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28일에 한국에 출시된 아이폰 열풍이 사그라들 기세를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아이폰의 12월 첫 주 판매량이 43,200대로 단숨에 1위를 차지했고, SK텔레콤의 가입자 이탈 추세가 상당한 폭으로 늘어난 모습을 보면 '아이폰 쇼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입니다. 무엇보다도, 그동안 콧대 높은 독재자로 군림하면서 단말기의 제원까지도 멋대로 좌지우지했던 이동통신사가 거꾸로 단말기에 무릎을 꿇은 '굴욕'을 당했다는 점에서, 그동안 이동통신사의 횡포에 불만을 삭여 왔던 소비자들은 속으로 쾌재를 부르고 있는 상황이지요. 그러다 보니 생뚱맞은 애국-매국 논쟁까지 나오는 상황입니다. 그런데 요즘 아이폰을 둘러싸고 있는 모습을 보다 보니, 우리 역사 속에서 생각나는 사건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조선시대 고종 시절에 겪었던 굴욕, '강화도 조약(정식 이름은 '조일수호조약'이죠)'입니다. 일본이 운요호 사건을 빌미로 전쟁 위협을 하면서 결국 우리나라의 빗장을 열게 만들었던 그 때 상황과 어째 비슷한 점이 여럿 있습니다.




강화도 조약이 이루어지기 전, 서양에서는 우리나라를 계속 집적거려 왔습니다. 신미양요, 병인양요와 같은 소규모 전쟁이 벌어졌고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흥선대원군은 쇄국정책을 밀어 붙였습니다. 생각해 보면 우리나라의 휴대폰 시장도 나름대로 오랑캐폰(?)과 국산폰이 전쟁을 벌인 역사가 있습니다. 삼성이 애니콜 개발에 착수해서 성과를 내기 전에는 모토로라가 제일 잘 나갔죠. 그때 스타택,정말 인기였습니다. 물론 그때는 휴대폰을 쓰는 사람들은 소수였고 삐삐를 쓰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만... 어쨌거나 삼성이 애니콜로 성공을 거두고 이어서 LG도 휴대폰 시장에서 성과를 내면서 오랑캐폰은 슬슬 밀려났습니다. 특히나 디지털 이동통신에서 당시 주류라 할 수 있었던 TDMA 기반인 유럽의 GSM 방식과는 다른 CDMA를 채택한 것도 국산폰이 오랑캐로부터 주도권을 가져오는 데 꽤 도움이 됐습니다.

아무튼 국산폰이 주도권을 잡자 쇄국정책은 점점 더 심해졌습니다. 이동통신사는 거의 단말기의 제원을 좌지우지하면서 자신들의 이익을 최대한 뽑아먹을 수 있는 방법으로 하드웨어를 통제했고 국산폰은 여기에 적극 맞춰 나갔습니다. 하지만 어디 오랑캐들이 우리나라에만 딱 맞춘 걸 개발하는 게 채산성이 맞을까요. 여기에 위피와 한국식 변태(?) SMS와 같은 장벽들까지 둘러쳐지면서 오랑캐들은 격퇴되었습니다. 오랑캐폰들이 쪽을 못 쓰고 비실비실, 심지어는 세계 1위 회사인 노키아는 아예 사업을 접고 철수하기까지 하니 우리나라에서는 쾌재를 불렀습니다. "보라! 얼마나 우리나라 휴대폰이 위대하면 그 유명한 오랑캐들이 빌빌거리면서 퇴각하느냐 말이다!" 쇄국정책은 점점 강화되어 갑니다. 잠시 모토로라의 레이저가 인기를 끄는 병인양요 같은 난도 있었지만 결국 반짝 인기로 끝나고 말았죠. 이런 승전보에 더더욱 쇄국정책은 강화됩니다. 어쩌면 우리가 모르는 어딘가에 모바일 척화비가 세워져 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세계적으로 스마트폰이 점점 세력을 넓혀 나가는 와중에 우리나라 이동통신사들은 스마트폰 죽이기 정책을 적극 펼쳐 왔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스마트폰은 데이터와 컨텐츠의 흐름을 독점해서 막대한 폭리를 챙겨왔던 탐관오리 이동통신사들에게는 눈엣가시와 같은 존재였으니까요. 해외에서 어마어마한 반향을 일으켰던 아이폰은 이런 저런 장벽에 가로막혀서 한국 시장에 들어오지 못했섭니다. 휴대폰 제조사도, 이동통신사도 자신들의 유착구조에 '기스'를 낼 게 뻔했던 아이폰이 달갑지 않았습니다. 둘은 더욱 똘똘 뭉쳐서 한국의 백성들을 속여 오고 컨텐츠의 통로를 가로막고 막대한 통행세를 뜯어 왔습니다. MP3 하나 다운받았더니 데이터 통신료가 만 원이 넘게 나오더라... 는 얘기는 그리 오래 전 얘기가 아닙니다. 철 없는 아이들이 멋도 모르고 벨소리에 MP3 다운 받다가 수십, 심하게는 100만 원이 넘는 통신료를 얻어맞는 일도 비일비재했죠.

