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가 당신에게 알려주지 않는 50가지 비밀
신시아 샤피로 지음 / 공혜진 옮김
서돌, 2007



호랑이 담배피던 시절, 직장인들에게 가장 필요한 건, "어떻게 하면 빨리 승진할 수 있을까?"였습니다. 이제 직장인들에게 가장 필요한 건, "어떻게 하면 안 잘리고 살아남을 수 있을까?"입니다. 한마디로, 공격 축구에서 빗장 수비 축구가 된 겁니다. 그렇죠. 이제는 도전보다는 안전빵이 먼저입니다. 그런 현실을 아주 선명하게 보여주는 책도 있더군요. 바로 <회사가 당신에게 알려주지 않는 50가지 비밀>입니다. 왜 이 책이 베스트셀러가 됐을까? 한마디로 이제는 성공학에서 생존학으로 관심이 옮겨갔기 때문이라 할 수 있죠.

솔직히, 이 책의 내용은 코미디에 가깝습니다. 압축해서 말하자면 상사한테 잘 보여라 이거죠. 그럴싸한 말들로 포장했지만 흔히 하는 말로 '상사한테 간이라도 빼줘라' 이 얘깁니다. 왜? 결국 자기 목줄을 쥐고 있는 건 상사이고, 상사 눈 밖에 나면 결국은 살아남을 수 없다는 것이죠. 법도 제도도 상사 눈 밖에 난 직원을 구해주지는 않는다, 이런 얘기를 아주 살벌하게 보여주는 게 이 책입니다. 이 책은 앞쪽은 꽤 살벌하고 사람들한테 '아, 그렇구나'하는 섬뜩한 느낌을 주지만 뒤쪽에는 뭐, 아주아주 평범한 얘기들 뿐입니다. 책 분량을 맞추기 위해서 억지로 넣었다고나 할까요? 좀 그런 느낌이었습니다.

예전에, 어떤 일로 거대 포털 사이트 담당자를 만날 일이 있었습니다. 몇 차례 회의를 해 보니, 정말 답이 안 나오더군요. "뭐 이런 멍청한 사람이 이런 좋은 회사에 있는 거지?" 하지만 한발 물러서서 생각해 보니, 사실 그 정도 회사에서 가장 필요한 사람은 능력이 뛰어난 사람보다는, 조직이란 거대한 기계 장치에서 톱니 바퀴 하나로 말썽없이 잘 굴러가 주는 사람이 아닐까, 하는 거였습니다. 어쩌면 혼자만 잘난 사람들은 이런 조직에서는 정말 피곤한 존재일 지도 모르죠. 능력 있고 말 안 듣는 사람 한 명보다는 차라리 말 잘 듣는 사람 두 명을 합쳐서 그 사람 만한 능력을 만드는 게 더 속편할 수도 있겠다, 싶었습니다. 이 책에서 주장하는 것도, 결국 회사의 톱니바퀴 하나로서 충성을 다하고 열심히 맞물려서 돌아가라! 그렇지 않으면 회사는 당신을 빼내고 다른 톱니바퀴를 물릴 것이니라! 이런 얘기인 것이죠. 능력대로 대접 받는다는 자본주의 사회지만 알고 보면 회사 시스템은 봉건화되어 가고 있는 아이러니랄까요?

이제 이런 책이 먹혀드는 걸 보면 우리 사회도 점점 살벌해져 가는 것 같습니다. 뭐랄까요? 이제는 노동자들이 알아서 살아남아야 하는, 서로를 뜯어먹고 할퀴어 가면서 나는 살아남아서 '회장님의 방침'을 충실히 따라야 하는, 그런 시대가 되어 간다고 봐야겠죠. 물론, 미국에서는 회장님이 회사 조직을 동원해서 아들의 복수를 하는, 그런 방침 따위는 상상도 할 수 없겠죠.

이 책이 안고 있는 결정적인 문제는 여기에 있습니다. 이 책은 상사는 적어도 부하들을 위험에 빠뜨리지 않으며, 유능하게 잘 하진 않아도 못하진 않는다는 전제 조건을 깔고 갑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죠. 상사가 잘못된 결정으로 조직에 손해를 끼치거나 좋지 못한 행동, 심지어는 비리를 저지를 때도 있습니다. 이럴 때는 어떻게 해야 할지에 대한 얘기는 전혀 없습니다. 과연 상사 잘못 만난 죄로 같이 망해야 할까요? 이 책은 마치 살벌한 것 같지만 실제로는 상사와 회사는 항상 +100은 안 되도, +5 정도는 되는 결정을 할 것이라는 낙관론을 전제 조건으로 합니다. 하지만 마이너스 결정을 내리는 경우는 얼마든지 있죠. 이럴 때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왠지 우리는 외국에서 나쁜 것만 참 잘 배운다는 생각이 듭니다.

Posted by MP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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