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산 쇠고기 반대 시위가 점점 격화되고 있습니다. 경찰의 강경 진압이 이어지고, 분노한 시민들이 점점 격한 구호를 외치고 항의의 수준이 거세어지고 있습니다. 경찰의 폭력 진압으로 부상자들이 속출하는 상황이 날마다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한가하게 시위의 '불법'에 목을 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이 주로 내세우는 논리는 선진국에서는 폴리스 라인을 넘기만 해도 경찰들이 곧바로 곤봉으로 두들겨 팬다는 것입니다. 사실 선진국과 비교한다면 우리나라는 집회 시위 자유 보장 수준이 낯뜨거울 정도이지만 그건 둘째치고, 선진국 사례 운운하는 이들이 주로 써먹는 사건이 1999년 WTO 장관급 회담이 열렸던 시애틀에서 벌어졌던 반세계화 시위 사건입니다. 당시 폴리스 라인을 넘었던 시위대를 경찰이 즉시 곤봉으로 '개패듯이 팼다'면서 우리나라도 그렇게 강경 진압을 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들먹이는 1999년 당시, 시애틀에서는 어떤 일이 있었을까요? 자료를 찾다 보니 마침 위키페디아에 당시 상황을 자세하게 기록한 글이 있었습니다. 그 기록은 '폴리스 라인을 넘었다는 이유만으로 경찰이 시위대를 개패듯이 팼다'는 주장과는 아주 다른 내용이었습니다. 내용이 아주 긴 기록입니다만 이 가운데에서 시위가 어떤 양상으로 전개 되었는지, 경찰은 어떤 대응을 했고 그 결과가 어땠는지를 중심으로 요약해 볼까 합니다.




1999년 11월 30일 아침, 미국의 직접 행동 네트워크가 WTO 장관급 회담이 열리고 있던 시애틀에서 실력 행사를 계획입니다. 처음에는 수백 명의 활동가들이 도로를 점거하면서 시작된 시위는 학생들과 시민들까지 합류해서 규모가 커집니다. 경찰은 회담장인 컨벤션 센터 주위에 진을 치고 시위대가 들이닥치는 것을 막으려고 했는데 뜻하지 않은 일이 벌어집니다. 시위대가 컨벤션 센터를 포위하다보니 센터를 막고 있는 경찰들이 시위대에 고립되는 상황이 벌어집니다. 다른 경찰들은 모두 외곽 쪽에 있었기 때문에 완전히 분리된 것입니다.

이미 여기에서부터 폴리스 라인을 넘었다는 이유만으로 경찰들이 시위대를 개패듯이 팼다는 얘기와는 한참 거리가 있는 내용임을 알 수 있습니다. 만약 불법 시위 척결을 주장하는 사람들 말처럼 도로를 점거했다는 이유만으로 그렇게 강경 진압을 했다면 이미 시애틀 경찰은 아침에 활동가들이 도로 점거를 시작했을 때부터 그렇게 했을 것입니다.

강경 진압은 외곽에 있던 경찰들이 고립된 동료들은 물론 회담장 안에 있던 각료들을 구출하기 위해서 시작됩니다. 외곽에 있던 경찰들은 최루탄과 충격 수류탄을 쏘고 나중에는 고무탄까지 발사하면서 컨벤션 센터 쪽으로 돌파 작전을 감행합니다. 일단 시위대는 뒤로 물러납니다.

그렇다면 이런 강경 진압으로 사태가 해결되었느냐, 하면 전혀 그렇지 않고 이 일은 오히려 문제를 더 확대시키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분노한 군중들, 특히 흑인 무정부주의자들이 중심이 된 단체들은 창문과 가게 진열장을 부수면서 폭동으로 비화됩니다. 대형 쓰레기통을 밀고 와서 도심 한가운데서 불을 지르고, 경찰 버스를 넘어뜨리고, 하면서 시애틀의 상업 시설들이 마비 상태에 빠지게 됩니다. 결국 강경 진압이 시위대를 자극하고 폭력적 성향을 가진 단체들에게 구실을 만들어 준 셈입니다.

물론 시위대 중에서는 이러한 흑인 무정부주의자들을 막으려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주목할 것은 시애틀 경찰에서는 일단 대응을 유보했다는 점입니다. 평화 시위를 견지한 주최측에서 이런 폭력 시위를 억누르고 있다는 판단을 했기 때문입니다. 결국 시위대는 경찰을 압도할 만한 수준으로 불어났고 도심은 각양각색의 시위대로 축제를 연상하게 할 만한 광경을 만들어 냅니다. 결국 이 사태로 회담 개회식이 연기되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12월 1일까지 폭력과 강경 진압으로 얼룩진 대치 국면이 이어지면서 대략 600여 명 정도가 체포되었고 시애틀 시장은 폴 쉘은 야간 통행 금지와 함께 50 블럭에 걸친 시위 금지 구역을 설정하게 됩니다.

한편 <더 뉴욕 타임즈>는 시위에서 화염병이 등장했다는 기사를 내보냈지만 결국 오보로 밝혀졌습니다. 당시 시위에서 화염병은 전혀 없었습니다. 이틀 뒤 이 신문은 정정 보도를 냅니다.

아무튼 이 사태에 대한 책임을 지고 시애틀 경찰국장은 사퇴했고 2001년 시장 선거에서 시애틀 시장 폴 쉘도 낙선했습니다. 그 뒤에도 반세계화 시위에 대해서 미국에서는 강경 진압을 들고 나왔습니다만, 그렇다고 효과를 본 것도 아니었습니다. WTO와 세계화 문제를 둘러싸고 경찰과 시위대 사이에서는 계속 강경 진압과 과격 시위의 악순환이 되풀이되었습니다.

한편 시애틀 시는 당시 시위 금지 구역 바깥에서 체포되었던 157명에게 25만 달러를 지불하기로 2004년에 합의를 했습니다. 그리고 2007년에 법원은 시가 납득할 만한 이유나 엄밀한 증거 없이 시위대를 체포함으로써 수정 헌법 4조를 위반했다는 판결을 내립니다. 인도에 있는 시민들까지 무차별 폭행하고 여성의 머리를 군화발로 짓밟는 우리 나라 경찰들은 미국이었다면 어마어마한 배상금을 물어 줘야 했을 것입니다.

결국 당시 시애틀 사태는 '불법 시위 척결'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떠드는 것과는 달리, 오히려 강경 진압으로는 결코 문제를 해결할 수 없고 오히려 사태를 악화시키기에 딱 좋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습니다. 더구나 단지 도로를 점거했다는 이유만으로 경찰이 시위대를 개패듯이 팼다는 주장은 그야말로 사실과는 거리가 먼 왜곡입니다. 또한 그 이후에 있었던 배상 문제나 법원 판결은 선진국에서 집회 시위의 자유가 어느 정도로 보장 받고 있는지, 또한 권력이 이를 침해했을 경우에 얼마나 엄중한 책임 추궁을 당하는지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참고 자료 : WTO Ministerial Conference of 1999 protest activity, Wikipedia.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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