거죠. 그리고 론 데니스는 모나코 같이 위험한 서킷에서 같은 팀끼리 경쟁하게 하면 사고 위험이 높은데다가, 압도적인 1-2위를 차지하고 있었고, 모나코 엔진을 캐나다에서 써야 하기 때문에 보호 차원에서 페이스를 늦추라고 한 것일 뿐이라는 주장입니다.
사실 일이 이 지경까지 간 거는 경기가 끝나고 루이스가 노골적으로 불만을 토로한 게 크죠. 그 바람에 오랜만에 나타난 영국인 스타에게 열광하던 영국 매체들이 자극을 받아서 비난을 퍼붓고, 문제가 커지니까 FIA가 조사에 들어갔습니다. 버니 에클레스톤은 이게 웬 떡이냐... 싶어서, 벌금 정도가 아니라 포인트를 날리던가 아예 챔피언십에서 맥클라렌을 빼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으나. 결국 FIA는 맥클라렌 손을 들어 줬습니다. 침 튀기던 버니만 바보 된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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