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대 국회의원 선거가 끝난 뒤에도 후유증이 꽤나 심각한 듯합니다. 일단 친이-친박 갈등이 계속 심해지고 있고, 통합민주당 역시도 지도부 교체를 둘러싼 분란이 계속 벌어지고 있습니다. 한편으로는 '뉴타운 공약'을 둘러싼 말바꾸기를 둘러싸고 '사기' 논란이 벌어지고 있고, 비례대표의 자질과 돈 문제에 대한 문제도 계속 불거지고 있습니다.
이명박 정부는 입만 열면 '실용'을 들먹이고 있습니다. 이런저런 그럴싸한 얘기를 합니다만, 결국 결론은 '돈만 벌면 그만'이라는 거죠. 비리가 있고 부정을 저질러도 '능력이 있으니까' 장관에 앉혀도 되고, 원칙에 어긋난 행동을 해도 돈이 된다면 '실용'이기 때문에 괜찮다는 식입니다.
그런 면에서 보면 이번 총선은 철저하게 '실용 코드'에 따라서 진행된 셈입니다. 비례대표를 둘러싼 자질과 돈 문제를 봐도, 결국은 자질이 떨어져도 돈만 많이 내면 된다는, '실용'의 관점에서 본다면 이상할 게 없는 모습입니다. 뉴타운 문제도 마찬가지죠. 당선만 된다면 거짓말 좀 하고 짜고 치는 고스톱 좀 쳐도 된다면서 뉴타운을 떠들었던 후보자들, 그 후보 뽑아주면 뉴타운 되고, 내 집값도 올라서 돈 좀 만져볼까 하는 '실용 투표'를 했던 유권자들이 있었던 것입니다. 친박연대라는 희대의 코미디 당명도 결국은 정치 도의고 염치고 뭐고, 박근혜 이름만 팔아서 당선되면 그만이라는 실용 코드였고, 총선 내내 한나라당도 아니고 아닌 것도 아닌 모습을 보여준 박근혜 씨 역시도 침묵 속에서 이런 실용 코드에 장단을 맞춘 셈입니다. 대쪽 정치인에서 충청도 지역 감정을 노골적으로 자극하면서 충청도 핫바지론으로 자민련을 충청 지역당으로 만든 김종필의 뒤를 따른 이회창 씨 역시도 철저한 실용이었습니다. 뉴타운 열풍에 편승해서 몇몇 통합민주당 후보도 자존심 따위 내팽개치고 뉴타운 공약을 건 것까지 본다면 이번 총선은 정치인들도, 유권자도 실용 코드에 따라서 움직인 셈입니다.
그런데 이번 총선에서 유권자들, 특히 서울 지역 유권자들이 보여 준 '실용 투표'는 결국 전혀 실용성이 없는 것으로 드러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거래를 하면서도 서류 한 장 없이 말만 믿고 덜컥 도장을 찍어 준 셈이기 때문입니다. "오세훈 서울시장한테 뉴타운 약속을 받았다"는 정몽준 씨, 그리고 "추가 뉴타운은 없다"고 못을 박은 오세훈 시장, 이 두 사람 가운데 한 사람은 거짓말을 한 셈입니다. 하지만 어느 쪽이 거짓말을 한 것으로 밝혀져도 반품할 방법이 마땅치 않습니다. 결국 유권자들은 부동산 투기처럼 돈을 노리고 표를 갖다 박은 '선거 투기'를 한 셈입니다만 지금으로서는 기대했던 이익 대신에 속았다는 쓰라림만 남길 확률이 점점 더 커지고 있습니다. 아무런 보증도 없이 말만 믿고 찍은 표이니 보상도 소송도 할 수 없는 신세가 된 겁니다.
옛말에 "마음이 착한 사람에게는 사기가 통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결국 이번 총선은 큰 돈을 벌게 해 주겠다는 달콤한 사기에 속아서 아무런 계약서도, 보증서도 없이 덜컥 표를 투자했다가 본전도 못 건지게 될 판입니다. 유권자들도 쉽게 돈 벌려다가 표만 날려먹은 셈이죠. 이번 선거 결과를 두고 저조한 투표율에 대한 걱정이 많습니다만, 이렇게 정치 성향이나 정책이 아닌, 눈 앞에 떨어질 이익만을 쫓아간 투기성 투표가 투표를 외면한 것보다 낫다고 말할 수도 없을 듯합니다. 그나마 투표 외면은 '정치에 대한 환멸'이라는 경고 메시지라도 있지, 투기성 투표는 도대체 어떤 메시지가 있는 걸까요? 선거에 참여한다, 안 한다도 중요하겠지만 정말 안 하느니만도 못한 참여도 있는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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