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그래미 시상식에서는 두 가지 주목할 만한 인물이 있었습니다. 첫째는 5관왕을 차지한 영국 뮤지션 에이미 와인하우스, 그리고 올해의 앨범상을 수상한 허비 행콕입니다. 1940년 4월 12생. 올해로 만 68살인 이 노장 뮤지션이무려 43년 만에 재즈계에 올해의 앨범상을 안겨 주었습니다. 아, 어떤 분들은 2003년에 올해의 앨범상을 탄 노라 존스의 <Come Away with me>가 있지 않느냐고 하실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정확히 말하면 노라 존스를 재즈로 보기는 그렇습니다. 재즈의 흔적은 있지만 웨스턴 스타일이나 블루그래스 쪽에 가깝죠.
허비 행콕이 지금까지 재즈 역사에서 걸어온 길은 그야말로 인디애나 존스에 가깝다고 할 정도로 모험으로 가득차 있습니다. 일렉트릭 재즈를 장르간 경계를 허문 극한까지 몰고 간 무한질주로 재즈를 파괴했다는 논란에 휩싸였던 인물이기도 했지만 그 폐허 위에서 재즈의 전통을 다시금 건져 올린 인물이기도 했습니다.
이미 11살 때 시카고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모차르트의 피아노 협주곡을 연주했을 정도로 재성을 인정 받았던 그는 1961년 도널드 버드에게 발탁되어, 곧바로 재즈계에서 주목 받는 스타가 되었고 블루 노트에서 발매된 <Takin' Off>로 재즈계의 중심에 서게 됩니다. 이미 라틴 재즈의 스타인 몽고 산타마리아가 히트시켰던 'Watermelon Man'으로 작곡가로서도 평가를 받았던 그인 만큼 데뷔 앨범에서부터 그의 개성은 재즈계에 큰 반향을 일으켰고, 결국 마왕 마일즈 데이비스가 허비를 끌어들이게 됩니다. 그 이후의 활동은 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Seven Steps to Heaven>, <Miles Smiles>, <E.S.P.>를 비롯해서 마일즈가 포스트 밥을 지나서 일렉트릭 재즈로 발을 들여 놓는 모험에 그의 이름이 올라 있었습니다. 그리고 당시 마일즈의 밴드에서 함께 활동했던 웨인 쇼터, 론 카터, 토니 윌리엄스와 같은 인물들은 나중에 V.S.O.P.라는 프로젝트에서 중추를 담당합니다.
70년대에 마일즈가 열어제낀 재즈-락 퓨전의 시대는 그야말로 허비에게는 물 만난 고기와 같은 무대였습니다. 헤드헌터스 그룹을 결성해서 펑키한 리듬감을 기반으로 R&B, 소울, 가스펠을 비롯한 온갖 흑인 음악들의 요소를 뒤섞은 헤드헌터스는 존 맥클러플린의 마하비슈누 오케스트라 웨인 쇼터와 조 자비눌의 웨더 리포트, 칙 코리아의 리턴 투 포에버와 함께 재즈-락 퓨전 시대를 주도해 나간 선두 주자들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질주하던 한편으로는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마일즈와 함께 작업하던 시절에 함께 했던 이들에다가 트럼페터 프레디 허버드를 더해서 V.S.O.P. 프로젝트도 병행해 나갔습니다. 허비 행콕이 재즈계, 더 나아가서 음악계에 충격파를 던져 준 것은 1983년에 발표한 <Future Shock>이었습니다. 펑키한 전자 드럼 사운드를 깔고 DJ 스크래칭까지 들여 놓으면서 80년대 디스코텍에서 주야장천 울려퍼졌던 'Rockit'으로 그래미상에서 베스트 리듬 앤 블루스 인스트루먼틀 퍼포먼스를 차지한 그는 시상식장에서 숄더 마스터 키보드를 둘러메고 이 음악을 연주함으로써 다시 한번 충격파를 던져주고 과연 이것이 재즈인가 아닌가, 허비 행콕은 재즈를 파괴시킨 것인가, 이런 뜨거운 논란을 일으켰습니다.
여전히 허비 행콕은 일렉트릭과 전통을 넘나들면서 자유로운 음악 세계를 탐험하고 있습니다. 80년대에는 <Future Shock> 이후에 '너무 나갔다'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일렉트릭 사운드에 푹 빠져 있었지만, 90년대에 들어서는 다시금 전통으로 관심을 돌렸습니다. 1995년에 내놓은 <New Standard>는 너바나의 'All Apologies', 비틀즈의 'Norwegian Wood', 스티비 원더의 'You've Got a Bad Girl', 사이먼 앤 가펑클의 'Scarborough Fair', 프린스의 'Thieves in the Temple'와 같은 팝 음악들을 재즈로 해석해서 화제와 함께 좋은 평가를 받습니다. 그렇다고 전통으로 완전히 기울어진 것도 아닙니다. 20년 만에 헤드헌터스 멤버들을 다시금 불러 모아서 <New Headhunters> 앨범을 내기도 했고, 2007년에는 여성 싱어 송 라이터인 조니 미첼의 음악을 재즈로 해석한 <River : The Joni Letters>를 내놓습니다. 바로 이 앨범이 1965년 스턴 게츠와 요아오 질베르토의 <Gets/Gilberto> 이후 43년 만에 처음으로 재즈 앨범이 올해의 앨범상을 거머쥐는 쾌거를 안겨 줍니다. 아무튼 70이 다 되어가는 나이에도 여전히 녹슬지 않은 감각으로 스탠더드와 일렉트릭을 자유롭게 넘나드는 허비 행콕은 앞으로도 또 어떤 신선한 모습을 보여줄지. 나이를 잊은 혁신과 진보를 끊임없이 추구하는 그는 여전히 재즈의 최전선에서 뛰고 있는 야전사령관입니다.
한 가지 재미있는 사실. 허비 행콕이 믿는 종교는 우리나라에서는 이른바 '남묘호랑게교'란 이름으로도 알려져 있는 일본 불교인 일련종입니다. 수잔느 베가도 일련종 신도이죠.
언젠가 봤던 그의 인터뷰에서 이런 얘기가 기억에 남습니다. 하루에 연습을 얼마나 하냐고 했을 때, 두세 시간? 정도라고 대답했습니다. 그와 같은 클래스에 있는 뮤지션으로서는 뜻밖에 적은 시간이라서 그걸로도 되냐고 했을 때, 허비의 대답은 대략 이랬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재즈는 삶이다. 재즈 뮤지션은 밖에 나가서 세상도 보고 사람들도 만나야 한다. 방안에 틀어박혀 있다고 좋은 음악이 나오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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