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와인 책이 부쩍 많이 나오고 있습니다.확실히 와인 인구가 많다보니까 책의 종류도 많아지고 그 스타일도 점점 다양해지고 있습니다. 저도 와인 관련 책을 몇 권 사서 보는 편입니다. 보다보면 좀 비슷비슷하다 싶기도 하지만 아직 모르는 게 많은 저로서는 배울 것들이 있고, 또 한 가지 주제에 대해서도 책에 따라 관점들이 다르므로 참고하고 생각해 볼 부분도 있기 때문입니다. 아무튼, 요즘 가장 잘 나가는 와인책이라면 아마도 <와인의 세계, 세계의 와인>일 텐데, 학습만화로 유명한 이원복 교수가 와인에 대한 여러 가지 상식들을 만화로 쉽게 풀어서 인기가 무척 좋습니다. 저도 궁금해서 이 책을 사서 봤습니다. 그런데 보다보니 좀 고개가 갸우뚱해지는 부분들이 있습니다. 어떤 문제에 대한 관점이라면 저도 뭐라 말할 생각은 없습니다. 예를 들어서, 디켄팅이 과연 필요하냐 아니냐, 하는 문제라면 그건 관점 차이에 따라서 다른 답이 나올 수 있고, 또한 와인은 주관성이 강해서 하나만을 정답으로 볼 수 없기 때문에 그런 걸로 시비 거는 건 오버입니다. 문제는, 사실 관계가 잘못되었을 경우입니다. 이 책에서 이런 사실 관계에 대한 오류가 여럿 발견되었습니다 저도 가끔 블로그에 글을 쓰다 보면 잘못된 내용을 써서 나중에 가서 고치거나 지적을 받는 경우도 있습니다만, 개인 블로그와 돈 받고 파는 책은 분명 요구되는 정확성이 다를 겁니다. 분명 초보자들을 겨냥했을 책인데, 이런 오류들이 있다면 이 책을 보는 분들은 잘못된 정보를 사실로 믿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이 책에서 발견한 오류들 중에서 사실 관계에 관한 오류들을 골라서 밝히고자 합니다.
1.195 페이지 '로버트 파커'
감보로 로스(Gamboro Ross)? 갸우뚱했습니다. 일단 이탈리아 이름 같지도 않은 데다가, 그런 와인 평론가를 들어본 일이 없기 때문입니다. 물론 제가 모르는 유명 비평가들이 많으니까, 구글을 비롯해서 여러 곳에서 검색을 해 봤습니다만, 역시나 아무 결과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뒷 내용을 보면 뭔가 감이 잡히는 게 있습니다. 이거, 아무래도 '감베로 로소(Gambero Rosso)'를 잘못 알고 있는 것 같은데,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감보로 로스, 감베로 로소, 어감도 비슷하죠. 아무튼 더 문제는 감베로 로소 역시 와인 평론가가 아니라는 겁니다. 감베로 로소는 1986년부터 이탈리아에서 출간된, 요리에 관한 잡지로, 설립자 겸 발행인도 감보로 로소가 아니라 스테파노 보닐리(Stefano Bonilli)라는 저널리스트입니다. 이탈리아의 주요 레스토랑을 소개하고 요리에 대한 기사들을 싣습니다. 또한 각 지역별 맛집 정보를 담은 가이드북도 내고 있습니다. 여기서 이탈리아 와인에 대한 연감을 내고 있는데, 이 연감은 이탈리아 와인들을 대부분 망라하고 있어서 이탈리아 와인을 공부하는 사람들은 한번쯤은 꼭 볼만한 책이고, 이원복 교수의 말대로 와인에 1에서 3 글래스까지 평점을 매깁니다. 만화에서는 1 글래스를 하급이라고 말하고 있는데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이 책에 이름도 못 올리는 와인들이 정말 수두룩합니다. 그리고, 1 글래스만 받아도 좋은 와인으로 평가 받습니다. 그러니까 1 글래스 = 좋은 와인, 2 글래스 = 정말 좋은 와인, 3글래스 = 올해의 걸작, 이 정도로 생각해야 합니다. 가야의 스페르스가 2 글래스 받았다고 '보통 와인'이라고 부르면 감베로 로소로서는 굉장히 섭섭한 얘기가 되는 겁니다. 다시 말해서, 이 연감에 이름이 오르기만 해도 이미 좋은 평가를 받은 와인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겁니다. 하여간에 잡지 이름이 엉뚱하게 와인 평론가로 둔갑하고 그나마 이름마저도 틀린, 오류 치고는 좀 심한 오류입니다. (참고로 감베로 로소는 우리 말로 '붉은 새우'란 뜻입니다)
