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시즌이 시작되기 전, 대부분 전문가들은 2008년도 작년과 마찬가지로 맥클라렌-페라리 싸움이 될 것으로 예측했습니다. 이 두 강자의 뒤를 쫓는 팀으로 지목된 팀은 BMW 자우버였지만 대부분은 맥클라렌-페라리와 비교하면 격차가 있을 것으로 내다 봤습니다. 그런데 막상 뚜껑을 열어 본 결과, 페라리와 맥클라렌이 한 경기씩 물을 먹는 틈에 BMW 자우버는 2위를 두 번 기록하면서 컨스트럭터 챔피언십에서 맥클라렌에 이어서 2위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물론 이제 겨우 두 경기를 치렀을 뿐이지만, BMW 자우버는 획기적인, 조금은 엽기적이기까지 한 프론트 노즈 위의 뿔처럼 획기적인 성과를 거두고 있습니다. 게다가 오늘은 BMW 자우버가 창단 이래 처음으로 폴 포지션을 차지했습니다. BMW 자우버로서도, 로베르트 쿠비차로서도 처음으로 기록한 폴 포지션이 감격스러울 수밖에 없습니다.
연습 주행 때에는 페라리의 기세가 워낙 좋았습니다. 이미 겨울 테스트에서 작년 폴 포지션 기록을 뛰어넘을 정도로 놀라운 기량을 보여줬던 페라리였던 데다가 겨울 동안 바레인에서 테스트를 진행했던 팀은 페라리와 토요타 뿐이었기 때문에 말레이시아에서 보여준 키미 라이코넨의 완승을 바탕으로 바레인에서도 당연히 페라리가 압도할 것으로 많은 사람들이 생각했습니다. 마사 역시도 두 경기 모두 리타이어한 수모를 폴 포지션으로 멋지게 되갚아 주고 싶었던 듯, 연습주행 때부터 같은 팀의 키미와도 꽤 많은 격차를 보여주면서 페이스를 잡아 왔습니다.
이러한 기세는 1, 2차 예선에서도 이어졌습니다. 1차 예선 때 마사의 기록은 1:31.937. 혼자만이 1분 31초 대 기록을 냈고 2위를 기록한 트룰리는 1:32.493이었으니 0.5초 가량 격차가 난 셈입니다. 로베르트 쿠비차는 1:32.893. 마사와 거의 1초나 차이가 났으니 설마하니 쿠비차가 폴 포지션을 차지할 거라고 생각한 분들은 별로 없었을 겁니다.
한편 금요일 연습주행 도중에 스핀으로 코스를 이탈, 방호벽과 부딪치는 바람에 오른쪽 앞 서스펜션과 차축을 날려먹은 루이스 해밀튼은 예선 전까지 썩 페이스가 좋은 편은 아니었습니다. 연습주행에서 헤이키 코발라이넨에 밀리는 모습도 보여줬고, 차량이 망가졌기 때문에 미케닉들이 밤새 차량을 복구하기 위해서 작업을 벌였을 테니 혹시 복구 과정에서 어딘가 틀어지지는 않았을까, 하는 불안감도 있게 마련입니다. 비록 드라이버 순위에서 선두를 달리고 있지만 이미 말레이지아에서 대패를 기록했고, 바레인 역시도 페라리 쪽이 유리하기 때문에 어떻게 해서든 지더라도 포인트 격차는 최소화할 필요가 있습니다.
아무튼 1차 예선에서는 페라리가 유리한 페이스를 잡았습니다. 해밀튼과 헤이키 코발라이넨이 나란히 1, 2위를 찍었지만...
곧이어서 달려든 마사와 라이코넨이 그 자리를 차지했습니다. 또한 쿠비차는 해밀튼과 코발라이넨 사이에 끼어들어서 4위를 기록했습니다.
