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F1 시즌의 본 게임이라 할 수 있는 유럽 라운드가 막이 올랐습니다. 첫 세 경기가 그야말로 탐색전이었다면 이제부터는 정말로 치열한 경쟁이 뜨거운 여름 날씨만큼이나 달아오를 때입니다. 전까지는 유럽 개막전은 언제나 이탈리아 이몰라에서 열리는 산 마리노 그랑프리였지만 올해부터는 캘린더에서 사라졌기 때문에 스페인 그랑프리가 유럽 라운드 개막전이 되었습니다. 씨르뀌뜨 데 카탈루냐 서킷은 F1 팀들이 테스트를 위해서 가장 애용하는 서킷일 만큼 차량 전체 성능을 테스트하기는 가장 좋은 곳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맥클라렌 단장 론 데니스가 "올 시즌 판세는 스페인 그랑프리에 가 봐야 알 것"이라고 할 만큼 스페인 그랑프리는 올 한 해 성적을 가늠해볼 수 있는 시험 무대이기도 합니다. 특히 페라리-맥클라렌 양강 구도일 줄 알았던 올 시즌이 BMW 자우버가 컨스트럭터 1위를 기록할 정도로 기염을 토하면서 더욱 복잡한 경쟁구도가 된 만큼 톱 팀들은 유럽 라운드 개막전에서 기선을 제압할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F1에서는 어떤 팀이 뭔가 괜찮은 걸 개발했다 싶으면 다른 팀들이 열심히 베끼게 마련입니다. BMW 자우버가 올해 프론트 노즈에 붙인 뿔 모양 윙렛으로 재미를 봤는데 혼다가 이걸 따라 했습니다. 혼다의 윙렛은 BMW 자우버보다는 좀 높아 보입니다.





톱 팀 가운데서 먼저 나선 주자는 페라리의 키미 라이코넨이었습니다. 첫 플라잉 랩에서는 꼴찌 기록(1:26.457)을 냈지만 곧 바로 한 바퀴를 더 돌았습니다. 하지만 연습 주행 내내 압도적이었던 페이스가 예선에서도 이어질 줄 알았으나, 첫 섹터 타임은 윌리엄스의 나카지마 카즈키보다 떨어졌습니다. 2, 3 섹터에서는 앞선 기록으로 결국 톱 타임을 기록하긴 했지만 그 뒤를 쫓는 루이스 해밀튼이 곧바로 0.684초나 앞선 기록으로 톱 타임을 기록했습니다. 라이코넨은 플라잉 랩을 세 번이나 돌았지만 결국은 단 한 차례 플라잉 랩을 마치고 유유히 피트로 들어간 해밀튼보다 0.409 처지는 기록을 내고 피트로 들어갔습니다. 어찌 된 일일까요? 한편 라이코넨과 해밀튼이 초반에 일합 결투를 벌이는 동안 마사와 코발라이넨, 그리고 BMW 자우버 드라이버들은 한참을 더 피트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결국 7-8분여를 남겨 놓고 BMW 드라이버들과 마사도 나섰습니다. 연습 주행 내내 페이스를 잡았던 마사였기 때문에 해밀튼을 앞설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0.252초 뒤지는 기록에 머물렀습니다. 그나마 이 기록도 BMW 자우버의 로베르트 쿠비차에게 밀려서 3위로 내려 앉았습니다. 이런 상황에서도 여전히 코발라이넨은 피트에 머물러 있다가 결국 4분여가 남은 막판에서야 트랙에 나섰습니다. 0.064초 뒤진 기록으로 3위, 나쁘지 않은 기록입니다. 1차 예선은 이렇게 끝날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아까까지는 별로 좋지 않은 기록을 보여 주었던 키미 라이코넨이 다시 나섰습니다. 1, 2 섹터에서 해밀튼의 기록을 0.2초 정도 차이로 앞섰고 특히 섹터 3에서는 무려 0.4 초를 앞당기면서 1:20.701로 톱 타임을 찍었습니다. 마치 '아까는 그냥 연습이었거든'이라고 말하는 듯한 모습이었습니다. 그 뒤를 이어서 트룰리와 페르난도 알론소가 나란히 2, 3위를 차지하면서 해밀튼을 4위로 밀어냈습니다. (타이어 옵션 확인 필요) 엎치락뒤치락하는 순위 경쟁이 벌어진 끝에, 쿨타드, 베텔, 피시켈라, 슈틸, 데이비슨, 사토가 탈락했습니다. 자금 부족으로 이번 경기에 참가할 수 있을지조차 불투명했던 수퍼 아구리는 다행히 참가는 했지만 두 드라이버 모두 가장 밑바닥 기록에 머물렀습니다.




