촬영장소 겸 숙소인 골프 리조트에서 첫날 아침을 맞이했습니다. 부시시한 행색으로 로비에 나와 보니, 몇 가지 태국 신문들이 있었습니다. 태국어는 도통 까막눈이고, 그나마 영어는 떠듬떠듬 읽을 수 있으니 영자 신문을 대충 뒤적뒤적거려 봤습니다. 그런데, 1면의 한 기사를 보다가 뒤집어졌습니다. 우리나라 같았으면 인터넷에서나 나올 법한 기사가 이곳에서는 버젓이 신문 기사 1면을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기사 제목은 '공항이 로켓 공격 위협을 받고 있다'입니다. 방콕 신공항인 수완나품 국제공항 개발 과정에서 피해를 본 주민들에 대한 정부와 공항 소유주의 보상이 늦어지자 돌아오는 토요일에 벌어질 시위에서 기구와 사제 로켓을 들고 나오겠다고 위협을 했다는 것이 이 기사의 내용인데, 제가 뒤집어진 것은 이 기사의 앞머리 부분입니다.
기사 앞부분을 해석하면 이렇습니다.
만약 당신이 다음 토요일에 수완나품 공항을 이용할 계획이 있다면 창가 자리를 예약하시라. 당신은 창밖에서 거대한 불덩이와 기구가 펼치는 가장 멋진 불꽃놀이 쇼를 보게 될 지도 모른다.이쯤 되면 우리나라 웬만한 인터넷 글이 무색할 정도로 유머 감각으로 사태를 비꼬는 내용입니다. 우리나라에서 만약에 이런 식으로 기사를 썼다면 '신문이 장난이냐'라는 욕을 꽤나 들어 먹었을 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이런 독한 유머가 1면에 떡 하니 올라 있습니다. 현지 가이드 분에게 물어보니까, 태국 신문에서는 그런 식의 기사가 종종 나온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태국 사람들의 유머 감각은 참 대단해서 TV에서도 정말 기발한 아이디어와 유머가 번득이는 광고들이 많아서 광고만 봐도 재미있다고 하더군요.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공항 로켓 공격 위협이라는 심각한 얘기를 하는데, 이런 장난 같은 유머를 앞머리에 쓰는 건 좀 문제가 있지 않은가, 생각할 수도 있겠습니다만, 어쩌면 이런 일조차도 웃음으로 풀어낼 수 있는 생각은 삶에 대한 여유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 보게 됩니다. 재작년인가요? 태국에서 쿠데타가 나서 탁신 총리가 쫓겨났을 때, 하필이면 아는 사람이 태국 여행 스케줄이 잡혀 있었습니다. 쿠데타가 났으면 어수선할 텐데... 괜찮을까 싶어서 물어보니까, 태국 사람들은 뭐, 별 대단한 일 아니라는 반응이랍니다. 그동안 태국에서는 군부 쿠데타도 여러 번 났고, 쿠데타 때문에 일반 사람들이 다치는 일은 거의 없거니와 국왕한테 인정을 받지 못하면 쿠데타가 실패하기 때문이라고 하더군요. 어쩌면 그런 사회 속에서 오랫동안 살아 왔기 때문에 웬만큼 심각한 문제도 여유 있게 생각할 수 있는 사고방식이 태국 사람들에게 자리잡은 건 아닐까, 뭐 그런 추측을 신문 기사 하나 가지고 해 봤습니다.
어디까지나 태국 처음 가 본 놈의 겉핥기 추측이니, 사실과 전혀 다르더라도 너무 타박하진 마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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