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몇 블로그 포스트 중에서 비스타가 과연 비난 받아 마땅한가? 하는 주제로 얘기를 하는 글을 봤습니다. 저도 한동안 비스타를 쓰다가 엎어버리고 XP로 돌아선 상황이라서 관심있게 글을 봤습니다만, 비스타가 그렇게 욕먹을 OS가 아니라는 글들을 본 소감은 '파워 유저의 관점'에 갇혀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점이었습니다. 저도 IT 업계에서 밥먹고 살 때는 몰랐습니다. 그런데 전혀 관계 없는 쪽에서 일을 하다 보니까 생각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이 컴맹이고, 컴퓨터 쓰는 사람들 중에 태반이 제어판에서 뭐 하나 만지는 것에도 겁을 집어먹고 꺼려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더군요. 요즘은 컴퓨터는 TV와 같은 전자제품입니다. 물론 파워 유저들은 TV 설명서 다 읽어 보고, 관련 제품 정보도 인터넷에서 찾아보고 하겠지만, 대부분은 그저 전원 꽂고 리모콘으로 채널 돌려서 TV 보는 게 다입니다. 그런 사람들 수준에서 봤을 때, 비스타가 욕먹을 OS가 아니라는 주장은, OS 그 자체에서 봤을 때는 몰라도 하나의 패키지 상품으로 봤을 때는 선뜻 동감이 가기는 어려울 듯합니다.
처음 나오는 운영체제는 다 그렇다. 패치와 서비스팩을 통해서 안정화된다
물론 그렇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XP도 처음 나왔을 때 그랬지요. 서비스팩 1이 나오면서 좀 나아졌고 2가 나온 이후로는 많이 안정화되었습니다. 하지만 지금 사람들이 선택할 수 있는 환경은 무엇인가요? 안정적이지 못한 비스타란 상품과 안정화된 XP란 상품입니다. 믿을 수 없는 상품인 비스타에 대한 비난은 당연한 겁니다. 앞으로 패치와 서비스팩을 통해서 안정화될 거니까 욕할 게 아니라는 말을 다른 상품에 적용해 봅시다. 자동차가 나왔는데 결함 투성이입니다. 그런데 회사에서 "여러 차례에 걸쳐서 리콜해서 수리 몇 번 받고 나면 안정화될 거니까 비난하지 마라"고 한다면 오냐 할 사람이 있을까요? 물론 소프트웨어에는 어쩔수 없이 버그가 있게 마련이고, 그 버그는 시간이 지나면 줄어든다는 거야 파워 유저들에게는 상식이겠죠. 하지만 돈 내고 상품을 산 보통 사람들한테도 그런 논리가 먹힐 거라고 생각한다면 엄청난 착각입니다. 돈을 내고 상품을 산 사람들은 결함 없는 상품을 원하고, 그 상품에 결함이 있어서 사용에 문제가 있다면 욕하는 게 당연합니다. 지금 비스타와 비교하는 XP는 문제 많던 예전의 XP가 아니며, 사람들은 예전 문제 많던 XP와 비스타를 비교해야 할 이유가 없습니다. 지금 선택할 수 있는 것 가운데서 비교하면 되는 겁니다.
어차피 ActiveX 문제는 MS가 사용하지 말라고 권장하는 것이다
ActiveX는 일반 사용자들이 원한 게 아닙니다. 관련 업계에서 날로먹기 마인드로 열나게 퍼뜨린 게 ActiveX입니다. 또한 불법이라던가, MS에서 하지 말라고 한 걸 억지로 한 것도 아닙니다. 그런데, 이제 와서 MS가 하지 말라고 했다고 "MS에서 ActiveX 쓰지 말라고 했거든?"이라고 하는 게 과연 보통 사용자들에게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문제는 되던 게 안 돼서 인터넷 뱅킹도 못 쓰고 홈쇼핑도 안 된다는 겁니다. 물론 개발자나 파워 유저의 관점에서 본다면 MS에서 ActiveX를 비추하고 비스타에서 ActiveX 사용을 까다롭게 만든 것은 환영할 일입니다. 하지만 일반 사용자들에게는 어떨까요? 환영할 일일까요? 일반 사용자들에게는 "내가 전에는 잘 쓰던게 왜 지금은 안 되느냐"가 문제입니다.
