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저녁에 청와대 수석진을 전원 개편한다는 얘기가 나왔습니다. 그리고 벌써부터 유력 후보의 이름도 나오고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까지 나온 얘기를 보니까 벌써부터 '싹수가 노랗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니, 노랗다 못해서 말라 비틀어져서 싹이나 제대로 틔울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이동관 대변인을 왜 유임시키나?
가장 큰 문제는 이동관 대변인 유임이 거의 확실한 듯 하다는 점입니다. 이동관 대변인은 미국산 쇠고기 문제가 터지기 전에 이미 땅 투기 문제에다가 되지도 않는 변명으로 박미석, 곽승준과 함께 사퇴 압력을 강력하게 받아 온 인물입니다. 게다가 삼성 특검 때 떡값 검사 명단 발표 1 시간 전에 '조사 해 보니 아무 근거가 없더라'고 예측 발표(?)를 한 '마이너리티 리포트' 사건, 땅 투기 의혹 때 기자에게 '기사를 빼 달라'고 로비를 벌인 파문을 비롯해서 그동안 사고친 것만 해도 한 두 가지가 아닙니다. 그럼으로써 이명박 정부의 신뢰를 뚝 떨어뜨리는 데 한몫 단단히 하신 이동관 대변인을 유임시킨다는 것은 이번 인적 쇄신이 싹수가 노랗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대변인은 청와대의 얼굴입니다. 우리는 대통령의 생각과 뜻을 주로 대변인의 얼굴을 통해서 보게 됩니다. 그런데 인적 쇄신을 하고 전면 개편을 한다면서 그 얼굴을 바꾸지 않는다? 그것도 그동안 여러 차례 저지른 일로 사람들이 별로 보고 싶어 하지 않는 그 얼굴을 그대로 둔다는 것은 쇄신에 대한 기대를 바닥으로 떨어뜨리는 일입니다.
이주호 교육과학문화수석은 왜 유임시키나?
또 한 가지, 이주호 수석도 유임시킬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지금 김도연 장관이 잇따른 문제로 곧 물러날 것이 거의 확실해 지고 있지만, 그 책임은 사실 장관보다는 이주호 수석에 있다는 게 대부분 사람들의 진단입니다. 장관은 허수아비고 수렴청정 식으로 이주호 수석이 다 했다는 겁니다. 10대가 촛불을 들고 거리로 나온 이유는 단지 쇠고기 문제만은 아닙니다. 이명박 정부 들어서 밀어붙이고 있는 교육 정책에 대한 누적된 불만 역시도 이들이 거리로 나오게 만든 원인입니다. 지금 이명박 정부가 밀어붙이는 교육 정책이 경쟁력 강화는 커녕 빈익빈 부익부만 강화시키고 사교육비 부담만 눈덩이처럼 키우고 있는 판인데 그 선봉에 선 이주호 수석을 유임시킨다는 건 인수위 시절부터 계속 얻어 맏았던 교육 문제를 그대로 밀어 붙이겠다는 뜻입니다. 이명박 정부는 아직도 문제가 쇠고기하고 대운하만 피하면 되는 줄 아나 봅니다.
업데이트 : 최근 나온 뉴스에 따르면 아마 이주호 수석도 바뀔 듯합니다. 내정자는 정진곤 한양대 교수라고 합니다. 이 문제는 아래 '또 대학 총장인가'를 보시기 바랍니다. 지금까지 대학 교수가 교육 문제를 다뤘을 때, 교육 문제는 항상 대학교 입맛에 맞게 바뀌어 왔습니다. 대학교 입맛이라는 게 뭔지는 굳이 말씀 안 드려도 잘 아실 겁니다. 앉아서 논평할 때하고 실제 권한을 가지고 정책을 추진할 때에는 안면 싹 바뀌는 게 대학 교수들의 모습입니다.
자유주의연대 사무총장이 시민사회비서관?