1차 예선이 7분 쯤 남았을 때, 마사가 한창 플라잉 랩을 기록하면서 두번째 섹터까지 통과했을 무렵에, 마지막 코너를 돌던 사토 타쿠마의 차량이 연석을 넘어서 스핀, 트랙을 가로 질러서 피트 입구 쪽 방호벽과 부딪쳤습니다. 이 사고로 차량 뒷쪽이 손상을 입었습니다. 사토는 겨우 차량을 피트 입구 옆 풀밭에 세워 놓았고, 세션은 계속 진행됐지만 결국 4분 49초를 남겨 놓고 세션 중단을 알리는 붉은 깃발이 트랙에 나부꼈습니다. 아무래도 피트 입구에 차량이 서 있을 경우 피트로 들어가려는 차량들이 위험할 수 있고 방호벽에 부딪쳤을 때 떨어졌을 잔해들도 위험 요소입니다. 남은 시간은 별로 없지만 플라잉 랩 한 번, 또는 잇달아서 두 번을 돌기에는 충분한 시간입니다. 하지만 다시 세션이 진행되었지만 다들 눈치만 보다가 2분여를 남겨 놓고 탈락 대상에 들어간 차량들, 그리고 16위 안에는 들어가 있지만 순위가 뒤집힐 경우 탈락당할 위험이 있는 차량들이 줄줄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그동안 꽤 좋은 모습을 보여 주었던 세바스티안 베텔은 이날 만큼은 무기력한 모습으로 1차 예선에서 탈락하고 말았습니다. 마지막 주행에서 12위를 차지하면서 통과할 것처럼 보였지만 그 뒤에 들어온 주자들이 줄줄이 베텔을 뒤로 밀어내면서 17위까지 떨어진 것입니다.
이 와중에 트룰리는 1:32.493으로 2위를 차지했습니다. 작년보다는 확실히 좋은 페이스를 보여주고 있는 토요타가 이번 예선에서도 뭔가 일을 낼 조짐일까요?
피지켈라가 18위로 결승선을 지나면서 1차 예선이 마무리 되었습니다. 데이빗 쿨타드가 특별한 사건도 없었는데 탈락한 것도 이변이었습니다. 쿨타드, 피지켈라, 베텔, 슈틸, 데이비슨, 사토가 탈락했습니다.
2차 예선이 시작되었습니다. 하지만 차량들은 한참을 개러지에서 머물러 있다가 4분 정도가 지나서야 줄줄이 트랙으로 나서기 시작했습니다. 가장 먼저 르노의 넬슨 피케 주니어와 페르난도 알론소가 톱 타임을 기록했지만 뒤이은 드라이버들이 줄줄이 두 사람을 밀어냈습니다. 페라리가 나타날 때까지 순위표 가장 꼭대기를 차지한 인물은 헤이키 코발라이넨. 지난 말레이시아에서도 해밀튼보다 기록이 좋았던 코발라이넨은 바레인에서도 해밀튼을 강하게 압박해 왔습니다.
하지만 이런 얘기를 무색하게 만든 것은 펠리페 마사였습니다. 마사의 기록은 1:31.188. 해밀튼보다 무려 0.734초나 앞선 기록으로 압도했습니다. 반면에 키미 라이코넨은 썩 페이스가 좋지 않아서 맥클라렌 듀오보다도 좋지 않은 기록에 머물렀습니다. 하긴 2차 예선이니까 통과만 하면 그만이겠지만.
여기서 로베르트 쿠비차가 코발라이넨과 해밀튼 사이에 끼어들어서 3위를 기록합니다. 물론 마사와는 0.557초 차이로 많은 격차를 보이고 있지만, 적어도 페라리-맥클라렌 경쟁에서 변수가 아닌, 진정한 경쟁자로 올라서서 3강 구도를 만들 수도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첫 주행에서는 닉 하이드펠트도 막판에 4위로 올라서서 해밀튼을 5위까지 밀어내면서 올 시즌을 페라리-맥클라렌-BMW 자우버라는 3강 구도로 끌고 갈 신호탄을 쏘아 올렸습니다. 2차 예선에서는 마크 웨버, 루벤스 바리켈로, 티모 글록, 넬슨 피케 주니어, 세바스티앙 부르대, 그리고 나카지마 카즈키가 탈락했습니다. 두 드라이버 모두 예선을 통과한 팀은 페라리, 맥클라렌, BMW 자우버 뿐. 그리고 르노와 윌리엄스, 토요타와 혼다가 한 명씩을 3차 예선에 진출시켰습니다.
