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스님의 유언이 공개되면서 다시 한 번, 출간된 모든 책을 절판시켜 주기를 바라는 스님의 뜻이 재확인됐습니다. 스님이 돌아가실 때 이미 알려진 대로 "그동안 풀어놓은 말빚을 다음 생에 가져가지 않으려 하니 부디 내 이름으로 출판한 모든 출판물을 더 이상 출간하지 말아달라"고 유언장에 밝히셨습니다. 이를 두고 여러 가지로 논란이 일고 있습니다. 새로 법정스님이 번역하고 서문을 쓴 책을 출간하려 했던 출판사에서는 난감하다는 반응이고, 또 일부에서는 많은 사람에게 감동과 위안을 주었던 말씀을 더 이상 책으로 내지 말라니, 너무하는 거 아니냐, 이기적이다, 이런 반응도 있습니다.

그런데 저는 법정스님이 남기신 유언은 결국 '나를 상품으로 팔지 말라'는 뜻을 담고 있는 것이라고 봅니다. 그리고 그러한 법정스님의 생각은 어쩌면 평생 무소유를 실천해 온 분이 돌아가시면서 할 수 있는 가장 현명한 실천이 아닌가 싶습니다.

체 게바라의 티셔츠는 젊은이들에게는 꽤 잘 팔리는 아이템 가운데 하나입니다. 요즘도 가끔은 체 게바라의 티셔츠를 입은 젊은이들의 모습을 볼 때가 있지요. 그런데 참 아이러니인 것은, 체 게바라는 중남미에서 자본주의를 타도하고 공산주의 혁명을 위해서 무장투쟁을 벌였던 대표 인물이라는 것입니다. 그는 결국 공산혁명을 위한 무장투쟁 도중 볼리비아에서 생포되었고 얼마 뒤에 사살당했습니다. 그 뒤에는 미국 CIA가 있었지요. 아무튼 반 자본주의 투쟁의 최전선에서 목숨을 걸고 싸웠던 체 게바라이건만, 죽은 뒤에는 거꾸로 잘 팔리는 상품이 되어서 자본에게 짭짤한 수입을 안겨주었습니다. 자본주의를 타도하고 노동자와 농민의 공산주의를 꿈꾸면서 무장투쟁을 벌였던 체 게바라의 진정한 정신은 어느덧 퇴색되고 많은 젊은이들에게는 그저 막연히 '낭만적인 엘리트 출신 혁명가' 쯤으로 멋있게 남아버리는 거죠.

살아 있을 때에는 자신을 상품화시키는 사람들에게 대해서 뭐라 항변이라도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죽은 사람은 말이 없지요. 장사꾼들이 마치 하이에나처럼 죽은 사람을 날카로운 이빨로 갈갈이 찢어서 마구 뜯어먹어도 죽은 이는 아무 저항을 할 수가 없습니다. 몇 년 전, 쿠바의 CIA 첩자였던 인물이 체 게바라의 머리카락을 경매애 내놓겠다고 해서 화제가 되었지요. 경매사 쪽에서는 무려 7백만 달러 정도를 예상했습니다. 체 게바라가 살아 있다면 억장이 무너질 일이겠지만 어쩌겠습니까. 죽은 사람은 아무 저항도 할 수 없는데 말이죠.

유명한 화가가 죽으면 그의 작품은 값이 쑥쑥 뛰어 오릅니다. 뮤지션이 죽으면 별의 별 유작앨범이 다 쏟아져 나옵니다. 심지어는 연습실에서 녹음했다가 맘에 안 들어서, 잘못 녹음되어서 버린 것들, 음향시설도 별로 좋지 못한 공연장에서 공연한 것을 누군가 휴대용 녹음기로 녹음해서 음질이 영 아니올시다인 것들이 '실황앨범'이란 타이틀을 달고 나옵니다. 과연 그 뮤지션이 살아있다면 그런 수준 이하의 습작이나 이른바 '공연 실황'을 사람들에게 들려주고 싶을까요? 정말이지, 고인을 욕보이는 수준의 쓰레기들이 고인의 이름을 팔아서 쏟아져 나오는 경우들도 있습니다. 어떤 앨범은 다른 공연에서 게스트로 한두 곡 같이 연주해 준 게 다인데, 정작 공연의 주인공이 아닌 죽은 뮤지션의 이름을 대문짝만하게 내걸고 나오기도 합니다. 그야말로 낚시 수준이죠.

