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그래도 이래저래 힘든 국내 모터스포츠가 올해 엄청난 암초에 맞닥뜨려 좌초할 뻔 했습니다. 이유는 이른바 '불법 정비' 문제 때문입니다.
원래 자동차 정비업을 하려면 기준에 따른 설비와 자격증을 가진 정비사가 정해진 수만큼 있어야 하지만 현재 레이싱 팀 캠프에서는 그런 정비업체 기준을 만족하는 경우가 별로 없습니다. 레이싱 팀 캠프는 손님을 받는 곳도 아니고, 관리하는 자동차도 일반 도로 주행용이 아니라 경기 전용으로 쓰는 차량이기 때문입니다.
경기 전용 차량은 ASN을 통해서 자동차 등록을 말소합니다. 이 차량은 도로를 달릴 자격이 없기 때문에 경기장으로 실어 나를 때에도 트럭에 얹어서 보내야 합니다. 물론 일부 경기 클래스는 일반 도로 주행용 차량을 경기에서도 쓰고 있기 때문에 이런 경우라면 정비업소로 등록되지 않은 레이싱 팀 캠프에서 작업을 할 경우 '불법 정비'가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사실 이번 문제도 여기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언론에서 몇몇 레이싱 팀 캠프가 도로용 차량, 정확히 말하면 도로용 차량이지만 경기에도 나가는 차량을 정비하고 튜닝한 것에 대해서 기사화하면서 문제가 된 겁니다. 문제는 용인시에서 자동차관리법 제53조 제1항, 그리고 제89조 3호 규정을 내세워서 '도로 이외서만 사용하는 자동차라 하더라도 점검 치 정비는 면제되지 않아 경기도 조례에 의한 등록법에 따라 정비 업소에서 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모든 레이싱 팀 캠프를 단속하겠다고 나온 겁니다. 이 바람에 그야말로 레이싱 팀 캠프들이 줄초상 상태가 됐습니다. 100% 다 걸린다고 보면 되기 때문입니다. 한때 캠프들이 전부 문을 걸어 잠그고 도망가는 상황까지 나올 정도로 문제가 심각했습니다. 그 바람에 올 시즌 계획되었던 경기가 과연 어떻게 될지도 불분명한 상태가 되었습니다.
다행히 국내 모터스포츠 관할 기구(ASN)인 KARA에서 건설교통부에 이 문제를 질의한 결과, "도로를 주행하지 않는 경주용 자동차의 대회목적 등으로 별도의 점검 및 정비에 대해서는 자동차관리법에서 제한하지 않는다”는 확답을 받았다고 합니다. 따라서 이 문제는 도로용 차량을 정비한 몇몇 레이싱 팀 캠프로 축소될 듯하고 올해 계획되었던 경기들도 일정은 조금 연기됐지만 예정대로 치를 수 있을 듯합니다.
일단 이번 문제의 책임은 도로용 차량에 대해서 정비 작업을 했던 몇몇 레이싱 팀 캠프에 있습니다. 경기에 나가는 차량이라고 해도 등록말소가 되지 않은 차량은 법으로 정해진 정비업소에서만 정비할 수 있다는 건 당연한 것인데도 이를 지키지 않음으로서 불씨를 제공한 팀들은 책임을 져야 합니다. 하지만, 레이싱 팀 캠프 전체를 불법 정비 업소 취급하면서 단속을 하겠다고 설친 용인시 역시 책임이 큽니다. 용인 에버랜드 스피드웨이 주변에 레이싱 팀 캠프가 자리잡은 게 어제 오늘 얘기도 아닙니다. 언론에서 기사를 쓰니까 오버해서 설치고 다니면서 모터스포츠의 뿌리 자체를 뒤흔들어 놓은 용인시의 무책임한 태도는 비난 받아 마땅합니다. 건설교통부에 유권해석 한 번만 요청했더라도 올 시즌을 위기로 몰아넣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물론 국내 모터스포츠 관할 기구인 KARA 역시도 문제가 불거졌을 때 빠르게 대처하지 못해서 상황을 이 지경까지 만들고서야 부랴부랴 유권해석을 받은 점에서 비판을 면하지 못할 듯합니다. 사실 몇몇 레이싱 팀에서 DDGT와 같이 도로용 차량이 출전할 수 있는 경기에 참여하는 차량을 정비해 온 걸 모르는 바가 아니면서도 상황을 그냥 방치했다가 문제가 터지고서야 소잃고 외양간 고치는 식으로 대처한 태도는 문제가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여전히 구멍가게 신세를 벗어나지 못하는 우리나라 모터스포츠의 현실이 가장 큰 원인일 것입니다. 이웃 일본만 해도 F1에 참가하는 팀이 셋이고, 참여 자동차 회사가 둘이나 있습니다. 그에 비해서 나름대로 자동차가 주력 수출 상품이라고 하는 우리나라는 그야말로 한심한 수준입니다. 세계 5대 자동차 회사라고 자랑을 늘어놓으면서도 모터스포츠를 외면하는 현대자동차를 비롯해서, 국내 자동차 회사들의 무관심 때문에 여전히 모터스포츠는 폭주족들의 마니아 정도로 폄하되고 있습니다. 이런 불법 정비 문제도 그만큼 모터스포츠가 정당한 대접을 받지 못하기 때문에 벌어진 문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2010년으로 예정되어 있는 한국 F1 대회도 이를 지원하기 위한 특별법이 여전히 국회에 물려 있습니다. 한나라당이 경주 지원 특별법과 같이 처리해야 한다고 억지를 부리면서 F1 특별법을 가로막고 있습니다. 그렇게 입만 열면 '실용' 좋아하는 한나라당이 국내 모터스포츠를 도약시키고 국가 홍보에도 큰 공헌을 할 F1 대회의 발목을 잡고 있는 겁니다.
아무튼 이번 불법 정비 문제는 건설교통부의 유권해석으로 마무리 단계에 들어가겠지만, 여전히 열악한 국내 모터스포츠의 환경은 언제쯤 개선될지, 발 담그고 있는 한 사람으로서, 또 모터스포츠 팬으로서 걱정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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