또한, MS가 브라우저 시장에서 IE 지배력을 높이기 위해서 ActiveX라는 애물단지를 만들어 놓고 퍼뜨리고 방관해 놓고서는 이제 와서는 쓰지 말라고 외치는 MS의 뻔뻔함이 괘씸하기도 한 겁니다. 과연 IE가 지배력이 지금처럼 높은 상황이 아니었다면, IE에서만 돌아가는 ActiveX라는 무기를 버렸을까요? 자기들이 이런 비스타를 한국에 팔아먹고 싶었다면, 자기들이 밀었던 ActiveX로 보안 시스템을 만들어 놓았던 은행이나 홈쇼핑에 돈이라도 대서 출시 전에 대책을 만들 수 있도록 하던가, 자기들이 이를 대체할 수 있는 공인 인증서 인식 방법을 만들던가, 했어야지 자기들은 입 싹 닦고 "누가 ActiveX로 만들랬니?" 하는 식으로 무책임하게 노는 MS의 정책은, ActiveX로 떡칠을 한 관련 업계의 마인드와는 별도로 비난 받아 마땅합니다. 그럼 왜 비스타를 욕하냐고요? MS가 문제인데? 비스타 누가 만들었나요? MS가 만든 거 아닙니까? 번들로 비스타가 깔려 나와서 울며 겨자먹기로 쓰는 사람들도 많은데, 그 사람들이 뭘 욕하겠습니까? 비스타를 욕할 수밖에요. 그럼, "왜 XP에서는 ActiveX를 지원해서 이제는 비스타에서 못 쓰게 된 거야?" 라고 XP를 욕하겠습니까?
UAC 활성화시키고 쓰는 사람들 있나?
네, 많습니다. 비활성화시킬줄 몰라서요. 보통 사용자들은 시스템 최적화니 이런 거 거의 할 줄 모르고 그냥 주어진대로 씁니다. OS란 파워 유저 전용이 아니고, 파워 유저는 쓰기 편하고 보통 사람들은 답답하게 쓰도록 만들어지는 소프트웨어가 아닙니다. OS를 쓰는 사람들 중에는 제어판 한 번 제대로 이용해본 일이 없는 사람들이 태반입니다. OS 쓰는 사람들의 절반 이상은 그냠 컴맹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그래서 뭐 하나 만지는 것에 대해서도 겁을 냅니다. 혹시나 뭐 하나 실수했다가는 잘못 될까봐 말입니다. 예전에 서울시 버스노선이 개편된 직후 혼란이 가중될 때, 당시 이명박 서울 시장이 반박이랍시고 이런 말을 했죠. "젊은 사람들은 인터넷도 찾아보고 하면서 잘만 타는데 왜들 그러냐" 이 말은 사람들에게 더 큰 분노만 샀습니다. 자동차를 샀는데 액셀을 밟아도 속력이 안 나고 기름만 잔뜩 먹습니다. 나만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그럽니다. 그런데 누가 그럽니다. "그건 네가 몰라서 그래. 나는 최적화 작업 해서 성능 좋거든." 그럼 자기 탓을 하겠습니까? 아니면 최적화를 안 하면 느려터지게 자동차를 만들어 놓은 만든 회사를 욕하겠습니까?
'비스타가 느리다'는 주장에 대해서 검색 방법 변경을 통해서 해결할 수 있다는 말 역시도 마찬가지인 겁니다. 왜 MS가 그 기능을 켜 놨겠습니까? 그게 비스타의 강점이고, 비스타를 써야 할 이유로 내세웠기 때문이 아닐까요? 그 기능을 이용하는 댓가로 느려터진 비스타를 써야 한다면 그건 제품을 잘못 만든 겁니다. 차라리 디폴트로 꺼놓고 파워 유저들은 켜서 써라, 그 편이 제대로 된 거 아닌가요? 그래 놓고 '그 기능 죽이면 돼', 이렇게 말하는 건 무책임한 겁니다. 더 중요한 건, 검색 기능 우리나라에서 별로 쓰는 사람 없습니다. 사실 파일이 잔뜩 있고 많은 작업을 하는 파워 유저들이라면 몰라도,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별로 검색 기능을 쓸 일이 없습니다. 물론 알고 있으면 더 편리하겠죠. 하지만, XP에는 검색 기능이건 구글 데스크탑의 검색 기능이건, 쓰는 사람 별로 없습니다. 결국 파워 유저들의 편리함을 위해서 OS를 쓰는 사람들 가운데 태반인 컴맹들은 느려터지게 쓰라는 건데, 그걸 고개 끄덕이고 "우리가 멍청한 탓이지"라고 누가 그러겠습니까? 차라리 설치할 때, 고사양에서 새 기능을 적극적으로 쓸지, 아니면 낮은 사양에서도 비스타를 원활하게 쓸 수 있도록 새 기능은 제어판을 통해서 켜서 쓸지를 선택하기라도 했으면 나았겠죠.
대부분 사람들에게 비스타란 존재는 돈 주고 사는 '상품'입니다. 그것도 누구나 쓸 수 있고, 컴맹이던 파워 유저던 컴퓨터를 쓰려면 반드시 사야 하는 필수품입니다. 그 상품을 사서 내가 기대했던 결과를 얻지 못하고 불편만 겪는다면 그 상품을 비난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이고 정당한 것입니다. 거기에 파워 유저의 관점에서 '네가 몰라서 그런 거라'고 말한다면 앞에서 얘기한 버스 노선 개편의 예처럼 온당하지 못한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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