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네시아의 수하르토 전 대통령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얼마 전부터 위독설이 심심찮게 나돌았고, 최근에는 '임종 임박'이라는 기사까지 나왔는데, 결국 87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수하르토를 얘기할 때 가장 오버랩 되는 인물이 박정희입니다. 실제로 수하르토와 박정희는 꽤 친분이 있었고 두 나라는 개발 과정에서 상당히 비슷한 노선을 걸었습니다. 수하르토가 박정희 식 개발독재 모델을 추종했다고 보는 게 옳을 겁니다.




수하르토는 군인 출신이라는 면에서도 비슷하고 인도네시아군이 아닌 네덜란드군으로 시작해서 일본군 생활을 한 것 역시도 만주군 출신 박정희와 비슷한 점입니다. 다만 수하르토는 나중에 독립군으로 말을 갈아탔다는 점이 차이일 것입니다. 박정희는 1961년에 5.16 쿠데타를 통해서 정권을 탈취했고, 수하르토는 반대로 1965년에 군부의 친위 쿠데타를 진압함으로써 권력 핵심부에 들어선 다음에 수카르노에게 정권을 넘겨 받았습니다. 구체적 방법에는 차이가 있지만 둘 다 군을 기반으로 해서 무력을 바탕으로 정권을 잡았다는 점에서 비슷합니다.

1965년이면 한국에서는 이미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이 1962년부터 시작되어 후반부로 가고 있을 때입니다. 경제개발에서는 수하르토 쪽이 박정희보다는 유리했습니다. 인도네시아는 석유와 천연가스 같은 자원이 풍부했기 때문에 수하르토는 이를 바탕으로 공업화를 이끌었고, 이에 따라서 연평균 7% 성장을 기록하면서 '인도네시아의 아버지' 칭송을 받기도 합니다. 우리나라에서 박정희 역시도 공업화를 통한 고도성장으로 이런 대접을 받은 바 있지요.

문제는 두 사람 모두 공업화의 과정에서 철저한 독재를 통해서 민주주의를 억압했다는 것입니다. 두 사람 모두 철저한 친미반공정책을 기치로 내걸고 반대파를 억압하고 인권 탄압을 자행했습니다. 때문에 일부 학자들은 한국과 인도네시아의 예를 들면서 후진국이나 개발도상국이 경제 발전을 하기 위해서는 무력에 바탕을 독재와 인권 탄압이 불가피하다는, 이른바 '개발독재' 주장을 들먹이기도 했습니다. 물론 두 사람 모두 민중들의 저항을 무력으로 눌렀습니다. 수하르토는 재임 시절에 수십만 명을 학살하기도 했고, 박정희 대통령도 인혁당, 통혁당 사건과 같은 사법살인, 각종 의문사 사건과 무자비한 인권 탄압 사례를 줄줄이 달고 있습니다.

또한 대통령 선출 과정도 비슷한 점이 있는데, 박정희는 유신헌법을 통해서 '통일주체국민회의'라는 것을 만들고 이른바 '체육관 선거'를 통해서 대통령을 뽑았습니다. 수하르토 역시도 '국민협의회' 위원이라는 것을 만들어서 '체육관 기립박수'로 대통령을 뽑았습니다.

두 사람 모두, '이번만 하고 물러날게'를 입에 달고 살았지만, 임기가 끝날 때마다 말을 뒤집으면서 계속 정권을 연장했고, 나중에 가서는 종신집권까지 꿈꾸었습니다. 박정희의 꿈은 1979년에 총탄에 쓰러짐으로써 18년 만에 끝장이 났지만, 수하르토는 32년 동안이나 철권통치를 했습니다. 결국 1997년 외환 위기 때문에 돈 가치가 폭락하고 물가가 폭등하는 극심한 인플레이션 때문에 전국적으로 시위가 들끓게 되자 쫓기듯이 권좌를 내놓았지요. 수하르토는 이후 부정부패 혐의로 기소되었고, 가택 연금 신세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세상을 떠난 것이지요. 박정희는 제 명을 못 채웠고, 수하르토는 천수를 누리고 갔지만 그 말로는 다들 아름답지 못했습니다.

차이점이 있다면 글쎄요, 수하르토는 가족들이 엄청나게 부정부패를 저질렀지만 박정희 가족은 별달리 부정부패라고 할만한 게 없었다는 것? 하지만 인척이나 측근들은 인도네시아 부럽지 않게 해먹었죠. 그리고 종신집권을 꿈꾸는 사람에게는 권력만 있으면 그만입니다.

이들이 권좌에서 물러난 뒤에도 닮은꼴은 계속되는데, 우리나라나 인도네시아나 이 독재자들에 대한 향수가 만만치 않습니다. 사람들은 지금 겪는 어려움이 누구에게 근원이 있었나를 생각하지 않고 옛날 '그 좋았던 시절'에 대한 그리움만이 남게 되나봅니다. 그래서인지 요즘 우리나라에서 여론조사를 해 보면 가장 훌륭한 대통령으로 박정희를 꼽는 사람들이 많고 인도네시아에서 최근에 있었던 여론 조사 결과를 봐도 국제투명성기구에서 20세기 가장 부패한 지도자로 낙인 찍었던 수하르토에 대한 지지가 꽤 많다고 합니다. 독재 체제가 붕괴된 뒤, 그동안 꼭꼭 숨겨왔던 독재 체제의 온갖 폐해들을 그대로 떠안고 허우적대야 하는 후대 정권의 딜레마겠죠.

박정희 시대 한몫 하던 김종필 같은 인물들이 최근까지도 정치권에서 활개를 치고 있고, 인도네시아 역시도 수하르토 시대의 주요 인물들이 여전히 후대 정권에 끼어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걸 보면, 독재자는 무너져도 독재정권은 그렇게 쉽게 청산되지 않나 봅니다.
Posted by MP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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