이제 15분 동안 벌어지는 2차 예선입니다. 그런데 3분이 넘도록 단 한 대도 트랙에 나서지 않고 눈치만 보고 있었습니다. 하위 팀들은 일단 플라잉 랩을 돌고 후반에 상황을 봐서 살아남기 위한 전투를 한 번 더 할 법도 한데 말입니다.





결국 가장 먼저 트랙에 나선 주자는 르노의 페르난도 알론소였습니다. 이번 경기가 고국 스페인에서 열리는 만큼 트랙에 나설 때마다 관중석을 가득 메운 관중들 속에서 열렬한 환호성이 터졌습니다. 이를 시작으로 기다렸다는 듯이 차량들이 차례차례 트랙으로 뛰어들었습니다. 알론소의 기록은 1:20.976. 그 앞뒤로 페라리의 키미 라이코넨과 펠리페 마사가 플라잉 랩을 시작했습니다.





루이스 해밀튼이 먼저 1:20.825로 톱 타임을 갈아치웠지만 뒤따라온 키미 라이코넨의 기록은 1:20.784. 다시 페라리가 꼭대기를 차지했지만 격차는 그리 크지 않았습니다. 코발라이넨의 기록은 1:21.226. 8위를 기록했지만 좀 위험합니다. 또한 마사는 1:21.232라는 갸우뚱한 기록을 냈습니다.




그런데 이 때, 다시 한번 BMW 자우버가 일을 냈습니다. 로베르트 쿠비차가 1:20.597로 톱 타임을 차지하면서 맥클라렌과 페라리를 밀어냈습니다. "이제 우리는 이미 톱 팀이다"라고 큰소리를 쳤던 마리오 타이센의 말이 헛소리가 아님이 증명된 셈입니다.





한편 2분 40초 정도가 남은 상황에서 다시금 생존을 위한 마지막 사투가 시작되었습니다. 10위권에 들지 못한 마사, 그리고 9위에 턱걸이한 상태인 코발라이넨이 트랙에 나섰고 안정권에 들지 못한 다른 드라이버들도 다시금 액셀러레이터를 밟았습니다. 아까는 영 기록이 나빴던 마사가 1:20.584로 톱 타임을 찍었습니다. 그 뒤를 따른 코발라이넨은 1:20.817. 라이코넨보다는 뒤지지만 해밀튼에게는 앞서는 기록으로 5위를 차지했습니다. 알론소가 4위, 하이드펠트가 5위를 차지하면서 자꾸 뒤로 밀리는 해밀튼은 좀 불안했는지 다시금 트랙에 나섰습니다. 섹터 2에서 톱 타임을 기록하면서 어쩌면 1위에 오를 수도 있겠다 싶었지만 상황이 안정권에 든 것을 확인하고는 피트로 들어갔습니다.





1위 마사와 2위 쿠비차의 기록은 겨우 0.013. 그리고 올 시즌에 영 페이스가 별로인 르노의 알론소도 역시 홈 그라운드의 잇점을 살려서 1:20.804로 4위를 차지했습니다. 넬시뇨 피케도 8위를 차지해서 3차 예선 진출에 성공했습니다. 그에 비한다면 버튼과 바리켈로가 모두 탈락한 혼다는 프론트 노즈 윙렛 덕을 별로 보지 못한 듯합니다. 윌리엄스도 니코 로즈베르크와 나카지마 카즈키가 모두 탈락했습니다. 예선은 통과했지만 코발라이넨이 6위, 해밀튼이 7위에 머무른 맥클라렌의 페이스도 썩 좋아 보이지 않습니다. 코발라이넨의 주행을 보면 코너에서 휘청거리는 모습을 보였는데 다운포스가 좀 부족한 게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그러나 지금까지는 어디까지나 3차 예선으로 가기 위한 과정일 뿐, 내일 레이스에서 그리드 순위를 결정하는 기록은 이제 10분 동안 주어질 3차 예선입니다. 특히 3차 예선에서는 레이스 첫 피트스탑 때까지 쓸 연료를 싣고 달려야 하기 때문에 여러가지 변수가 있을 것입니다.





