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경기는 용인 CJ 수퍼 레이스에 참여한 관계로 예선은 아예 못봤고, 레이스도 중반부부터야 볼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레이스 초반에 대해서 알고 있는 사실은 키미 라이코넨이 출발 때 루이스 해밀튼을 제쳤다는 것, 그리고 맥클라렌이 일찌감치 피트스탑을 했다는 것 뿐입니다. 항상 출발 때 죽을 쑤던 키미가 스타트 신공을 보여주었던 해밀튼을 제친 것은 어쩌면 '키미가 뭔가 달라졌다', 아니면 '키미가 제 모습을 찾았다'는 말로 표현할 수 있을, 계기가 된 사건이었습니다.
사실 페라리와 라이코넨으로써는 아주 중요한 경기였습니다. 양쪽 다 '첫끗발이 개끗발'이라는 오명을 뒤집어 쓰고 있는 판이라서, 이런 오명을 걷어 내기 위해서는 이번 경기에서 뭔가 해 줘야 했습니다. 그리고, 해 내기에는 가장 좋은 곳이 프랑스입니다. 프랑스에서는 페라리는 성적이 좋은 편이었고, 라이벌 맥클라렌은 항상 죽을 쑤어 왔던 곳입니다. 마니 쿠르에서 맥클라렌이 거둔 우승은 2000년에 데이빗 쿨타드가 거둔 것이 전부입니다. 이번 기회에 페라리와 라이코넨은 상황 역전에 대한 발판을 마련해야 했고, 그 기회를 놓치지 않았습니다. 지난 번 테스트에서 페라리는 "우리 차량이 랩 당 0.5초는 빨라졌다!"고 큰소리를 쳤는데, 확실한 건 차량이 많이 좋아졌다는 겁니다. 사실, 시즌 초에 움직이는 플로어가 FIA에게 금지당했을 때, 확실히 그 영향을 받았던 것으로 보이고, 페라리에서는 이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서 다시 설계한 플로어를 이번 그랑프리를 앞두고 적용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그에 비해서 맥클라렌은 또 프랑스에서 마가 끼었네요. 일단 그동안 아주 안정적이었던 맥클라렌 머신이, 금요일 루이스, 토요일 알론소가 말썽을 부렸고, 특히나 알론소는 브레이크 센서 고장으로 연습 주행을 거의 하지 못한 데 이어서, 예선 때는 기어박스 고장으로 Q3를 뛰지 못하는 재앙이 닥쳐 왔습니다.
맥클라렌은 작전에서도 실패입니다. 맥클라렌이 급유량이 적었던 것은 아마도 비를 예상했던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곧, 3 스탑까지를 염두에 두고, 만약에 비가 온다면, 특히나 레이스 도중에 비가 온다면 작전이 제대로 맞아 떨어지는 거죠. 그러나, 비는 오지 않았고, 루이스는 그냥 3 스탑으로, 알론소는 2 스탑으로 작전이 갈렸으나 모두 다 실패했습니다. 아마도 루이스는 트래픽을 피하는 문제로 그냥 3 스탑으로 간 것 같은데, 효과를 보지 못했죠. 그냥 출발 때 3위로 주저 앉았습니다. 알론소는 두번째 스틴트에서는 하이드펠트를 제치고, 상위권도 노려볼 수 있었습니다만, 일찍 가져간 두번째 스탑에서 하드 타이어에다가 너무 무거운 연료 적재량 때문에 처음에는 머신 컨트롤을 못할 정도더군요. 결국 피지켈라도 공략하지 못하고 7위에 만족해야 했습니다.
그에 비해서 페라리는 여유 있게 두 드라이버가 경쟁을 펼치면서 올 시즌 처음으로 1-2 피니시를 차지했습니다. 마사가 조금 운이 없었는데, 두번째 스탑에서 키미가 피트에 들어갔을 때 백마커 때문에 시간을 많이 까먹으며서 선두를 내 주었습니다. 물론 연료 급유를 마사보다 좀 더 많이 받으면서도 페이스를 잃지 않은 키미는 오래간만에, 몬테제모로가 기대했던 '리얼' 키미의 모습을 보여 주었습니다.
그리고 캐나다 GP에서 대형 사고를 겪은 뒤에 복귀한 로베르트 쿠비차. 보통 대형 사고를 치르고 난 드라이버들은 그 사고가 머릿 속에 남아서 과감한 드라이브를 하지 못하는 게 보통이지만, 쿠비차는 내가 언제 사고를 당했냐! 싶을 정도로 멋지게 4위를 차지했고, 시즌 전반부를 완전하게 죽을 쑤었던 혼다는 B 스펙 새시를 들고 나와서 젠슨 버튼이 첫 포인트를 기록했습니다. "우리가 이제는 BMW보다 빠르다!"라고 큰소리를 쳤던 르노는 뭐, 그냥 큰소리로 끝나고 말았습니다.
자... 이제 제 모습을 되찾은 페라리가, 아니면 본격적으로 맥클라렌과 치열한 경쟁의 신호탄을 쏘아 올리는 건지, 그 분수령은 바로 영국 그랑프리가 될 겁니다. 맥클라렌과 페라리의 네 드라이버에게, 이 경기는 정말로 후반부 기세를 가늠할 시금석이 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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