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사구팽이란 말이 있습니다. 아마 많이 들으셨을 겁니다. '토끼 사냥이 끝나면 사냥개를 삶아 먹는다' 뭐 이런 소리죠. 이용해 먹을 만큼 실컷 이용해 먹고 쓸모 없다 싶으면 내팽개치는 걸 말하는 거 아니겠습니까? 근데 요즘 자뻑에 빠진 e스포츠에서 이런 대형 토사구팽이 일어났네요. 바로 MBC 게임 히어로의 박성준 웨이버 공시 사건입니다. 웨이버 공시란 한마디로, 구단에서 '나 너하고 계약할 생각 없으니까 갈테면 가라!' 하고 문 밖으로 쫓아내는 거죠 뭐. (근데 왜 e스포츠에서는 구단이란 말을 쓸까요? 공도 안 쓰면서. 그냥 팀이라고 하지) 전 박성준 팬은 아닙니다만(엠성준이든 삼성준이든)
박성준이란 인물이 누군가요? POS 시절부터 이 선수를 빼놓고 그 팀을 말할 수 있던가 말이죠. 지금이야 염보성이니 이재호니 김택용이니 하는 인물들이 있습니다만, POS 시절에는 거의 박성준 혼자서 팀을 먹여 살리다시피 하던 존재였습니다. 그러다가 박지호란 선수가 나오고 염보성이 나오면서 제대로 원투쓰리 펀치가 나온 거지요. POS가 MBC 게임에 인수되면서 헝그리 시대를 마감했을 때도 당시 대표 브랜드는 온게임넷 스타리그에서 처음으로 테란(이병민)을 잡고 저그에게 우승컵을 선사한 투신 박성준이었죠. 하지만 한마디로, 이젠 아쉬울 거 없다 이겁니다. 박성준은 전과 같은 절정의 성적을 내지 못하고 있고, 이제는 염보성이나 김택용이 더 잘 한다 이거겠죠. 더구나 김택용은 지난 번 MSL에서 마재윤을 3대 0으로 KO패 시켰으니. 상종가도 이런 상종가가 없죠.
그러나, 팀에서 '큰형님'의 존재라는 게 뭡니까? 축구에서 홍명보가 단지 수비 잘하는 홍명보였던가요? 대표팀 얘기를 들어 보면 홍명보는 단지 있는 것만으로도 마음을 놓이게 하는 존재였다고 합니다. 2002 월드컵 때, 아무리 앞에서 박지성이니 설기현이니까 휘젓고 다녀도, 그들의 마음 속에는 '우리 뒤에 큰형님이 있으니까' 하는 든든함이 있었지요. 지금은 공군으로 갔지만 SKT의 임요환은 또 어떤가요? 온게임넷 스타리그 2회 우승한 게 도대체 언제적 얘깁니까? 하지만 임요환이 입대하고 나서 SKT가 곧장 슬럼프에 빠져서 허우적댔던 거, 아마 기억들 하실 겁니다. 그 팀의 큰 형님은 성적을 떠나서 팀에서 존재하는 것만으로 큰 가치를 지니고 있습니다. 근데 요즘 성적 좀 안 나온다고 이제 MSL 한번 우승한 김택용보다 적은 연봉이라. 이건 한마디로 토사구팽이죠 뭐.
게다가 MBC는 작년 프로리그에서 우승이라는 대단한 업적을 이루었습니다. 그런데 이게 무슨 시추에이션인가요? 이윤열이 3회째 온게임넷 스타리그 우승하기 전에, 얼마나 긴 슬럼프를 겪었던가요? 우승자들 치고 슬럼프의 나락에 빠져들지 않은 사람이 거의 없습니다. 좋은 팀과 나쁜 팀은, 얼마나 그 선수의 가능성을 믿고 끈기 있게 기다리고 지원하는가 하는 데에서 드러나게 마련입니다. 물론 어떤 사람들은 그럴지도 모르죠. 성역 없는 능력 위주 평가가 선수들에게 경쟁심을 자극할 거라고요. 오, 노우노우. 스포츠에서 누구에게나 슬럼프는 찾아 옵니다. 그럴 때, 팀이 나를 믿어 주는 게 아니라 언제 날 자를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시달리면 슬럼프는 더욱 깊어지게 마련입니다. 늪이란 몸부림치면 칠 수록 더욱 더 빠져드는 법입니다. MBC 게임 히어로 최고 연봉에 대한 댓가로 김택용은 공군한테 2연패를 당하면서 1승을 헌납한 1등 공신이 되고 말았습니다. 게다가 그야말로 잊혀진 선수라고 볼 수 있었던 최인규에게 완패를 당했으니, 이건 솔직히 말하면 망신살이라고 봐도 될 정도죠. 자, 김택용이 슬럼프에 빠진다면 이제 그도 박성준과 같은 길을 걷게 될까요? 공교롭게도 지금 MBC 성적이 7위까지 내려앉았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분위기 좋을 리 없죠. 어려울 때 한솥밥 먹는 식구들끼리 똘똘 뭉쳤던 POS. 이제는 한솥밥 대신에 각자 외식 나가서 그 단결력이 깨진 겁니까?
하여간에, 비록 MBC에서는 토사구팽 당했지만, 박성준이란 저그 카드는 여전히 강력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다른 팀에서 스카웃 경쟁이 벌어지겠죠. 물론 우선 순위는 최하위팀부터지만요. 부디 다른 팀에서 보란 듯이 부활해서 제대로 복수해 주기를 바라마지 않습니다. 그동안 MBC에서 고생 많이 하고 대접도 제대로 못 받았으니, 이젠 대접 좀 제대로 받아야죠. 암요. 저그의 역사에 한 획을 그은 거물인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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