시민사회비서관으로 홍진표 자유주의연대 사무총장이 확실시 된다고 합니다. 에이 말도 하지 맙시다. 그동안 국민들의 분노를 끝없이 왜곡해 온 뉴라이트 집단이 대통령에게 시민 사회의 목소리를 참으로 잘도 전달하고 사회 갈등에 대한 조정을 참이나 잘 하겠습니다. 그런 경험을 해 본 적도 없는 뉴라이트에게 맡길 걸 맡겨야지...
또 대학 총장인가?
비서실장으로 거론되고 있는 인물이 정정길 울산대 총장입니다. 본인은 일단 고사하고 있지만 청와대에서는 끈질기게 설득하고 있다는데, 대학 총장 좋아하는 이명박 대통령의 버릇이 또 나오고 있는 것입니다. 청와대 쪽에서는 "정 총장이 울산대를 탁월하게 이끌어 왔으며 대통령학과 리더십 분야 권위자"라고 얘기하고 있습니다만, 그 이론에 탁월하게 뭐네 하는 대학 총장과 교수들로 채운 청와대와 내각이 어떤 꼴을 보여 왔는지는 지금 상황이 잘 말해 주고 있습니다. 지금과 같은 위기 상황을 헤쳐 나가기 위해서는 위해서는 실무 경험이 풍부한 사람이 있어야 하는 게 정상입니다. 아무리 이명박 대통령이 관료 문화를 싫어한다고 해도 지금만큼은 관료가 필요한 시점입니다. 그런데 또 대학 총장을 앉혀서 어쩌겠다는 건지, 아직도 상황 인식이 이것밖에 안 되는지 답답한 상황입니다.
공무원은 컴퓨터가 아니다
청와대만이 아니라 내각 개편 역시도 초기 경제 정책 실패의 원흉인 강만수 장관을 비롯한 경제팀을 유임시키겠다는 데에서 정책 기조를 바꿀 별다른 의지가 없음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도대체 정말 문제가 있는 사람들을 왜 바꾸지 않겠다는 걸까요?
아마도 이것은 이명박 대통령이 공무원을 영혼은 물론 소프트웨어도 없는, 컴퓨터 하드웨어로 보고 있는 것에서 원인을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강만수 경제팀을 생각해 봅시다. 그동안 성장을 외쳐오고 성장만능주의에 빠져서 유가 폭등으로 서민 생활이 망가지도록 고환율 정책을 고집해 온 사람들이 대통령 말 한마디로 '성장'이 전부 포맷되고 물가 안정으로 돌아서 그 정책을 잘 끌고 나갈 수 있을까요? 컴퓨터는 윈도우 지우고 리눅스 깔면 다른 컴퓨터가 되지만 사람이 그렇게 운영체제를 마음대로 바꿀 수 있는 존재일까요? 그러나 대통령은 그렇게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공무원은 영혼이 없다고 하지만, 적어도 용도는 있습니다. 성장 위주로 경제를 짤 때 어울리는 사람과 안정과 분배 위주로 경제를 짤 때 어울리는 사람은 다릅니다. 이명박 대통령은 "문제가 있다고 그 때마다 사람을 바꾸면 한 달에 한 번씩 바꿔야 한다"는 핑계를 대지만, 지금은 문제가 있는 정도가 아니라 경제 정책 기조 자체를 바꾸는 큰 문제입니다. 또한 문제가 있는데도 문제를 낳은 사람을 그대로 두면 한 달에 한 번씩 문제를 일으킬 겁니다. '제 버릇 개 주나'란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닙니다. 더구나 성장 좋아하다가 IMF의 주역이 되고 나서도 그 버릇 못 버리는 강만수 장관이라면 더더욱...
아무튼 요란은 떨지만 벌써부터 싹수가 노랗게 보이는 '인적 쇄신'을 보면서, 어제 그렇게 머리를 조아리면서 뼈저리게 반성을 했다는 말이 별로 진실로 느껴지지가 않습니다. 반성을 했으면 행동으로 보여 줘야 하고, 그 행동의 첫걸음은 기존 인사 스타일을 혁신하는 인재 기용일 것입니다. 소리만 요란하고 그 얼굴이 그 얼굴로 내용은 부실한 쇄신은 앞으로 또 다른 파동만 낳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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