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F1에서 인종차별 문제가 이슈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사실 F1에서 인종차별은 그다지 문제가 되지는 않았습니다. 물론 일본인 드라이버들은 계속 활동을 해 왔고, 알렉스 융(말레이시아)이나 나레인 카티케얀(인도)같은 동양계 드라이버도 활동을 해 왔습니다만, 성적이나 스타성에서 별달리 주목받는 인물은 아니어서, 흑인 드라이버가 없었던 F1에서 인종 문제는 큰 이슈는 아니었습니다. (흑인 드라이버가 없었다는 게 가장 큰 인종 문제였죠) 하지만 작년에 루이스 해밀튼(영국)이라는 스타급 흑인 드라이버가 F1에 데뷔하고, 작년 시즌에 한식구였던 페르난도 알론소(스페인)와 막판까지 거의 막장 혈투를 벌이면서, 스페인과 영국 팬들의 감정 대립도 격화되었습니다.




시즌이 끝나고 알론소가 1년 만에 맥클라렌을 떠나게 되면서 해밀튼에 대한 스페인 팬들의 분노는 극에 달했습니다. 결국 최근 스페인에서 벌어진 테스트에서는 군중들로부터 "puto negro" (f**king black), "negro de mierda" (black shit)와 같은 인종 비하 욕설까지 터져 나왔습니다. 사실 군중들이 열받으면 그럴 수도 있지, 싶을 수 있겠습니다만, 국제 모터스포츠를 관장하는 국제자동차연맹(FIA)에서는 이 문제를 심각하게 여기면서 공개적으로 경고를 보냈습니다. 공식 거론되지는 않았지만, 이런 일이 또 되풀이되면 최악의 경우에 스페인이 가지고 있는 그랑프리 경기 개최권을 박탈할 수도 있다고 할 정도로 강경합니다.




사실 유럽 스포츠에서 인종 문제는 어제 오늘 일은 아닙니다. 특히 흑인 스타들이 많은 축구에서는 이런 일이 종종 있었는데, 이를테면 스페인의 대표팀 코치인 루이스 아라고네스는 2004년에 티에리 앙리가 스페인 대표팀과 연습 경기를 가질 때 앙리에 대한 인종 비하 발언으로 문제를 일으킨 적이 있습니다.
Tell that negro de mierda [black shit] that you are much better than him. Don't hold back, tell him. Tell him from me. You have to believe in yourself, you're better than that negro de mierda.

그 ×같은 검둥이한테 네가 더 낫다고 말해. 겁내지 말고 말해. 내가 그랬다고 말해. 너 자신을 믿어야 한다, 네가 그 ×같은 검둥이보다 낫다고.

더 문제는, 다른 나라 같았으면 이런 발언은 바로 코치직 사퇴로 이어졌겠지만 스페인에서는 어영부영 넘어가는 분위기였고, 결국 유럽축구연맹은 스페인 축구연맹에 벌금과 함께 또다시 이런 일이 벌어지면 심각한 처벌을 받을 것이라고 엄중 경고를 하는 것으로 마무리 되었습니다.
또한 FC바르셀로나의 스트라이커 사무엘 에토는 레알 자라고자와 벌인 경기에서 인종 비하 비난을 받은 뒤에 관중석으로 뛰어들려고 하기까지 했습니다. 그 일 이후 에토는 경기장에 가족들, 특히 아이들을 데려오지 않겠다고 선언했습니다. 실제로 스페인에서 활동하는 흑인 선수들은 이런 인종 비하가 섞인 비난을 종종 경험한다고 합니다. 이번 루이스 해밀튼에 대한 인종 비하 사건 역시도 스페인 쪽에서는 안티 해밀튼 팬들이 그럴 수도 있지, 하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분위기입니다. 이런 분위기 때문에 유럽에서 스페인은 인종 차별 문제에 대해서 다른 유럽 국가들로부터 좋은 평판을 받지 못하는 편입니다. 물론 스페인 쪽에서는 '너희들은 인종 차별 안 하느냐'라고 반박하면서 이번 일을 영국 언론들이 침소봉대하고 있다고 주장합니다만, 확실히, 스페인 스포츠계에서 유독 이런 문제가 자주 불거집니다.
 

사실 스페인은 다른 서유럽 국가들과 비교하면 민주주의 역사가 짧은 편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극우파 독재자인 프란시스코 프랑코가 1975년까지 스페인에서 독재체제를 구축했기 때문에 지금 스페인 사람들이 민주주의 체제에 대해서 경험한 길이는 우리나라와 비슷하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물론 우리나라는 전두환 노태우로 이어지면서 더 길게 갔지만요. 독재체제는 다른 문화, 다른 집단에 대한 증오를 먹고 사는 법입니다. 히틀러는 유태인을 제물로 삼았고, 박정희는 북한을 내세웠듯이 말이죠. 내전을 통해서 같은 나라 사람들끼리 죽고 죽여 집권한 프랑코 시대의 스페인 역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다른 인종, 다른 문화에 대한 혐오가 활개를 쳤습니다. 프랑코가 죽고 난 다음 민주주의 사회로 이행했지만 독재 시절의 잔재는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곳곳에 독재 시대 잔재들이 널려 있기는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죠. 더구나 스페인에서는 아직 인종 차별에 대처할 수 있는 법과 제도가 부족하기 때문에 이 문제가 더 불거진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스페인에서는 스포츠 경기에서 인종 차별 문제를 막기 위한 법이 제안되어 있지만 축구경기로만 그 영역을 한정하고 있기 때문에 다른 스포츠에 대해서는 별 효력이 없는 셈입니다.

FIA가 이번 사태에 대해서 강력 경고에 나서면서, 아마 겉보기에는 F1 경기나 테스트 때, 노골적인 인종 차별 발언이 나오지는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다른 나라보다 인종 차별 문제에 느슨한 스페인의 법과 제도, 또한 아직 독재 시대의 망령을 채 떨쳐내지 못한 스페인 사회에서 인종 문제는 앞으로도 언제 헤드라인을 장식할지, 알 수 없겠지요. 인종문제는 스페인 뿐만이 아니라 여전히 유럽 각국에서 골칫거리입니다. 특히나 이민자들이 많은 프랑스나 독일 같은 곳에서는 폭동이나 네오나치 급증 같은 큰 사회 문제로 번지곤 합니다. 백인들 사이에 오랫동안 뿌리박아온 인종 차별 심리는 짧은 기간 안에 쉽게 해결될 수 있는 문제는 아닐 것입니다. 결국 법과 제도, 그리고 교육을 통해서 계속 싸워나갈 수밖에 없겠죠.
Posted by MP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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