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이 줄곧 주창해 오던 바는 CEO형 대통령입니다. 미국에서도 자신을 주식회사 대한민국의 CEO라고 말할 정도로, '주식회사 대한민국'이란 말을 상당히 좋아하는 듯합니다. 그런데 도대체 이 '주식회사 대한민국'은 어떤 업종일까요? 전부터 궁금했는데 요즘 돌아가는 모습을 보면 이제는 그 궁금증이 풀리는 듯합니다.
24시간 동사무소
최근 들어서 '24시간 동사무소'를 전국으로 확대하겠다고 합니다. 안산시에서 이런 동사무소를 운영하고 있는데 이명박 대통령이 국민을 섬기는 자세가 되었다고 칭찬하고 나니까 곧바로 정부에서 전국 확대를 추진하고 있습니다. 물론 민원인들이 보기에는 24시간 언제나 원하는 일을 할 수 있어서 좋을 것입니다. 하지만 과연 그것이 왜 '24시간'이라는 오버로 나타나는 걸까요? 과연 심야나 새벽 시간에 동사무소를 이용해서 민원을 봐야 할 사람들이 얼마나 되며, 이를 위해 낭비되는 인력이나 에너지 소모가 이명박 정부가 그렇게 외치던 '효율성'과 맞아 떨어질까요? '국민을 섬긴다'는 생색내기용 낭비입니다. 만약 정 필요하다면 지하철역을 중심으로 설치된 사용 방법이 손쉬운 무인 민원처리기를 24시간 편의점과 같은 곳에 확대하는 것으로도 수용할 수 있습니다.
특히나 정부 얘기를 들어보면 "야근자에게 수당, 인센티브를 주거나 윤번제 근무를 실시하면 인력 보충 없이 현재 인원만으로도 '24시간 동사무소'를 운영할 수 있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곧, 기존 인력들을 더 혹사시키고 돈푼 더 집어주면 기꺼이 밤을 샐 거라는 발상입니다. 고용을 할 필요가 있으면 고용을 늘리는 게 옳습니다. 이렇게 사람을 혹사시키고 돈으로 때우겠다는 발상을 가지고 있으면서 일자리를 몇 백만 개 창출하겠다는 마인드가 도대체 어떻게 공존할 수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24시간 대통령-기업인 핫라인
대통령은 취임하자마자 핫 라인을 개설해서 선택된 기업인들이 사업하는 데 고충이 있으면 대통령한테 직접 전화하도록 했습니다. 한마디로 24시간 대통령-기업인 폰팅인 겁니다. 기업인의 고충을 해결해 주겠다, 좋습니다. 하지만 대한민국 사회에서 고충을 가진 사람이 기업인 뿐인가요? 국가에서 고충 해결 우선 순위는 기업이어야 할까요? 예를 들어서, 그 기업의 횡포 때문에 생계에 위협을 겪는 사람들, 예를 들어서 부당하게 해고된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어떨까요? 또한 성폭력도 엄청난 고통인데 경찰 조사 과정에서 두번 세번 우는 아동 성폭력 피해자들, 최소한의 이동권도 보장 받지 못하고 직업도 제대로 갖지 못하면서 비참한 삶을 사는 중증 장애인들, 이 사람들의 고통은 어디에 호소해야 할까요? 이런 고충들이 다 기업이 돈만 많이 벌어다 주면 해결 되는 것일까요? 어째서, 오로지 기업의 고충만 대통령이 직접 해결해 주겠다는 겁니까? 게다가 폰팅 번호 가르쳐 준 기업들을 봐도 쓰러질 위기에 있는 벼랑 끝에 놓인 기업도 아닌데. 대통령과 기업인이 24시간 폰팅으로 밀회를 즐기고 있을 동안, 이 땅에서 인간다운 삶에 위협을 받고 있는 적지 않은 사람들은 어디 한 곳 억울함이나 고충을 호소할 창구도 변변히 없이 벼랑으로 내몰리고 있습니다.