아무튼 꽁꽁 닫아 놓은 빗장 속에서 한국 휴대폰은 외국에서 잘 나갔으니 사람들은 우리 게 최고라고만 생각했지요. 아이폰의 열풍이 전 세계에 걸쳐 몰아칠 때에도 우리나라는 마치 오지마을처럼 조용했습니다. '아이폰 그까이꺼... 스펙으로 말하면 우리 삼성 옴니아가 더 낫다고' 하고 우습게 보는 사람들도 꽤나 많았습니다. 더 웃기는 건 외국으로는 윈도우 모바일은 물론 심비안과 안드로이드까지 다양한 스마트폰을 출시하면서도 한국에서는 이런 모델들을 거의 내놓지 않았던 삼성과 LG의 태도입니다. 스마트폰 시장이 형편없기도 했지만 이동통신사와 짝짜꿍이 맞아서 애초부터 키우고 싶지도 않았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이런 모바일 쇄국정책 속에서도 '이렇게 안이하게 가다가는 강제로 개항하게 될 거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았습니다. 그리고 결국, 빗장이 풀리고 말았습니다. 소비자를 상대로 마구 횡포를 부리던 이동통신사가 드디어 아이폰이 개항을 요구하면서 쏘아대는 대포에 견디지 못하고 백기투항하고 무릎을 꿇었습니다. 아이폰이 쳐들어와서 KT와 강화도 조약 수준의 굴욕 조약을 맺으니까 세계 최고라고 으스댔던 한국의 이동통신 시장은 거의 굴욕에 가까운 상황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 위대하신 삼성의 옴니아 2는 출시 며칠 만에 거의 반값으로 떨어져서 그 전에 사서 바가지를 쓴 꼴이 된 사람들의 항의가 빗발쳤습니다. 삼성에서는 아이폰에 대해 멜론이 안 되니, DivX가 안 되니... 하는 트집잡기식 광고를 뿌려대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난리에도 불구하고 옴니아 2의 판매량은 아이폰의 반 조금 넘는 수준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시간은 분명히 충분했습니다. 스마트폰 시장이 앞으로는 점점 대세가 되어갈 거라는 예측은 새삼스러운 얘기도 아닙니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태도는 '스마트폰 그까이꺼'였습니다. 워낙 초고속 인터넷이 잘 구축되어 있어서 모바일로 인터넷 할 일이 없고, 그냥 휴대폰도 풀 브라우징 되고, 스마트폰은 쓰기 어렵고 불편하고 비싸고... 를 비롯해서 온갖 구실을 붙여서 스마트폰을 헐뜯고 소비자들의 관심을 차단하려고 발버둥을 쳤죠. 스펙다운, 말도 안 되는 비싼 요금 체계, 형편없는 프로그램들로 개판 스마트폰을 찔끔찔끔 내놓으면서 마치 그게 스마트폰 자체가 후지기 때문이라고 억지를 부려 왔습니다. 그럴 시간에 아이폰의 열풍을 교훈 삼아서 스마트폰 시대를 준비해 오고 얼리 어댑터 성향이 강한 한국 소비자들이 스마트폰으로 넘어갈 수 있도록 적극 노력해 왔다면 아마도 상황은 우리에게 훨씬 유리했을 겁니다. 그런데 지금 상황은 아이폰이라는 전함 하나에 삼성, LG를 비롯한 위대하신 휴대폰 회사들은 물론 이동통신사들의 병력들이 안드로메다 관광당하는 상황입니다.

