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한겨레신문 사설을 보니까 '국가정체성을 훼손한 것은 이명바 정부다'란 제목으로 된 내용이 있었습니다. 내용에 대체로 동의하지만 마지막에 이런 구절이 있었습니다.
촛불시위대와 보수단체 시위대도 거리에서 직접 충돌하는 등의 절제되지 못한 행동은 자제되어야 한다. 각자 자기 주장과 의사를 평화적인 방식으로 알리면 된다. 그런 성숙한 자세가 민주주의를 발전시키고 국가 정체성을 지키는 지름길이다.이런 것을 '양비론'이라고 합니다. 맞서고 있는 양쪽 당사자를 모두 비판한다고 해서 양비론이 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양쪽의 차이를 무시하고 문제를 평면화함으로서 똑같이 만들어 버리는 것은 양비론이 됩니다.
- 한겨레신문 2008년 6월 25일자 사설, <국가정체성 훼손한 것은 이명박 정부다> 가운데
과연 촛불과 보수단체 사이에서 일어나는 충돌이 같은 것입니까? 보수단체들은 이미 조직적으로 가담하고 있으며 돌발 행동도 아닙니다. 그야말로 애초부터 '빨갱이'들을 때려잡기로 작정하고 트럭에다 각목에다 쇠파이프까지 가득 실어 왔습니다. 무방이 상태의 여성을 각목으로 두들겨 팰 때, 보수단체에서 누가 비폭력을 외쳤으며 누가 말리려고나 했습니까?
반면 촛불 쪽을 봅시다. 이른바 폭력 사태라는 것도 전체 모인 시위대에 비하면 그 숫자도 미미할 뿐더러 그 정도로 보수단체에 비하면 훨씬 얌전합니다. 또한 여전히 대다수는 비폭력 평화 시위를 외치고 실행하고 있습니다. 심지어는 전경 버스에 불을 지르려고 했던 사람을 시위대가 잡아서 경찰에 넘기기까지 했습니다. 수만 명이 모인 집회에서 돌발적인 사태가 단 한 건이라도 없다는 것이 말이 됩니까? 흥분하고 몸싸움 하다 보면 돌발적인 폭력은 한두 건이나마 일어나게 마련이고, 그걸 모두 다 통제할 수 없는 게 현실입니다. 문제는 그것이 조직적으로 일어나는 것인지, 대다수가 그에 대해서 어떤 태도를 가지고 있는지입니다.
보수 언론을 보십쇼. 우익 테러는 눈 딱 감고 촛불 시위대의 폭력만 뻥튀겨서 그게 마치 시위대 전체가 과격 폭력 집단인 양 매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순수'와 '프로'를 이간질시키려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요즘 우리들의 모습을 보면 그들이 만들어 놓은 프레임에 갇혀서 허우적대는 모습이 보입니다. 그렇게 허우적대다 보니 촛불의 방향성에 대해서도 우리끼리 지리멸렬한 공방이 계속되고 있고, 혹시 순수성을 의심받을까, 폭력으로 매도될까, 겁을 먹고 있습니다. 그 순수니 프로니 폭력이니 하는 잣대들은 다 저들이 자기들 필요에 따라서 멋대로 만든 것인데도 우리가 거기에 얽매여서 안절부절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시위는 우리가 원하는 바를 관철시키기 위해서이지, '조중동이 보기에 참 좋았더라'를 위해서 하는 게 아닙니다.
어차피 정부나 조중동은 어떤 꼬투리를 잡아도 잡을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털어서 먼지 한 톨 안 나오게 하려고 노력해 봤자, 세상 일이란 귀에 걸면 귀걸이고 코에 걸면 코걸이입니다. 깃발이 올라가면 시위가 변질됐다고 떠들고, 쇠고기 이외의 문제를 거론하면 정체성에 대한 도전이라고 협박하고 있습니다. 그게 무서워서 그들 하라는대로 얌전하게 깃발도 다 내리고 딱 쇠고기 문제만 얘기하고 말 겁니까? 왜 시위를 그들 눈치를 살살 보면서 합니까? 그들 눈치 살살 보면서 하면 오냐 하고 "촛불시위 짱!"이라고 엄지 손가락이라도 치켜 세워줄 것 같습니까? 그들이 원하는 대로 하면 이명박 정부가 소통은 커녕 눈 하나 깜짝할 것 같습니까? 지금까지 앞으로만 고개 숙이고 돌아서면 뒤통수 친 게 한두 번이 아닌데 몇 번을 정부에게 더 뒤통수를 맞고 별을 봐야 알 것 같습니까?
조중동과 정부가 왜 요즘 발악을 하는지 생각해 보죠. 이제 위협을 느꼈기 때문입니다. 정부도 이제는 더 이상 갈 데가 없습니다. 추가 협상에 대해서도 사람들이 못 믿겠다고 하는 판이고, 미국 쪽 발표를 보면 이게 협상인지 아닌지도 아리송한 상황인데 이제 마지막 남은 것은 재협상이고, 만약에 재협상을 하게 되면 이명박은 미국에서 완전히 찍힐 겁니다. 한국 국민의 식탁보다 미국 축산업의 돈벌이를 더 걱정하는 이명박이 재협상을 하는 것은 그야말로 낭떠러지 아래로 떨어지는 겁니다. 그러니까 저렇게 검찰 경찰까지 총동원해서 요즘 좀 수그러든 듯한 촛불을 아예 밟아 꺼버리려고 마지막 발악을 하는 겁니다. 조중동도 광고 수주 곤두박질치고 수익 구조에 타격을 받으니까 저렇게 발광을 하는 겁니다. 어떻게 해서든 촛불을 꺼뜨리려고 발버둥을 치면서 온갖 왜곡을 일삼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 반대편에 서 있는 언론이라도 제대로 말해야 합니다. 촛불과 보수단체의 폭력을 똑같이 얘기할 게 아니라 어떤 차이가 있고 진짜 비판 받아야 할 폭력이 무엇인지를 가려서 얘기해야 합니다. '보수는 저렇게 한쪽만 뻥튀기하지만 우리는 공평하게 비판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서 양쪽의 차이를 구분조차도 하지 않는다면 이건 보수의 프레임에 갇혀서 제살을 깎아 먹는 겁니다. 우리 역시도 마찬가지입니다. 실체로 없이 저들이 제멋대로 만들어 놓은 순수니 변질이니 하는 틀에 얽매인다면 딱 저들의 덫에 걸려서 한 발짝도 더 나아가지 못할 겁니다.
우리는 우리를 위해서 싸웁니다. 저들 마음에 들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우리가 아무리 아름답게 해도 저들은 우리가 있다는 것 자체가 마음에 들지 않아 하는 사람들입니다. "좌파 박멸"이란 게 얼마나 살벌한 구호입니까? '박멸'이란 씨도 남겨 놓지 않고 다 죽여버리겠다는 뜻입니다. 저들은 우리를 박멸시키기 위해서 단 하나의 티끌에도 하이에나 떼처럼 달려들어서 물어 뜯을 겁니다. 우리의 에너지를 저들을 공격하기 위해서 써야지, 왜 몇 알 되지도 안는 우리의 먼지를 열나게 터는 데 낭비해야 합니까? 그래봤자 한 톨 남김 없이 털 수도 없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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