이제는 24시간 입시지옥까지 하려나
이제는 '자율화'라는 이름으로 0교시와 야간/심야 자율학습을 비롯한 그나마 남아 있던 규제조차도 다 없애겠답니다. 열등반에 속한 학생들이 우등반에 들어가기 위해서 분발해서 공부를 열심히 한다? 한마디로 경제대통령, CEO대통령답지 않은 로맨틱한 생각입니다. 물론 열등반의 꼭대기쯤에 있는 학생들은 그럴 수도 있죠. 하지만 대놓고 차별당해야 하는 중하위권 학생들이 느낄 좌절감이나 분노 같은 것은 생각해 봤는지 모르겠습니다.
어떤 분들은 이렇게 말할 수도 있겠죠. "공부 못 하는 아이들 때문에 교실 분위기 나빠지고 공부 잘 하는 학생들까지 피해 본다" 좋습니다. 그러면 공부 못 하는 학생들은 다 분위기 나쁘고 떠들고 그런가요? 또한 그 이유가 단지 '공부를 못 해서'인가요? 아니면 선생님들조차도 공부 못 하는 학생들을 무시하고 자존심 상하는 말도 서슴치 않고 하기 때문인가요? 백 번 양보해서 열등반에 있는 학생들이 90%가 못 되고 떠들고 말썽 피운다고 칩시다. 나머지 10%는 뭡니까? 그런 환경 속에 남은 소수는 물들게 마련입니다. 결국 공부 못하면 착하게 살 권리도 빼앗기게 됩니다.
몇 년 전인가, 한국 유학생들이 서양 학생들에 비해서 어려움을 겪는 부분에 대해서 얘기한 글을 본 적이 있습니다. 뜻밖에 '체력'이 상당한 약점이라고 합니다. 아무래도 대학이나 대학원 공부라는 게 정말로 깊게 파고 들어가다보면 밤샘은 부지기수고 실험과 같은 경우에는 며칠을 꼬박 밤새는 경우도 허다한데, 서양 학생들이 비해서 한국 유학생들이 이런 체력전에서 밀린다는 얘기입니다. 물론 서양 사람들이 기본 체격이 좋은 것도 있지만, 한국 학생들은 성장기에 너무 공부에만 시달린 나머지 건강하게 체력을 단련하고 몸을 관리하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진단도 있었습니다. 그나마도 계속 청소년들의 체력이 약해지고 있어서 이제는 체력검사 기준도 조정하는 판이라고 합니다. 그러고 보면 이른바 사회지도층 자식들이 군대 면제 비율이 높은 것도 너무 공부를 열심히 해서인가요?
하긴 뭐, 우리나라는 대학교 좋은 데 들어가면 일단 땡인 게 10대들의 생각이기 때문에 그 이후에 대해서는 별로 생각할 겨를도 없는 게 현실입니다. 시도교육청에서는 일단 0교시나 우열반을 허용하지 않을 방침이라고 합니다만, 학부모들이나 이익 집단 눈치 봐야 하는 교육청이나 일선 학교가 그런 '자율적 방침'으로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 솔직히 의문입니다.
결론은 24시간 편의점 대한민국점?
결국 이명박 대통령이 만들겠다는 주식회사 대한민국, 그 업종은 24시간 편의점인 셈입니다. 24시간 환하게 불이 켜져 있는 편의점, 돈 있는 사람들은 편리하게 먹고 마실 것을 사가서 좋겠지만 야간 알바생들은 쥐꼬리만한 월급에 언제 강도가 쳐들어와서 생명에 위협까지 받기도 합니다. 편의점 대한민국점도 돈 많은 기업인들, '우수한 학생'들에게는 그야말로 24시간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는 좋은 곳이겠지만 어렸을 때부터 죽기 살기로 벌어지는 경쟁의 정글 속에서 밀려나 장시간 노동과 형편없는 임금으로 겨우 목숨 부지하고 사는 사람들에게는 24시간 내내 힘든 한숨을 쉬어야 하는 피곤한 일터가 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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