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포뮬러 1 여덟 번째 경기인 캐나다 그랑프리를 앞두고 예선에서는 중요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그동안 레드 불이 독식해 오던 폴 포지션 자리를 드디어, 다른 팀에서 나꿔챘습니다. 그 주인공은 바로 맥클라렌의 루이스 해밀튼이었습니다. 금요일 두 번째 연습 주행에서 페이스가 나빠서 당혹스러웠던 해밀튼은 토요일 세 번째 연습 주행에서 다시 1위를 차지하더니 예선에서 결국 마크 웨버를 누르고 폴 포지션을 차지했습니다. 해밀튼으로서는 캐나다 그랑프리에서 세 번째로 폴 포지션을 차지한 셈이며 올 시즌 레드 불을 제외하고 폴 포지션을 차지한 첫 드라이버가 되었습니다. 포뮬러 1에서 거둔 첫 승리도 2007년 이곳이었죠. 이래저래 해밀튼으로서는 뜻깊은 곳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배경에는 주목할 점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타이어 선택입니다. 올 시즌부터는 3차 예선에 참가한 차량들은 3차 예선에서 그리드 순위를 정하는 데 쓰인 랩 타임 기록(규정에는 이런 식으로 되어 있는데 쉽게 말해서 3차 예선 최고 기록입니다)을 낼 때 쓴 타이어를 장착하고 레이스를 시작해야 합니다. 지금까지는 대체로 두 가지 컴파운드 옵션 가운데 그립력이 좋은 소프트 옵션을 장착하고 3차 예선을 뛰는 게 보통이었습니다. 그래서 레이스 때에는 약 3분의 1정도 시점에서 피트스톱해서 하드 옵션으로 바꾸고 끝까지 달리는 원 스톱 작전이 거의 대세였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사정이 달라졌습니다. 폴 시터 루이스 해밀튼과 4위를 기록한 페라리의 페르난도 알론소는 보통 때처럼 소프트 옵션 타이어를 쓴 반면, 2, 3위를 차지한 레드 불의 마크 웨버와 세바스티안 베텔은 하드 옵션을 장착했습니다. 상위권에서 타이어 작전이 완전히 갈린 것입니다.
마른 날씨 조건인 경우, 드라이버들은 두 가지 옵션 타이어를 반드시 한 세트씩은 써야 합니다. 따라서 반드시 한 번은 타이어를 갈기 위해서 피트스톱을 해야 합니다. 따라서 내구성이 약한 소프트 옵션을 장착한 해밀튼과 알론소는 레이스 초반부에서 피트스톱을 가져가서 나머지 레이스를 모두 하드 타이어로 소화하겠다는 것을 뜻하고, 반대로 웨버와 베텔은 내구성이 좋은 하드 옵션 타이어로 최대한 오래 달린 다음에 중후반부에서 피트스톱, 소프트 옵션 타이어로 바꾸겠다는 것을 뜻합니다.
