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에 집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아버지께서 바깥에서 운동을 하다 다쳐서 응급실로 실려가셨다는 겁니다. 깜짝 놀라서 구급차가 싣고 갔다는 삼성서울병원 응급실로 갔습니다. 그런데... 응급실 문에 들어서자마자 다시 한 번 깜짝 놀랐습니다.




대기실에 즐비하게 늘어서 있는 링거 주사액... 응급실 안에 침대가 모자라서 대기실에도 이렇게 응급환자들이 넘쳐나는 겁니다. 이리저리 찾아보니까 아버지도 대기실 긴 의자에 누워 계시더군요. 절대안정을 취해야 하는데 침대가 없어서 불편한 긴 의자에 누워 계시는 겁니다. 사람들한테 묻혀서 잘 보이지도 않습니다.

아무리 봐도 응급실 수용 능력은 한참 넘어버린 것 같습니다. 이거 제대로 된 치료나 받을 수 있을까 싶었는데... 와서 바로 몇 가지 검사와 CT 까지 찍은 상태라 다른 병원으로 섣불리 가지도 못하고, CT 까지 진작에 찍었는데 몇 시간이 지나도 전문의 구경도 못 하고... 정말 답답하더군요. CT 찍은 지 거의 6 시간이 다 되어서 펠로우로 보이는 분이 와서 CT를 확인하고 상황 설명과 함께 몇 가지 얘기를 해 주시더군요. 침대가 나는 대로 옮길 테니 절대 움직이지 말라는 겁니다. 하지만 침대는 한참이 지나도 나지 않고 발만 동동 구르다가 대여섯 시간이 지난 뒤에야 옮길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다음 날 낮에 다시 와 본 응급실에서는 더 어이없는 광경이 펼쳐졌습니다.




대기실 의자도 모자라서 이제는 환자를 응급실 문 앞 땅바닥에 눕혀 놓는 겁니다. 누워 계셨던 분은 나이가 무척 많은 분으로 보였는데 아무리 응급실 환자가 넘쳐나서라지만 좀 너무하다 싶었습니다. 하긴 저렇게 나이 많은 분들은 대기실 의자조차도 불편하기 때문에 차라리 땅바닥이 나을 수도 있겠다 싶긴 합니다만, 아무리 아파도 그렇지 이건 난민 수용소도 아니고...

아무튼 아버지는 하루 정도 응급실에 더 계시다가 병실로 올라갔고, 다친 곳도 생각보다 심각성이 덜하고 경과도 좋아서 생각보다는 빨리 퇴원하셨습니다. 아무튼 병실로 가는 길에 응급실에 살짝 들러 봤습니다만 여전히 상황은 마찬가지여서 땅바닥에 누워서 치료를 받아야 하는 사람들이 거의 매일 한둘 씩은 보였습니다.




가장 걱정되는 것은 수용 능력을 넘는 응급 환자가 몰릴 때 과연 제대로 진료를 받을 수 있을까 하는 점입니다. 물론 병원 쪽에서야 최선을 다 하겠지만 그렇다고 해도 시설과 인력이 한정되어 있는 상황에서 이렇게 수용 능력을 한참 넘어서는 환자들이 몰릴 때는 아무래도 부실할 수밖에 없을 겁니다. 또한 응급 환자들은 그 상태가 유동성이 많아서 항상 관찰이 필요한데 대기실 의자나 땅바닥에 누워 있는 환자들이 의료진들에게 과연 제대로 관찰될 수 있겠는가 하는 점도 의심스럽습니다. 그렇다고 수용 인원이 다 찼다고 응급 환자를 거부했다가 큰 사고라도 생겼다가는 덤터기를 쓰겠죠. 그래도 나름대로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병원이라 자부하는 곳이고, 평가에서도 항상 1, 2등을 다투는 삼성서울병원이지만 응급실은 거의 난민 수용소 수준인 것은 문제가 있습니다. 그렇다고 제대로 된 병상이 아닌 대기실 의자나 땅바닥에서 치료를 받는다고 해서 진료비를 깎아주는 것도 아니고 말입니다. 언제나 1등을 추구한다는 삼성이라면 날마다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에 대해서 시설과 인력을 확충하든가, 인근 병원과 전달 체계를 강화하든가, 아무튼 뭔가 대책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물론 병원이 응급실 시설과 인력을 충분히 확보하는 것도 필요하겠습니다만, 사실 환자들도 무조건 크고 좋은 병원만 찾는 경향이 이런 문제를 부채질하기도 합니다. 삼성서울병원에서 본 것을 의료계에 있는 몇몇 지인들에게 얘기해 보니, 몇몇 인기 병원들에서는 자주 벌어지는 일이라고 합니다. 또한 무조건 큰 병원에서 진료를 받기 위해서 응급 상황이 아닌데도 응급실을 찾는 사람들도 있으니 문제는 더욱 심각해지는 것이겠죠.

사실 아버지는 이 병원이 가장 가까워서 이리로 실려왔습니다만, 이런 어처구니 없는 상황을 보고는 "차라리 먼 병원을 갈 걸 그랬다"고 한탄을 하시더군요. 저도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설령 시설이나 의료진이 좀 떨어진다고 해도 제대로 관찰 받으면서 빠르게 진료를 받는 게 응급환자들에게는 더 나을 겁니다. 아버지도 저도 다음 번에 혹 이런 일이 있다면 좀 멀어도 다른 곳으로 가자고 얘기를 했습니다. 아무리 좋은 병원이라고 해도 적어도 응급실 만큼은 갈 곳이 못 되는 것 같습니다.

병원에게도 일부 원인이 있을 것이고, 환자들에게도 역시 책임이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 원인이 무엇이고 누구에게 큰 책임이 있든, 문제는 지금 재난 상황도 아니고 전쟁 상황도 아닌데 똑같은 진료비를 물고도 땅바닥에 누워서 진료를 받아야 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겁니다. 아무리 아픈 환자라고 해도 땅바닥에 누워 있으면서 지나가는 사람들이 위에서 내려다보는 것을 봐야 하는 심정이 어떨까요? 무언가 해결책이 필요합니다. 국가에서도 이렇게 응급 환자들이 특정 기관으로 몰리는 것을 막기 위해서 통합 시스템을 생각하고는 있지만 대부분 응급의료센터들이 민간 기관에 있고 이해 관계가 맞물려 있다 보니 시스템 구축이 쉽지 않다고 합니다. 하루 속히 통합 시스템을 통해서 응급 환자들이 신속하고 편안한 치료를 받을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Posted by MP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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