이런 상황에서도 언론에서는 휴대폰 회사나 이동통신사 애첩쯤 되는 건지 아이폰 트집잡기에만 여념이 없습니다. 사실 소비자들도 뻔히 알고 있는 일체형 배터리 문제를 비롯한 여러 가지 단점에 트집을 잡아서 아이폰 깎아내리기에 열을 올리고 있지요. 상대적으로 옴니아 2는 칭찬 일색 기사들입니다. 언론 기사들만 보면 옴니아 2 놔두고 아이폰 사는 사람들은 뇌가 텅 빈 사람들 같습니다. 물론 아이폰에 단점은 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아이폰을 사는 이유는 그런 단점을 알면서도 그런 단점을 극복할 미덕이 있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아이폰의 매력은 아이폰 그 자체에만 있는 게 아니라 지금까지 한 대의 휴대폰으로는 다 경험하지 못했던 온갖 기능들을 더해 주는 수많은 응용소프트웨어들이지요. 예를 들어서 한글 초성검색이 안 되는 문제를 공격한 기사가 있었는데, 앱스토어에는 국내 개발자가 만든 초성걱색 프로그램이 이미 있습니다. 스마트폰과 게임기의 공통점이라면 하드웨어 자체보다는 능력 있는 서드 파티 개발자가 얼마나 많은가가 더 중요하다는 점이야 말할 것도 없습니다. 애플은 그 지점을 정확히 노렸고, 앱스토어라는 잘 갖춰진 응용프로그램 시장을 구축하고 개발자들의 진입 장벽을 대폭 낮춰서 많은 개발자들이 혜택을 볼 수 있도록 지원했습니다. 하지만 이미 모바일 시장의 빗장은 열렸는데 아직도 언론에는 쇄국정책 시대의 마인드에서 벗어나지 못한 기사들이 넘쳐납니다.

우리는 스스로 스마트폰 시대의 문을 열지 못하고 결국 오랑캐에게 밀려서 강제로 문을 열어주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아직 기회는 있습니다. 분명 삼성과 LG는 능력 있는 회사들입니다. 그리고 아이폰의 대항마로 떠오르고 있는 안드로이드는 아이폰과는 달리 독점이 아니라 심지어는 윈도우 모바일 같은 로열티도 없는 운영체제입니다. 지금이라도 휴대폰 회사와 이동통신사들이 정신차리고 개방된 마인드로 변신한다면 아직 기회가 없는 건 아닙니다. 할 의지만 있다면 새로운 상황에 적응하는 데에는 특출한 능력이 있는 나라니까요. 하지만 여전히 쇄국정책 시대의 마인드에서 해롱거리면서 휴대폰 회사들은 케케묵은 스펙 타령이나 하고, 이동통신사들은 독점으로 누리는 횡포로 당장 돈푼 긁을 생각에 정신 팔려 있다면 결과는 뻔합니다. 내년에는 구글이라는 또다른 전투력 대단한 오랑캐가 넥서스 원을 들고 들이닥칠 기세입니다. 넥서스 원은 단말기를 살 때 이통통신사를 정하는 방식이 아니라 온라인에서 단말기만 구입한 뒤 원하는 이동통신사에 가입하는 형식으로 판매 방식 자체를 바꿀 태세입니다. 구글이 갖는 글로벌 브랜드 가치나 넥서스 원의 성공 여부에 따라서, 잘하면 다시 한번 이동통신사들이 강화도 조약을 넘어서는 굴욕 조약을 맺을 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그런 굴욕을 은근히 고소하게 바라보는 사람들이 많을 겁니다(저도 포함해서). 그런 일이 계속 되다 보면 한국 모바일 산업의 주도권이 외국으로 넘어가버리는 상황이 생기지 말라는 법, 절대 없습니다. 또다시 오랑캐들 앞에 머리 조아리는 굴욕을 겪지 않으려면 우리나라의 모바일 산업은 '아이폰 강화도 조약 사건'에서 배우고, 정신 차려서 깨어나야 합니다(근데 지금 하는 꼬라지들 보면 솔직히 별로 기대 안 됩니다). 역사는 이런 식으로 되풀이되는 걸까요...?


뱀발 : 구글 메인에 이 글이 떴네요... 이런 일도 있군요. 후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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