3차 예선의 첫 플라잉 랩 결투에서는 하드 타이어를 장착한 루이스 해밀튼이 트룰리의 기록을 1초 넘게 앞섰지만 곧바로 마사가 0.321 초를 앞당기면서 1위를 기록했습니다.




하지만 라이코넨은 소프트 타이어를 끼었음에도 4위에 머물렀습니다. 코발라이넨은 1, 2 섹터까지는 해밀튼보다도 기록이 좋았지만 세번째 섹터에서 시간을 많이 까먹으면서 7위로 내려 앉았습니다. 쿠비차와 하이드펠트는 나란히 5위와 6위.




그런데 역시 홈 그라운드라서 그런지 페르난도 알론소가 무척 강한 모습을 보여 줍니다. 그동안 3차 예선에서 중하위권을 맴돌았던 알론소가 3위를 차지했습니다. 잘 하면 오늘 예선 뒤 기자회견장에서 그의 모습을 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자, 그러나 흥미진진한 드라마는 두번째 플라잉 랩입니다. 하드에서 소프트 타이어로 신발을 갈아 신은 해밀튼과 코발라이넨이 1, 2 섹터에서 톱 타임을 찍으면서 뒤집기를 기대하게 했지만 3 섹터에서 시간을 까먹으면서 결국 제자리에 머물렀습니다.




그 뒤를 잇는 마사는 첫 플라잉 랩보다는 떨어지는 기록이었지만 그래도 1위 자리를 유지했습니다. 이제 남은 것은 피트에 들어가지 않고 체커가 나오기 직전에 플라잉 랩을 시작한 라이코넨입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 결승선을 통과한 페르난도 알론소의 기록은 1:21.904. 마사를 0.046 차이로 앞서면서 톱 타임을 차지한 것입니다. 당연히 관중석은 열광의 도가니에 들끓어 올랐습니다. 과연 알론소가 폴 포지션을 차지할 수 있을까요?




열쇠를 쥐고 있는 인물은 키미 라이코넨이었고 그의 기록은 1:21.813이었습니다. 결국 0.091초 차이로 키미가 폴 포지션을 차지했습니다. 하지만 이미 모든 관심은 당연히 알론소에게 모여 있었습니다. 어떻게 2위라는 놀라운 기록을 차지했을까요? 물론 홈 그라운드인 만큼 이 서킷이 워낙에 익숙한 데다가 스페인 관중들의 열렬한 응원도 한몫 했겠지만, 아무래도 르노 팀에서 스페인 팬들에게 선물 삼아서 연료를 적게 넣어서 달리게 한 게 아닐까 의심스럽습니다. 내일 알론소가 첫 피트스탑을 언제 가져갈 지를 보면 되겠죠.




여전히 기세가 좋은 페라리가 이번 스페인 그랑프리에서도 우승을 차지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그 뒤를 호시탐탐 노리는 BMW 자우버의 로베르트 쿠비차가 4위에 포진하고 있습니다. 한편 1, 2 섹터 기록은 좋지만 3 섹터에서 컨트롤이 불안한 모습을 보이면서 형편 없는 기록을 내고 있는 맥클라렌은 내일 레이스에서도 고민이 많을 듯합니다. 아마도 어느 정도 대세는 판가름이 될 스페인 레이스에서 마지막에 웃는 사람은 누가 될까요? 그리고 알론소가 오늘의 예선이 '연료발'이 아님을 증명해 보일 수 있을까요?
Posted by MP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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