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대통령 선거의 최대 승리자는 아마 당선된 이명박이겠지만 한 사람 더 있습니다. 바로 경제공화당 총재 허경영 씨겠죠. 예전 같으면 '도라이' 취급이나 받고 무관심에 파묻혔겠지만, BBK 공방 속에서 정책은 실종된 이번 선거에서, 역으로 가장 정책으로 부각되었던 후보라는 아이러니 속에서 적어도 인지도는 확실히 높인 듯합니다. 표로 이어지지는 못했습니다만...
아무튼 이런 허경영 후보의 모습을 보면서 딱 한 사람 생각난 분이 있었으니, 그 이름하여 플로렌스 포스터 젠킨스(1868-1944)입니다.
어떠십니까? 두 사람에게 뭔가 포스가 느껴지십니까? 허경영 씨는 한국의 정치계에 몸담고 있는 분이고, 지금은 세상을 떠난 젠킨스는 미국 성악계에서 활동하던 분입니다. IQ 430을 자랑하는 신이 내린 위대한 두뇌(?), 허경영 씨에 대해서는 이제는 많이들 알고 계실 테니까, 신이 내린 위대한 목소리(?) 젠킨스 얘기를 좀 해 볼까 합니다.
필라델피아에서 태어난 플로렌스 포스터는 어렸을 때 음악 교육을 받았고, 성악가를 지망했지만 부모는 더 이상 음악 교육을 시키지 않았습니다. 성장한 포스터는 의사인 프랭크 손톤 젠킨스와 결혼을 했는데, 얼마 못 가서 이혼을 하고 교사도 하고 피아노도 치면서 생계를 이었습니다. 그러다가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고, 많은 재산을 물려 받았습니다. 유산과 이혼 위자료를 통해서 많은 돈을 가지게 된 젠킨스는 콜로랄투라, 곧 가장 높은 음역을 가진 소프라노가 되고 싶었던, 어릴적부터 그토록 원했던 꿈을 이루기 위해서 뉴욕으로 갔습니다. 젠킨스는 뉴욕의 사교계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발휘하면서, 클래식계에도 꽤 힘을 쓰는 인물이 되었습니다. 특히 클래식 음악인들을 후원하는 클럽을 통해서 꽤 인맥을 쌓았는데, 그 가운데에는 유명한 엔리코 카루소도 있었다고 합니다.
하여간, 그 영향력과 재력을 등에 업고, 젠킨스는 드디어 꿈에도 그리던 성악계에 데뷔하게 됩니다. 그러자 언론들은 비아냥 섞인 비평을 써댔는데, 그 내용들은 "천상의 목소리", "인간의 한계를 뛰어 넘은 최고의 음악" 뭐 이런 식으로 반어법을 써서 비아냥거리는 투였습니다. 하지만 젠킨스는 이런 것들이 진짜로 자신을 찬양하는 얘긴 줄 알고 더더욱 자신감을 가지고 활발하게 활동을 펼쳤습니다. 게다가 이미 클래식계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가지게 되었기 때문에 주위에서도 살살 띄워주는 분위기였으니, 젠킨스의 착각은 점점 심해졌죠. 젠킨스는 당대에 가장 뛰어났던 소프라노 가수였던 프리다 헴펠이나 루시아 테트라치니와 자신을 비교하면서, 그들의 공연을 보고는 "프로다운 질투심" 때문에 그들을 우습게 여겼답니다. 그런데, 이렇게 어처구니 없으면서도 뻔뻔한 젠킨스의 활동에 점점 사람들이 중독되기 시작하면서 팬들이 하나 둘 늘고, 점점 인기를 얻게 되는 희한한 상황이 된 겁니다. 죽기 얼마 전에는 아무나 설 수 없다는 카네기 홀에도 서게 됐는데 6주 전에 표가 매진될 정도로 엄청난 인기였다고 합니다. 당시 얘기를 들어보면 야구 메이저 리그 월드 시리즈보다도 이 리사이틀 표 구하기가 더 어려웠다고 하니 정말 대단한 인기였나봅니다.
젠킨스는 비록 음악 실력은 꽝이었지만, 다른 방면에서는 꽤 출중한 재능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이를테면 스스로 디자인한 드레스에 천사 날개 장식을 등에 달고, 무대에도 꽤 공을 들여서 커다란 조개껍질이 짠! 하고 열리면서 그 안에서 등장하는 젠킨스의 모습은 꽤나 괜찮은 볼거리였나봅니다. 그리고 표를 파는 방식도 직접 자신이 묵고 있는 숙소로 표를 사고자 하는 사람들은 오게 해서 대화를 나누면서 직접 팔았다고 하니, 꽤나 독특한 '직접 판매' 방식 역시도 화제가 되었습니다. 한가지 재미있는 일은 1943년에 타고 가던 택시가 사고를 일으켰는데, 그 사고 이후로 잘 안 올라가던 F음이 잘 나오더라는 겁니다. 그래서 사고를 낸 택시 기사를 고소한 게 아니라, 오히려 감사 표시로 값비싼 시가 한 상자를 선물했다고 하네요.
비록 무대에서는 활발한 활동을 한 젠킨스였지만, 레코딩에 대해서는 꽤 엄격해서 남겨진 녹음은 많지 않습니다. 10년 쯤 전에 RCA에서 이 귀중한(?) 녹음들을 모아서 <The Glory(???) of the Human Voice>란 타이틀로 앨범을 냈고, 우리나라에서도 라이센스로도 나왔습니다. 특히 첫 트랙인 모짜르트의 <마술피리> 중 <밤의 여왕의 아리아>는 정말로 전율할 정도로 짜릿한(?), 젠킨스의 진면목을 보여 줍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조수미 씨의 버전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만, 워낙에 초고음을 자랑하는 곡이라서 제대로 부른 소프라노가 손에 꼽을 정도라는 이 악마같은 난이도의 노래를 우리의 젠킨스 씨는 그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개성(?)으로 소화합니다.
하여간, 서로 다른 시대, 다른 나라, 다른 영역에서 산 두 사람이지만, 둘 사이에는 꽤 공통점이 많다는 점을 발견할 수 있는데, 먼저 거의 인간의 수준을 뛰어 넘은 '자뻑'이라고 볼 수 있을 겁니다.
- 허경영 : 아이큐 430에 박근혜 씨와 혼담이 오간 사이
- 젠킨스 : 당대의 성악가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소프라노
하지만 무엇보다도 두 사람의 공통점은 미친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뻔뻔한 자신감을 통해서 엄숙하고, 진지하고, 때로는 짜증나는 상황에서 웃음을 주었다는 점이겠죠. 정책 대결이 실종된 상황에서 BBK 공방만이 있었던 대선에서, 황당하기까지 한 정책을 들고 나와서 자랑스럽게 떠들던 허경영 씨나, 엄숙하고 진지한 분위기만이 있었던 클래식 음악계에서 황당한 엇박자(?)와 불안정한 음정을 들고 나와서 천사 날개를 달고 자랑스럽게 리사이틀을 펼쳤던 젠킨스나, 많은 조롱과 비아냥을 받기는 했어도, 또 한편으로는 많은 사람들에게 재미난 웃음을 주었던 점이 가장 큰 공통점이겠지요. 감동을 줄 수 없다면 웃기는 게 정말 어디입니까. 감동도 웃음도 없이 짜증만 주는 사람들이 세상에 널렸는데요.
아무튼, 허경영 씨는 줄기차게 박근혜 씨와 결혼할 거라고 주장했습니다만, 사실 정말 잘 어울리는 신부감은 플로렌스 포스터 젠킨스 씨가 아니었을까,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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