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씨의 '낙태' 문제에 관한 얘기가 계속 공방이 되고 있는 듯합니다. 이명박 씨 발언을 옹호하는 쪽 얘기는 주로 이거더군요.
"니가 장애 태아를 가진 부모라고 생각해 봐! 너는 낳을 수 있으면서 이명박 씨를 비판하나?"
자, 그런데 한 가지 뭔가 놓치고 있는 게 있습니다. '당사자'가 돼서 얘기하는 것과 '제3자'로서, 그것도 '일반론'을 얘기하는 건 차원이 다른 문제입니다.
조금 다른 예를 들어 볼까요? 태어난 지 한 달 된 아기가 있습니다. 그런데 열이 펄펄 끓고 병을 앓더니 눈도 안 보이고 귀도 들리지 않게 됐습니다. 부모가 고민하다가 이 아이가 살아 봐야 정말 힘들고 괴로울 거고, 자신들도 아이를 잘 키울 자신이 없어서 아이를 죽였습니다. 물론 이렇게 말할 수는 있습니다. "당신이 그 아이의 부모라고 생각해 봐. 잘 키울 자신 있어?" 하지만 이렇게 말하는 건 차원이 틀립니다. "태어난지 얼마 안 된 아이가 불구가 됐다면 죽일 수도 있지 않겠는가?" 무슨 말이냐면, 어떤 일어난 사건에 대해서 동정이나 공감, 이해를 하는 것하고, 일반론을 말하는 건 차원이 틀린 얘기란 겁니다. 일반론에 대한 비판을 하는데 거기다 대고 '당사자' 얘기를 들먹이는 건 대충 보기에는 그럴싸해 보이지만 핀트가 안 맞는 얘기란 겁니다.
자아... 어떤 분들은 그럴 겁니다. 이건 살인이고 이명박 씨 얘기는 낙태 아니냐고요. 근데, 이 문제를 이명박 씨의 눈으로 봅시다. 이명박 씨는 기본적으로 낙태 반대론자입니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이기 때문이죠. 기독교에서는 수정이 이루어지면 똑같은 생명으로 봅니다. 곧, 그때부터 존엄성을 가진다고 봅니다. 따라서, 이명박 씨 관점에서는 생후 1개월 된 아이를 죽이나 태아를 죽이나 똑같은 살인입니다. 이미 태아도 똑같은 존엄성을 획득하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은 낙태를 반대한다고 말하는 거고요. 만약에 이명박 씨가 태아의 존엄성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얘기는 달라졌을 겁니다. 미국에서도 공화당하고 민주당의 정책 가운데 자주 쟁점이 되곤 하는 게 낙태 문제입니다. 그렇다면 태아의 존엄성을 인정할 것이냐 하는 문제로 귀착되지만, 이 경우는 그렇지가 않습니다.
또 한 가지 예를 들어 보죠. 사고로 장애를 입어서 먹고 살 길이 막막해진 사람이 자살을 선택했을 때, 우리는 그 사람을 동정하고, 불쌍하게 여길 수도 있을 겁니다. "나도 그 상황이라면 자살했을 지도 모른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불구가 돼서 먹고 살기 힘들 상황이면 자살할 수도 있다"고 말하는 건 차원이 다른 얘기입니다. '일반론'이기 때문이죠. 일어난 일을 가지고 말하는 것 하고, 일반론을 말하는 건 구분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많은 불의에 대해서 눈감을 수밖에 없습니다. 말조차도 그렇게 안 하는 것보다는, 말이라도 그렇게 하는 게 훨씬 낫고 적어도 그나마 희망이라도 있는 겁니다.
더구나 이명박 씨는 정치가입니다. 적어도, 명목상으로라도 사회를 올바른 쪽으로 나아가게 해야 할 사람입니다. 그렇다면, 설령 현실은 그렇다고 해도 말은 그렇게 하면 곤란한 겁니다. 예를 들어서, 현실적으로 부동산 투기가 가장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이라고 해서, "아파트 사세요. 그게 대박 나는 방법입니다"라고 말하면 곤란하다는 겁니다. 아무튼 이번 문제는 정치가로서, 한 나라를 이끌겠다는 포부를 가진 분으로서는 상당히 문제가 될 만한 말이었다고 봅니다. 물론 시시콜콜한 것까지 물고 늘어진다고 할 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 분은 그냥 한 개인이 아닙니다. 나라를 이끄는 게 쉬운 일인가요? 말 한 마디, 행동 한 마디가 극히 중요하고 어떤 영향을 줄 지 모르는 일 아닌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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