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에 <잘 살아보세>, <앞서가는 농어촌> 같은 농어촌 프로그램들이 있었습니다. 그곳에서는 언제나 성공을 이룬 농민들이 나와서 '나는 어떻게 성공했는가' 그 비결에 대해서 한참 자랑을 했더랬죠. 사실 그 프로그램들 뒤에 숨은 뜻은 이런 겁니다. "농촌 현실이 어렵다고? 이렇게 성공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다 너희들이 못나고 무능력하고 게을러서 그런 거야. 정부 정책 같은 거 탓하지 마."
인터넷에서도 종종 <잘 살아보세> 식 마인드가 나타납니다. 시스템에 대한 불합리, 열악한 노동조건, 빈민이나 장애인 같은 약자들에 대한 문제점을 얘기하면 댓글에 달리는 단골 메뉴가 있죠. 잘 사는 사람들 있다고, 나 무능하고 게을러서 그렇지 죽어라고 노력하면 잘 살 수 있다고 말이죠. 최근에 블로그에서 소프트웨어 개발자들이 놓인 열악한 현실에 대한 비판글들이 많이 나오고 있습니다. 그런데 댓글을 보다 보니까, 역시나 <잘 살아보세> 마인드를 가진 훌륭하신 분들이 있더군요. "니들이 게으르니까 그런 거지. 나처럼 열심히 일하면 잘 살 수 있다!" 이런 식으로 문제를 개인 책임으로 돌리는 댓글 말입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잘 살려면 그렇게 죽어라고 노력해야만 합니까?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나락으로 떨어져야만 하나요?
물론 많은 사람들은 성공을 원합니다. 더 많은 돈을 벌고 저 높은 꼭대기로 올라가고 싶어 하죠. 하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많습니다. 자기가 맡고 있는 일 충실히 하고, 부자는 안 돼도 어렵지 않게 살면서 처자식 키우면서 평범하게, 행복하게 사는 게 꿈인 소박한 사람들도 많습니다. 왜 그들을 '성공 아니면 쪽박'으로 내모는 겁니까? 중간은 없는 겁니까? 어차피 모든 사람들이 성공할 수도 없고, 모든 사람이 다 성공해서 CEO가 된다면 그것도 코미디 아닌가요? CEO만 있는 사회가 뭐가 제대로 되겠습니까?
자기가 있는 자리에서 충실하게 일하면 정당한 댓가와 대우를 받는 사회가 올바른 사회가 아닐까요? 성공하고 싶은 사람은 성공을 위해서 죽자 살자 뛰면 됩니다. 그렇지 않은 사람은 자기가 맡은 일을 잘 하면서, 그에 맞는 정당한 대우를 받으면서 평범하게 살아 나가면 됩니다. 사회 시스템에 대한 비판을 하고 지적을 하는 이유는 바로, 성공하지 못하면 실패밖에는 없다는 식으로 치닫는 사회를 막아 세우지 않으면 결국 사회 토대가 무너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사회 시스템에 대한 비판을 하면 꼭 유능하신 분들이 나타나서 "그건 다 니들이 무능하기 때문이야! 나처럼 해 봐요 요렇게~!" 하고 외치는 <잘 살아보세> 마인드를 가진 분들이 나타나게 마련입니다. 네, 잘났습니다. 유능하신 건 잘난 거죠. 누가 뭐랍니까? 하지만 무능한 사람도 자기가 한 일에 대한 정당한 댓가를 받고 살 권리가 있습니다. 아니, 유능하신 분들이 가끔 높으신 분들 버릇을 버려 놓기도 하죠. 유능한 분들은 자기 몸을 버려가면서까지 죽자살자 열심히 일하면서 회사에 몸을 던지니까요. 유능한 분들 덕분에 눈이 높아지신 경영진께서는 모두들 유능해지기를 강요하면서 무능한 인간들 탓을 합니다.
유능한 분들은 계속 유능하게 잘 사시기 바랍니다. 하지만, 자기가 유능하다고 남한테까지 유능하기를 강요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그러면 사회가 망가집니다. 대다수 '유능하지 못한 사람'들이 사회 구석구석에서 자기 일에 충실하기 때문에 사회가 굴러가는 겁니다. 그리고 이 사회는 그들에게 정당한 대우를 해 줘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유능하지 않아도 잘 살 수 있는 권리, 그게 필요한 겁니다. ('잘 산다'는 게 부자를 뜻하는 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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