책이라고 해서 다를 게 없습니다. 빌 게이츠가 뜨면 빌 게이츠의 이름을 단 책들이 우후죽순처럼 쏟아져 나옵니다. 반기문 씨가 UN 사무총장이 되니까 반기문 총장의 사진을 큼직하게 붙인 책들이 나오더군요. 얼핏 보면 마치 반 총장이 쓴 책 아니면 반 총장이 인터뷰라도 한 책처럼 착각하기 쉽지만 알고 보면 상관 없지요. 하물며 돌아가신 분들의 이름을 판 책들이야...

법정스님이 돌아가셨으니 또 어떤 장사꾼들이 법정스님의 이름을 팔아서 무슨 책을 낼 지 알 수가 없는 일입니다. 법정스님과 인연을 맺었던 사람들 중에 법정스님 이름 팔아서 장사 좀 해보자고 마음 먹는다면 '내가 본 법정스님'과 같은 식으로 얼마든지 타이틀 달아서 책을 낼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동안 법정스님이 했던 얘기들을 이리저리 묶어서 책을 낼 수도 있겠지요. 이런저런 사람들 에세이를 묶어서 어떻게 출판권을 입수한 법정스님의 짧은 산문 하나 끼워넣어서 표지에 큼직하게 법정스님 이름을 척 하고 박아서 책을 찍어낼 수도 있습니다. 장사꾼들 머리가 좀 좋아야 말이죠. 죽은 사람은 말이 없으니 법정스님의 이름을 팔아서 이런 저런 상품을 낼 꿍꿍이를 할 사람들은 정말로 경포대 해수욕장 모래알 만큼이나 많습니다.

법이란 것도 교묘하게 피해 나가자면 얼마든지 피할 방법들이 있고, 설령 법으로 걸린다고 해도 지루한 법정공방 속에서 시간 질질 끌다 보면 장사는 해먹을 대로 다 해먹을 것이고, 결국 몇 년이 지나서 소송에서 진다고 해도 그 사이에 벌어놓은 돈을 생각해 보면 배상금 물어준다고 해도 손해볼 건 없지요. 그러다 보면 법정 스님의 진정한 뜻은 장사꾼들 덕택에 서서히 퇴색해버리고 그저 '예쁘고 아름다운 말씀을 남기신 스님' 쯤으로 포장되어버릴 수도 있을 겁니다. 돈만 되는 뭐든지 먹어치우는 먹성 좋은 장사꾼들이 반자본주의의 투쟁가 체 게바라를 퇴색시키고 낭만 혁명가 체 게바라로 덕지덕지 분칠을 했듯이 말입니다. 살아 있으면 그런 장사꾼들의 수작에 뭐라 항변할 수 있겠지만 돌아가시고 나면 뭘 어쩌겠습니까. 시간이 가면 갈수록 정말 어떤 별별 상품들이 '법정스님'의 이름을 달고 나올지, 속된 말로 '며느리도 모를 일'입니다.

법정스님의 말씀은 그렇게 죽은 사람 팔아서 돈 벌 궁리에 사로잡혀 악다구니를 하는 속세의 장사꾼들에게 대못질을 한 셈입니다. '나를 상품으로 팔지 말라'고 일갈하신 셈이지요. 살아 있을 때에는 사람들에게 많은 말씀을 남기셨지만 돌아가시면서 다 거둬들이겠다는 그 분의 뜻은 아마도 거기에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물론 책을 내기로 준비까지 한 출판사와 같이 좀 억울할 곳도 있겠지만서도 결국 모두를 다 만족시키고 모두가 해피 투게더할 수는 없는 게 세상이니, 돌아가시고 나면 당신을 도대체 어떻게 뒤틀어서 팔아먹을 지 알 수 없는 장사꾼들에게서 자신의 모든 것을 거둬들이겠다는 뜻이리라 생각해 봅니다.

엄밀히 따져 보자면, 스님의 유언은 '내가 했던 말이나 내가 썼던 글을 어느 누구도 듣고 보지 못하도록 하라'는 뜻이라기보다는 '책'이라는 상품으로는 더 이상 만들지 말라는, 곧 내 이름 팔아서 장사하지 말라는 뜻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길상사나 맑고 향기롭게 쪽에서도 책 대신에 다른 방법으로라도 언제 어디서든 스님의 글을 읽을 수 있는 방법을 마련하겠다고 밝히고 있으니, 죽은 상품이 되어 장사꾼들의 악다구니 속에 내던져지기를 거부한 스님의 뜻을 이해하고 따르는 게 옳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것 역시 스님의 큰 가르침일 것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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