2. 129 페이지 '산죠베제'
이 내용을 보면 북부 이탈리아에서 산죠베세(피콜로)를 재배하고 토스카나에서는 산죠베세 그로소를 재배한다고되어 있는데 이것 역시도 잘못된 내용입니다. 산죠베세는 토스카나 전역에서 두루 재배하는 품종이고, 산죠베세 그로소는 산죠베세를 개량해서 알을 크게 만든, 우리 식으로 말하자면 '산죠베세 거봉'인 셈인데, 토스카나 지역 가운데에서 남부에 있는 몬탈치노나 몬테풀치아노와 같은 지역에서 주로 재배하는 품종입니다. 산죠베세 그로소는 지역에 따라서 '브루넬로'라고도 부르고 '푸르뇰로 젠틸레'라고도 부르기도 합니다. ('푸르뇰로 젠틸레'는 몬테풀치아노 쪽 변종이란 얘기도 있습니다) 이 포도로 만드는 브루넬로 디 몬탈치노는 정말 유명하죠. 아무튼 만화의 내용을 보면 마치 산죠베세는 토스카나가 아닌, (토스카나는 이탈리아 중서부에 있습니다) 북부의 피에몬테나 트렌티노처럼 생각되기 쉽습니다.
3. 20페이지 '알코올 음료의 종류'
이건 자잘한 겁니다만, 어쨌든 오류니까 적어 둡니다. 시드르(cidre)가 사과로 만드는 술은 맞습니다만, 사과로 만든 밑술을 증류해서 만드는 술은 시드르라고 하지 않고 칼바도스(calvados)라고 합니다. 프랑스 사람들이 즐겨 마시는 브랜디 가운데 하나죠. 레마르크의 대표 작품인 <개선문>이나 메그레 경감이 나오는 시므농의 추리소설 시리즈 같은 프랑스의 문학작품에서도 종종 칼바도스 얘기가 나옵니다. 그럼 시드르는 뭐냐, 증류하지 않은 과실주입니다. 그리고 보통은 기포가 있는 발포성 과실주입니다. 저도 집에서 시드르(영어로는 '사이더')를 담아본 적이 있었는데, 차게 해서 마시면 스파클링 와인과 꽤 비슷한 맛이 납니다. 아무튼 다시 말하자면 사과로 담은 과실주는 시드르, 이 시드르를 증류한 술이 칼바도스가 되는 겁니다.
4. 101페이지 '미국 와인의 약진'
이건 그냥 사족 식으로단 겁니다. 큰 문제는 안 되는 부분입니다. 이 장면을 보면 1973년 파리에서 있었던 프랑스-미국 와인 시음 대결에서 미국 와인이 샤또 페트뤼스나 로마네 꽁띠를 이긴 것처럼 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당시 시음회에 나온 프랑스 레드 와인은 보르도의 메독 계열 와인들, 그리고 그라브의 오브리옹이었고, 페트뤼스나 로마네 꽁띠는 나오지 않았습니다. 이 점은 책 말미 '파리의 심판' 부분에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건 뭐 만화적으로 과장한 표현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로마네 꽁띠나 샤또 페트뤼스는, 같은 프랑스 와인이라고는 해도 메독 계열 와인과는 너무 다른 종류기 때문에 문제가 있습니다.
아니 뭘 그렇게 시시콜콜하게 딴지냐, 이렇게 안 좋게 생각하실 분도 있으시겠지만, 저는 몇 군데 잘못된 곳이 있으니까 이 책이 쓰레기다, 이런 식으로 깎아내릴 생각은 추호도 없습니다. 다만, 주로 초보자들이 보는 책에서 오류가 있다면 보는 사람들은 그런 잘못된 정보를 사실로 믿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어떤 책이든 자잘한 오류들이 있게 마련입니다. 잘못된 점들을 고침으로써 책이 더 좋아질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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