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에 북한 로켓 발사를 놓고 신해철 씨가 쓴 이른바 '축하글'이 1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 난데없이 다시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검찰에서 신해철 씨를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소환 조사하겠다는 방침을 밝히면서 신해철 씨 글을 놓고 다시금 논쟁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한편에서는 글의 내용을 보면 실제로 신해철 씨가 북한을 이롭게 할 행동이나 발언을 줄곧 하지도 않았으며 글의 내용 역시도 실제로 북한을 이롭게 할 내용이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고, 처벌을 주장하는 쪽은 북한을 찬양했으니 당연히 처벌을 받아야 한다는 겁니다.
그런데 이 문제를 다룬 기사들이 거의 다 빼먹고 있는 부분이 있습니다. 바로 신해철 씨가 썼던 글의 마지막 구절입니다. 신해철 씨가 쓴 글의 전문을 살펴 보면,
조선인민민주주의공화국이 합당한 주권에 의거하여, 또한 적법한 국제 절차에 따라 로케트(굳이 icbm이라고 하진 않겠다)의 발사에 성공하였음을 민족의 일원으로서 경축한다. 핵의 보유는 제국주의의 침략에 대항하는 약소국의 가장 효율적이며 거의 유일한 방법임을 인지할 때 우리 배달족이 4300년 만에 외세에 대항하는 자주적 태세를 갖추었음을 또한 기뻐하며, 대한민국의 핵주권에 따른 핵보유와 장거리 미사일의 보유를 염원한다.
거의 모든 기사는 글 앞의 '축하'만을 싣고 있고 마지막 구절은 아예 얘기도 안 하고 있습니다. 그러데 사실 이 글을 봤을 때 처음에 든 생각은 '신해철 씨가 이렇게 극우적인 사고방식을 갖춘 사람이었나'였습니다. 어떤 '친북세력'도 "대한민국도 핵과 장거리 미사일을 보유해야 한다"는 말을 하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서 북한 핵 개발을 놓고서 민주노동당에서 탈당 러시가 벌어졌을 때 당시 민주노동당 주류의 논리는 북한의 핵개발을 미 제국주의에 맞서기 위한 자위적 행동으로 옹호했지만 그렇다고 우리나라도 핵무장을 해야 한다는 얘기는 단 한 번도 꺼낸 적이 없습니다(저도 당시 당 기관지를 보고 어이가 없어서 곧바로 탈당계를 냈습니다). 진정한 친북세력이라면 북한을 옹호하면서도 남한에 대해서는 반전 반핵을 주장해야 말이 됩니다.
하지만 신해철 씨 글의 마지막 이 구절은 오히려 박정희를 떠올리게 하는 문구입니다. 박정희는 약소국이 강대국 틈바구니 사이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은 핵무기 보유라는 생각을 가지고 핵무기 개발을 추진한 바가 있습니다. 핵무장을 주장하는 일본 극우파들을 봐도 북한 핵무기 개발과 미사일 발사가 일본의 핵무장에 좋은 핑계거리가 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한국에서 핵무장을 주장하는 사람들에게도 북한의 미사일 발사는 핵무기 개발을 위한 좋은 핑계거리가 될 수 있고 강대국들이 우리나라에게 핵무기와 미사일 개발을 제한하는 명분을 없앨 수 있습니다. 생각해 보면 한국도 핵무장의 핑계거리를 만들어 줄 '축하할 일'입니다.
신해철 씨의 글은 저 마지막 구절 때문에 단숨에 파시스트의 글로 반전됩니다(맥락으로 보면 당시 남북 양쪽의 상황을 반어법으로 비꼬는 내용으로 볼 수도 있겠죠). 앞에서도 말씀드렸지만 '이웃 북한도 핵개발을 하니 우리도 핵무장을 하자'는 일본 극우파의 논리가 그대로 이어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정말 중요한 뜻을 담고 있는 마지막 구절을 쏙 빼 놓은 채로 앞부분의 내용만을 가지고 싸움박질을 하니 참으로 이상한 노릇입니다. 신해철 씨를 고소한 이들은 도대체 저 마지막 구절을 뭐라고 생각할까요? 지금까지 어떤 '친북세력'도 한국의 핵무장을 옹호한 적이 없는데 말입니다. 아마도 저 대목에서 할 말이 없으니 일부러 저 구절을 누락시키고 왜곡시켜서 친북으로 몰아가는 게 아닐까요? '조선말은 끝까지 들어 봐야 안다'는 얘기가 새삼 생각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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