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국어 교과서에 실려 있던 춘향전 한 토막을 보면 남원에 나타난 암행어사 이몽룡이 월매네 집에 가서 거지행세를 하면서 밥을 달라고 그러죠. 이게 웬 황당 시추에이션? 하지만 한숨 푹푹 쉬면서 월매가 밥을 차려 오니 이몽룡이 이렇게 말합니다. "밥아! 너 본 지 정말 오래구나!"
이 놈의 와인을 척 하고 놓았을 때 제 심정이 그랬습니다. "브뤼노 클레르야! 너 본 지 정말 오래구나!" 한 때는 정말 잔고 생각 안 하고 브뤼노 클레르의 막산네를 줄창 마셔댈 때가 있었습니다. 철없을 때는 그저 싸구려 부르고뉴 쯤으로 알았던 막산네가 이렇게 우아한 발레리나 같을 수 있다니! 정말 컬처 쇼크를 불러 일으켰던 도맹 브뤼노 클레르입니다만 요즘은 도통 구경하기가 힘듭니다. 그런데 우연히 그것도 마트의 와인 샵에서 이 녀석을 발견했습니다. 그것도 사빈니-레-본 1등급이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꽤 착한 가격에 말이죠. 하긴 뭐, 브뤼노 클레르의 본거지인 막산네와는 멀리 떨어진(그래봐야 몇 십 킬로미터) 곳입니다만, 어디까지나 제 생각으로는 이 브뤼노 클레르는 피노 누아르가 가진 하늘하늘 우아한 캐릭터를 최대한 끌어내는 선수라는 생각입니다.
역시, 글라스에 와인을 따르고 향을 맡으니 강렬하게 힘이 넘치는 바이올렛과 사향이 마구마구 코를자극합니다. 힘이 넘치지만 지저분하지 않고 아주 깔끔한 느낌이 돋보입니다. 우아한 산미, 그리고 베리향은 과즙이 꽉꽉 뭉쳐져 있는 맛이 넘쳐 납니다. 입가로 과즙이 줄줄 흐르는 느낌이랄까...
6년 정도가 지난 와인이니 어느 정도 발전될 만큼은 발전된 데다가, 사실 코르크 상태가 썩 좋지 않아서 무척 불안했습니다만 상태는 정상입니다. 온도가 좀 높은 감이 있어서 약간 차게 했더니 기름진 땅 냄새도 좀 납니다. 그래도 적절한 온도로 조절해 보면 가죽향, 캔디, 그리고 농축된 베리향을 느낄 수 있습니다. 향에서나 맛에서나 농축미가 잘 살아 있습니다.
시간이 지나도 중심을 잘 잡으면서 베리향과 함께 부엽토향이 잘 살아 있습니다. 풀어지지 않고 농축미와 집중력을 잃지 않는 맛과 향, 어느 것 하나 딱히 뭐라 흠잡기가 어렵네요. 우아하면서 즐거움이 듬뿍 듬뿍 녹아들어간 와인입니다. 겉모습은 상당히 묵은 느낌이 많이 나지만 맛과 향에서는 여전히 팔팔하게 생기가 돕니다.
- bottled by: Domaine Bruno Clair
- grape variety: Pinot Noir
- appellation: Savigny-Les-Beaune AOC (1er Cru)
- alchol: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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