드디어 마지막 결투, 3차 예선의 카운트다운이 9:59로 떨어졌습니다. 3차 예선에서는 레이스 첫 피트 스탑 때까지 쓸 연료를 싣고 달려야 하므로 적재 연료량에 따라서 차이가 날 것입니다.
다섯번째로 결승선을 통과한 루이스 해밀튼의 기록은 1:33.651. 하지만 그 무렵 두번째 섹터를 통과한 로베르트 쿠비차가 이미 해밀튼의 두번째 섹터 기록을 0.280 차이로 누르고 있었습니다.
결국 쿠비차가 톱 타임을 갈아치웠습니다. 하지만 그 뒤를 페이스 세터 펠리페 마사가 뒤따르고 있었습니다. 마사는 0.011이라는 간발의 차이로 쿠비차를 눌렀습니다.
이제 다시 한번 플라잉 랩을 돌 기회가 있습니다. 타이어를 바꾸고 다시 차량들이 트랙으로 줄줄이 쏟아져 나옵니다. 해밀튼의 첫 섹터 기록은 좋지 않았습니다. 아무래도 시간을 앞당기기는 어려울 듯합니다. 하지만 2, 3 섹터에서 역주를 거듭한 끝에, 다시 톱 타임을 차지했습니다. 하지만 이미 그 뒤를 따르는 쿠비치의 2 섹터 기록에 -0.185가 찍혀 있습니다.
결국 쿠비차가 1위를 기록했습니다. 이제 마지막 남은 인물은 첫 플라잉 랩에서 1위를 기록했던 펠리페 마사와 키미 라이코넨. 과연 쿠비차를 밀어낼 수 있을까요? 아마도 대부분 그렇게 생각했을 것입니다.
일단 라이코넨은 실패. 코발라이넨은 이겼지만 해밀튼에게도 처지면서 4위로 만족했습니다. 마지막 남은 드라이버는 펠리페 마사. 과연?
마사도 실패했습니다. 0.027이라는, 정말 간발의 차이로 기록 단축에 실패하면서, 결국 폴 포지션은 로베르트 쿠비차에게 돌아갔습니다.
한편 페르난도 알론소는 10명 가운데 10위를 차지했습니다. 2005년과 2006년 연속으로 바레인 그랑프리의 정상에 섰던 알론소로서는 옛 영광이 그리울 뿐입니다. 올해 영 좋지 않은 르노의 페이스 때문에 페라리 이적설이 나돌고 있는 알론소. 과연 르노는 그를 붙잡을 수 있을까요?
등을 지고 있는 인물은 BMW 자우버의 마리오 타이센입니다. 자동차 회사로서는 메르세데스-벤츠아 어깨를 나란히 하는 BMW지만 F1에서는 언제나 페라리와 맥클라렌(메르데세스-벤츠)에 기를 못 폈는데, 2005년 중반에 자우버 팀을 인수해서 2006년부터 BMW 자우버를 출범시킨 BMW로서는 드디어 그 보람을 얻게 된 셈입니다.
모터스포츠에서는 변방이라 할 수 있는 폴란드 드라이버 로베르트 쿠비차가 바레인 그랑프리에서 가장 앞 자리에서 출발합니다. 하지만 그 뒤에는 펠리페 마사, 루이스 해밀튼, 키미 라이코넨, 그리고 헤이키 코발라이넨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아마 이들 모두가 출발 때 로켓 스타트로 역전을 노릴 것입니다. 과연 쿠비차가 이 강자들의 도전을 잘 막아내고 페이스를 잡을 수 있을까요? 또 한 가지, 과연 쿠비차의 폴 포지션은 진정한 능력으로 거둔 것일까요? 아니면 상대편보다 연료를 적게 실었기 때문일까요? 그 모든 궁금증에 대한 해답은 이제 레이스에서 얻게 될 것입니다. 아무튼 페라리-맥클라렌 양강 구도에서 BMW 자우버가 대등한 강자로 떠오르면서 2008년 F1은 더더욱 치열한 각축전으로 전개될 것입니다. 최근에 터진 FIA 회장 맥스 모슬리의 성추문 때문에 모터스포츠계가 시끌시끌합니다만, 그래도 경기는 계속됩니다. 쭈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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