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이 이야기합니다. "장르, 그런게 다 뭐야! 좋으면 그만이지!" 또 어떤 사람들이 이야기합니다. "비평가 나부랭이들은 썩 꺼지라고 그래!" 저쪽 구석에 있던 사람들도 말합니다. "테크닉? 그게 사람이냐? 기계지? 필(feel)이 중요하지!" 그럴싸해 보이는 이 말들, 엄숙주의와 엘리트주의를 타파하고 음악 본연을 즐기는 해탈의 경지에 이르른 듯한 이 말들. 하지만 제 대답은 이렇습니다. "×까세요."
우리가 장르 구분을 하지 않는다면 음악을 처음 듣는 사람들은 크게 낭패를 볼 것입니다. 생판 모르고 아방가르드나 프리 재즈를 집어 들었다면 어쩔 겁니까? 장르를 나누는 것은 네비게이션입니다. 길눈 어두운 사람들이 길 잘못 들어서 헤메지 않도록 하는 네비게이션이죠. 비평가 나부랭이들은 또 어떨까요? 예술가들에게 가장 큰 적이 비평가인 것은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비평가가 없다면 어떻게 될까요? 과연 예술가들은 마음껏 눈치 안 보고 뜻을 펼칠 수 있을까요? 그 반대죠. 온갖 쓰레기 음악들이 넘쳐나게 될 겁니다. 표절과 모방을 일삼고, 떨어지는 실력을 온갖 전자 기술과 편집으로 때우고, 오로지 얄팍하게 사람들 주머니만 털 궁리만 하면서, 온갖 광고에 으리으리한 뮤직비디오에, 섹시 컨셉에... 이런 포장으로 때우는 음악 같지도 않은 음악에 대해서 누가 한 마디 하겠습니까? 비평가가 없다면? 비평가가 없다면 결국 진지한 마음으로 음악을 추구하는 사람들은 말라 죽어 버릴 겁니다. 으리으리한 자본의 물량 공세 앞에서 대중들한테 한번 제대로 모습을 보여줄 기회도 갖지 못하고 찌그러져버릴 테니까요. 음악가를 죽이는 것도 비평가지만 살리는 것도 비평가입니다. 애증 관계죠.
그리고, 테크닉은 그저 기계적인 동작일 뿐일까요? 지금 내 마음 속이 필로 넘쳐난다고 생각해 보자고요. 하지만 그 필을 소화해 줄 테크닉이 없다면 필은 그냥 머리속에서 빙빙 돌다가 땡입니다. 필은 별로고 오로지 테크닉만 화려하다? 뭐 어떻습니까? 그대로 즐기면 되죠. 영화도 예술영화가 있는가 하면 블럭버스터 영화가 있습니다. 예술은 예술대로, 블럭버스터는 블럭버스터대로 즐기면 되죠. 테크닉은 필을 담는 그릇입니다. 음식이 아무리 맛있다고 해도 그릇이 꽝이면 식욕이 확 떨어집니다. 심지어 와인은 글래스하고 궁합이 맞아야 맛과 향이 제대로 나지요.
위에서 얘기했던 말들이야말로 알고 보면 가장 엘리트주의에 가득찬 잘난 척이다! 이게 제 주장입니다.
쓸데 없는 서설이 길었는데. 뭔 말을 하려고 하냐면, 국내 재즈 비평가들 사이에서 노라 존스가 재즈나 야니냐! 노라 존스를 재즈 잡지 커버 모델로 내세우는 게 과연 문제가 있냐 없냐! 뭐 이런 걸 가지고 논쟁이 좀 있는 것 같더라고요. 아까 말한 엘리트주의자들은 그럴 것 같습니다. 재즈라는 게 얼마나 폭이 넓고 모든 것을 수용하는 장르인데 노라 존스를 재즈 아티스트로 넣으면 뭐 어때! 표지 모델로 나오면 좀 어떻고! 역시 재즈 비평가들은 잘난 척에다가, 엘리트 주의에다가, 어쩌고 저쩌고...
그렇다면 그런 분들은 재즈 잡지를 볼 필요가 없겠죠? 왜냐고요? 이미 '재즈 잡지'라는 말 자체가 '장르'를 내세우고 있기 때문이니까요. 아무리 재즈가 폭이 넓고 진공청소기처럼 이것 저것 잘 빨아들인다고 해도 장르는 장르입니다. '장르'라는 것은 그 정의 속에 이미 '우리'와 '남'이라는 개념이 있는 거 아니던가요? 모든 게 다 재즈라면 '재즈'라는 단어 자체가 아무 의미도 없게 됩니다. '재즈'와 '재즈가 아닌 것'이 구분이 되어야만 재즈라는 단어가 존재할 가치가 있는 거죠.
아무튼, 노라 존스가 재즈가 아니다! 이렇게 결론을 내렸다면, 그 재즈 잡지는 노라 존스를 표지 모델로 내세우는 일은 하지 않는 게 옳습니다. 물론, 노라 존스가 그래도 가지고 있는 재즈 음악의 흔적을 탐구해 본다던가, 노라 존스가 마음 먹고 제대로 재즈에 도전한 음반을 냈다던가! 이러면 얘기는 달라지겠죠. 하지만 이유도 없이 노라 존스를 표지로 내세운다면, 참으로 생뚱맞은 일이 될 수밖에 없을 겁니다. 뭐, 그 잡지 발행인이 "무슨 소리야? 노라 존스도 재즈 뮤지션으로 볼 수 있다고!" 이렇게 말했다면 차라리 논쟁은 안 일어났을 수도 있죠. 하지만 문제는 발행인이 노라 존스는 재즈 뮤지션이 아니라고 하면서 재즈 잡지 표지에다 내세웠다는 겁니다.
우리는 어느 쪽을 선택하던 충실할 필요가 있습니다. 장르주의를 거부한다면 확실하게 거부하던가, 장르주의를 선택했다면 거기에 충실하던가. 했으면 합니다. 같기道는 개콘에서 보는 걸로 충분하지 않나요? "이건 장르주의도 아니고 아닌 것도 아니여~" 하는 모습은 그다지 보고 싶지는 않네요.
ps : 솔직히 말하면 전 노라 존스도 재즈의 끝자락 쯤에는 넣어줬으면 싶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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