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서는 독립 운영되는 제대로 된 와인 샵이 그다지 많지 않은 편이지요. 주류백화점 하다가 와인이 뜨니까 본사에서 주는 대로 와인 받아서 진열해 놓다 보니 대충 보관 상태도 안 좋은 샵들이 많습니다. 그러다 보니 그나마, 하는 생각으로 백화점에 있는 와인 샵을 기웃거릴 때가 종종 있습니다. 그런데, 백화점이나 마트 와인 샵에서 사람 정말 짜증나게 만드는 진상 점원들이 가끔 있습니다. 와인 사고 싶은 마음을 확 잡치게 만드는 경우들도 있습니다. 아마 겪어 본 분들은 겪어 보셨겠지만...




와인을 둘러 보고 있으면, 점원이 쓱 와서 "찾으시는 와인 있어요?"라고 물어 봅니다. 고개를 가로저으면 알아서 고르겠다는 뜻이라는 거 알고 조용히 물러가는 점원들이 대부분입니다만 개중에는 계속 붙어 다니면서 한심한 소리를 늘어 놓는 점원들도 있습니다. 맛 한 번 보지 않은 게 뻔한 와인에 대해서 바디감이니 과일향이니 하면서 카탈로그에서 딸딸 외운 얘기를 옆에서 계속 읉어댑니다. 이런 소음 공해가 없습니다. 오히려 와인 사고 싶은 마음만 뚝 떨어지죠.

며칠 전에는 와인을 고르고 있는데 옆에 와서 이번에 선물 세트가 나왔는데 값이 싸게 나왔다 어쨌다 하기에, 부아가 확 올라서 "관심 없거든요?" 하고 쏘아붙여 버렸습니다. 말해 놓고 보니까 미안하더군요. 하지만 손님 태도 보고 알아서 골라 먹을 사람으로 보이면 제발 옆에서 카탈로그 보고 암기한 기계적인 소리는 안 해 줬으면 대단히 감사하겠습니다. 앞에 선물 세트 잔뜩 깔아 놓은 거 무시하고 안쪽에 있는 와인 들여다 보고 있는데 옆에 붙어서 선물 세트가 어쩌고 저쩌고 하면 짜증이 안 날까요? 그것도 처음에 "찾으시는 거 있어요?" 하기에 괜찮다고 했습니다. 처음 한두 번은 그냥 으레 그러려니 하고 신경 안 썼는데 계속 옆에 붙어서 그러니...

어떤 점원은 부르고뉴 와인을 보고 있으면 "부르고뉴 좋아하세요?", 보르도 보고 있으면 "보르도 좋아하세요?", 이탈리아 와인 보고 있으면 "이탈리아 좋아하세요?", 스파클링 보고 있으면 "스파클링 좋아하세요?" 하고 지역별로 종류별로 계속 따라다니면서 "○○ 좋아하세요?" 그러는데, 와~ 정말 유인촌 장관처럼 "내가 성질이 뻗쳐서", '당신이 알아서 뭐 할 건데!' 하고 확 내지르고 싶은 마음을 꾹 참았습니다.

내가 범죄형으로 생겼나요? 누가 술이라도 훔쳐 간답니까? 정말 하나마나한 소리 하면서 옆에서 졸졸 따라다니는 짓 좀 안 했으면 좋겠습니다. 왜 자꾸 다그치나요? 와인도 옷처럼 찬찬히 봐 가면서 골라야 하는 놈입니다. 지역이나 프로듀서도 좀 보고, 빈티지나 알콜도수도 보고, 상태도 좀 보고, 찬찬히 보고 생각도 하면서 여유 있게 고르는 게 또 와인 고르는 재미 아니겠습니까. 근데 옆에서 자꾸 찾으시는 거 있어요? 뭐 좋아하세요? 그러면 '이 사람 빨리 대충 집어 들고 가란 거야?'란 생각이 들어서 짜증이 확 밀려옵니다.

물론 뭔가 얘기해 주는 점원을 무조건 싫어하지는 않습니다. 어떤 샵의 점원은 알아서 얘기해 주기도 합니다. 하지만 첨부터 졸졸 따라다니면서 기계적인 멘트를 늘어놓지는 않았죠. 처음에는 그냥 제가 뭘 고르든 방목(?)해 놓다가 몇 차례 내가 그 샵을 들락거리고 이 사람이 주로 이런 걸 사 가는구나, 하고 감을 잡고 나서는 갈 때마다 세일 가격으로 파는 와인이나 새로 들어온 와인 한두 개를 얘기해 줍니다. 이런 점원이라면 제가 귀찮게 생각할 이유가 없죠. 물론 따라다니면서 하나마나한 소리를 하지도 않습니다. 그야말로 딱 할 말만 하고 맙니다. 물론 맘에 안 드는 말을 할 때도 있습니다만 그거야 일가친척도 아닌데 어떻게 내 마음 속을 속속들이 알겠습니까? 그런 분들하고는 친하게 지내기도 하고, 지난 번에 사간 와인이 어떻더라, 길게는 얘기 안하고 딱 한 마디 정도 해 줄 때도 있습니다.

물론 점원으로서는 나름대로 교육 받은 것도 있고, 손님이 왔으니 뭔가 도움을 줘야겠다는 생각도 들 겁니다. 그러니까 저도 속에서는 부글부글 끓어도 어지간하면 참는 편입니다. 나 괴롭히려고 작정하고 그런 건 아닐 테니까요. 보통은 그냥 대꾸 안하고 외면해 버리죠. 하지만 달달 외운 기계적인 멘트만 늘어놓으면서, 찬찬히 유유자적하게 한 병의 와인을 고르는 즐거움을 빼앗아가 버리는 몇몇 점원들은 오히려 손님 떨어져 나가게 만드는 원인이 된다는 사실, 샵에서는 기억해 주시기 바랍니다. "찾으시는 와인 있어요?" 하고 물었을 때 아무 반응이 없거나 고개를 가로 젓는 손님이 있다면, '아, 알아서 고르게 냅두자' 하고 조용히 물러나도록 점원들에게 잘 가르쳐 주시면 대단히 감사하겠습니다.
저작자 표시
Posted by MP4/13
◀ PREV : [1] : ... [84] : [85] : [86] : [87] : [88] : [89] : [90] : [91] : [92] : ... [1202] : NEXT ▶

BLOG main image
Drive with your sense. by MP4/13
Add to Technorati Favorites

카테고리

분류 전체보기 (1202)
광속질주 (205)
취생몽사 (160)
주지육림 (3)
독서삼매 (10)
음담패설 (28)
전광석화 (146)
우매상자 (66)
포장후면 (20)
악마사전 (6)
팔도유람 (20)
혹세무민 (508)
일상포착 (30)
Total : 3,916,406
Today : 83 Yesterday : 8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