레드 불에서 예선에서 불이익을 감수하고 하드 타이어를 선택한 것은 다음과 같은 문제로 볼 수 있습니다. 캐나다 서킷은 차량에 굉장한 무리를 주는 곳입니다. 브레이크에게는 거의 지옥과 같은 곳이라 할 정도로 부담이 극심합니다. 300km/h를 넘나드는 직선 구간 끝에서 헤어핀과 시케인이 도사리고 있는 턴 10이나 턴 8, 턴 12, 완만한 곡선 끝에서 확 꺾이는 시케인이 있는 턴 6과 같은 곳이 도처에 도사리고 있는 질 빌리누브 서킷은 브레이크 테스트의 끝을 보여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이는 곧 급격한 감속으로 타이어에도 상당한 무리를 안겨 주는 곳이라는 것을 뜻합니다. 따라서 소프트 옵션으로 제공되는 수퍼 소프트 컴파운드로 뛸 수 있는 거리가 그다지 많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해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소프토 전체 레이스 거리 가운데 3분의 1이 아니라 거의 4분의 1에 가까운 이른 시점에 피트스톱을 가져갈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선두에 있는 해밀튼이라고 해도 피트스톱 이후에는 더 느린 중위권 차량의 뒤에 발이 묶여서 제 기량을 발휘하는 데 어려움을 겪을 것이라고 볼 수 있겠고, 그 사이에 레드 불이 격차를 별려서 후반부 피트스톱 이후에도 이득을 볼 것으로 예상해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다른 한편으로는, 캐나다 그랑프리에서는 모나코나 싱가포르와 같은 시가지 서킷을 제외하면 세이프티 카가 나올 확률이 가장 높은 서킷 가운데 하나입니다. 사실 질 빌리누브 서킷도 일부는 일반 도로를 활용하고 있고 그래서 안전 지대가 그리 넓지 않은 구간이 상당합니다. 메인 스트레치 바로 직전에 도사리고 있는 턴 13, 일명 'wall of champions'는 안전지대가 없이 트랙과 방호벽이 바짝 붙어 있습니다. 이곳을 빠르게 빠져나오려면 거의 방호벽에 아슬아슬 스치다시피 해야 하는데 삐끗 실수했다가는 그대로 방호벽에 부딪쳐서 리타이어하고 세이프티 카 나오기도 딱 좋은 곳입니다. 또한 워낙에 차량에게 부담이 심한 곳이라서 머신 트러블로 사고를 일으키는 경우도 종종 있지요. 그래서 세이프티 카 한두 번쯤은 예상을 하게 마련입니다. 만약에 모나코에서 알론소가 극단적으로 일찍 피트스톱을 해서 세이프티 카 덕분에 이익을 보았던 것처럼, 레이스 전반부에서 세이프티 카가 나오고, 소프트 옵션 타이어를 장착한 차량들이 세이프티 카가 나오기 전에 피트스톱을 한다면 그때문에 보는 손해를 세이프티 카가 다 줄여주기 때문에 대박급으로 이득을 챙길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해밀튼이나 알론소는 아예 일찌감치 피트스톱을 하고 레이스 전반부에서 세이프티 카 상황을 노려보는 것도 방법일 것입니다.
덧붙여서, 레이스 초반에는 트랙 상태가 그립이 적을 것이기 때문에 소프트 옵션이 격차를 생각보다 많이 벌릴 수도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기상예보를 보 비는 오지 않을 것 같습니다만 최고 기온은 23도로 그다지 높지 않습니다. 과연 소프트 옵션으로 레이스를 시작하는 해밀튼과 알론소, 젠슨 버튼이 일찌감치 피트스톱에 들어갈지, 아니면 소프트 옵션에서 뽑아먹을 건 최대한 뽑아 먹고 보통 예상되는 시점에서 피트로 들어갈 것인지가 포인트가 될 것입니다.
어느 쪽이든 결국 관건은 타이어에 상당한 부담을 주는 이 서킷에서 하드 타이어로 달리게 될 긴 구간 동안 얼마나 타이어 관리를 잘 하면서 레이스를 운영할 지가 될 것입니다. 하드 옵션 타이어라고 해도 워낙에 부담이 심한 코스기 때문에 1 스톱 작전으로는 부족하고 2 스톱이 필요할 수도 있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또한 캐나다 역시 고속 구간이 많은 만큼 접전 상황이 되면 지난 번 터키에서처럼 레드 불의 자중지란에 빌미를 제공했던 연료 소모 문제가 불거질 수도 있습니다. 아무튼 완전히 갈려버린 맥클라렌-페라리와 레드 불의 타이어 작전은 이번 레이스를 그야말로 예측불허로 몰고 가고 있습니다. 시간도 새벽 한 시에 시작하고, 월드컵 때문에 더더욱 관심권에서 밀려나는 캐나다 그랑프리입니다만 무척이나 흥미진진한 장면이 많이 벌어지는 이 경기를 모터스포츠 팬이라면 절대 놓칠 수는 없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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