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욕물을 버리면서 아기도 버리지 말라, 요런 말이 있습니다. 오버하지 말라 이런 소리죠. 뭐든지 도매금으로 떠넘기다 보면 목욕물인지 아기인지도 구별 못하고 버리는 이런 상황이 생깁니다. 정부에서 기자실을 통폐합하겠다, 개별 취재는 전자브리핑으로 하겠다. 앞으로 공무원 취재하려면 공보실 통해서 해라, 뭐 이런 얘기를 들고 나왔더군요. 적지 않은 사람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쓰레기 언론한테 한방 먹이는구나! 꼬시다!"
바뜨.
쓰레기 언론이라고 해도 언론이 입이 막히는 것보다는 차라리 낫습니다. 저도 조중동 쓰레기 중의 상쓰레기라고 생각합니다만. 그래도 그거 핑계로 모든 언론의 입을 막겠다는 발상은 조중동보다 더 쓰레기입니다. 이 세상에 언론이 조중동밖에 없나요? 조중동보다 훨씬 건강한 관점을 가지고 논리적으로 비판하는 언론들도 있습니다. 근데 전부다 입 막겠다. 이건 한마디로 조중동 핑계로 우리 맘대로 하겠다는 얘기일 뿐이죠.
사실 전 조중동하고 참여정부가 무슨 외나무 다리에 선 원수들처럼 으르렁거리는 게 우습거든요. 걔들, 겉보기에는 으르렁거리지만 구체적인 정책에서는 아주 죽이 착착 맞으시는 분들입니다.
이라크 파병? 어떻습니까?
한미 FTA? 어떻습니까?
비정규직 문제? 어떻습니까?
부동산이나 재벌 개혁 문제는 서로 오락가락하기 바쁘신 분들이고, 사실 제대로 으르렁거리는 부분은 사학법하고 남북문제, 이게 다입니다. 사실 그렇게 원수지간처럼 으르렁거릴 일도 아닙니다. 오히려 정책보다는 감정적인 게 더 크죠. 그 뒤로 가보면, 사실 서로 멱살 잡으면서 공생하는 K-1 같은 관계죠.
솔직히, 참여정부로서는 한겨레나 경향 같은 언론이 공격하는 게 더 짜증날 겁니다. 조중동에서 공격하는 것은 자신들이 우경화되었다는 점을 희석시켜 주면서 자신들을 진보적으로 포장하는 효과가 있지만, 이건 뭐, 한겨레 경향 같은 언론은 그런 효과도 없으니. 정부로서는 더욱 눈엣가시 같은 존재일 걸요? 사실 요즘 좀 걱정스러웠습니다. 노 대통령이 처음에 조중동을 타겟으로 할 때는 잘한다 싶었죠. 나중에는 자길 비판하는 언론은 모두 적이다! 라는 듯한 모습을 보면서, 이건 히스테리야, 라는 생각 밖에는 안 들었습니다.
이번 일은 조중동이 아니라, 규모가 그보다 작은 언론들을 타겟으로 하는 수작입니다. 돈 많은 부자언론들은 어차피 깔아 놓은 인맥도 많겠다, 근처에 사무실이라도 내던가 하는 방법으로 문제를 어느 정도 해결할 수 있습니다. 사실 그다지 큰 타격이 안 된다 이겁니다. 그러나, 재정이 넉넉치 않은 다른 언론들은 이번 일로 취재길이 크게 막힙니다. 사실 이번 일로 피해보는 건 조중동보다는 다른 언론들 되겠습니다. 쓰레기 언론들은 큰 손해가 아니지만, 적어도 덜 쓰레기인 언론들은 크게 피보는 결과를 낳는다 이거죠.
물론 어떤 분들은 이렇게 말할 겁니다. "기자들은 기자실에 죽치고 있고 발로 뛰어라!" 하지만 위에서 말했죠? 공무원 취재하려면 공보실 통해서 해야 한다고요. 공보실 통해서 하는 취재가 비리나 문제점에 대한 걸 제대로 캐낼 수 있다고 생각하세요? 공보실에서는 누가 어떤 공무원을 취재했는지 다 알겠다는 겁니다. 예를 들어서, 익명으로 취재해서 어떤 비리를 캐내겠다, 이게 이제는 안 된다는 얘깁니다. 왜? 공보실에서 어떤 공무원을 취재했는지 아니까요. 이건 발로 뛰는 것조차도 막겠다는 수작입니다.
물론 목욕물은 더러우니까 버려야죠. 하지만 이번 일은 목욕물 버리면서 원치 않는 아기까지 몰래 버리겠단 겁니다. 사실 진짜 중요한 문제는 기자실 통폐합이란 단편적 부분이 아닙니다. 여러 가지 방법을 조합해서 공무원을 직접 취재하는 루트를 떡 가로막겠고 통제하겠다는 부분입니다.
그래도 "쓰레기 언론 엿먹였다"고 환호성 올리시겠습니까?
'혹세무민'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착각은 자유 (2) | 2007/06/04 |
|---|---|
| 왜! 조선일보가 구독률 1위냐고? (4) | 2007/05/28 |
| 기자실 통폐합, 목표는 조중동이 아니다 (4) | 2007/05/23 |
| 한덕수 선생님, 쑈하지 맙시다 (0) | 2007/05/19 |
| 당사자와 제3자 (0) | 2007/05/17 |
| 장애란 고통일 뿐인가? (1) | 2007/05/16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