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 역사에 길이 남을 엽기적인 판결이 나왔습니다. 미디어법 처리를 둘러싼 권한쟁의 심판 판결에서 미디어법 처리 과정에서 일사부재의 원칙이 위반되었고 대리투표가 있었다는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법률을 무효로 해 달라는 청구는 기각했습니다. '술은 마셨지만 음주운전은 안 했다'는 그 누군가말처럼 '법은 어겼지만 법은 유효하다'는 엽기적인 결론이 나온 겁니다.
그런데 이번 판결이 정말로 무서운 것은 이 판결의 영향이 미디어법 한 번으로 끝나지 않을 거라는 점입니다. 다시 말해서 앞으로 국회에서 법이 통과되는 과정에서 원칙이 무시되고 법으로 정해진 절차를 어겨도 일단 어떻게든 통과되고 나면 유효하다는 선례를 만들어 준 셈입니다. 게다가 대리투표는 엄연한 부정선거입니다. 이제는 부정선거로 법이 통과되어도 일단 가결되고 나면 게임 끝이라는 헌법재판소의 면죄부까지 나왔으니, 앞으로 한나라당은 자신들이 원하는 바를 위하여 필요한 법을 밀어붙일 때 법 절차 같은 건 대충 무시하고 힘으로 밀어 붙여도 된다는 인증 마크를 받은 셈입니다.
선례란 건 무서운 것입니다. 앞으로 미디어법 날치기와 같은 사태가 또 일어나도 한나라당에서는 미디어법 처리에 대한 헌재 판결을 들어서 '자신들은 정당했다'고 주장할 것입니다. 협상 과정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한나라당은 '수 틀리면 우린 밀어 붙일 거다. 헌법재판소에서도 괜찮다고 했는데 니들이 어쩔 거냐'면서 양보를 거부할 확률이 높아졌습니다. 그리고 아주 안심하고 실행에 옮기게 될 것입니다. 일사부재의의 원칙은 이번 헌법재판소의 판결로 쓰레기통에 들어간 거나 마찬가지가 됐습니다. 원칙을 위반했는데도 위법하게 통과된 법이 유효하다면 원칙을 지키려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헌법재판소와 같은 기관이 있는 겁니다. 힘이 있고 수가 많다고 해서 법과 원칙을 무시하고 멋대로 한다면 좌절될 것이라는 점을 명확히 하는 게 헌법재판소가 존재하는 이유입니다. 행정도시 이전에는 법에 나와 있지도 않은 '관습헌법'이라는 허깨비까지 끌어들이더니, 이번에는 멀쩡히 있는 법과 원칙을 장례식장으로 보낸 꼴입니다.
10.28 재보선에서 한나라당이 패배함으로써 결국 이명박의 친서민 쇼도 결국에는 별 약발이 없다는 사실이 입증되었습니다. 40%를 넘고 50%를 넘었던 대통령 지지율도 결국은 한 때 쇼로 잠깐 반짝했던 신기루에 불과했다는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과연 이 상황에서 정부 여당은 어떤 선택을 할까요? 이번 선거 결과를 받아 들여서 국민들 앞에 겸허해 질까요? 아마도 현실은 반대일 것입니다. 결국 친서민 쇼도 별 효과가 없다는 사실이 밝혀지면 정부와 여당은 자신들이 이루려는 뜻을 관철시키기 위해서 더 난폭하게 자신들이 가진 권력을 휘두를 확률이 높습니다. 아무리 발에다가 흰 밀가루를 칠해도 안 믿어주는데 어떻게 하겠습니까? 그냥 이빨 드러내고 늑대의 본성을 드러내게 될 겁니다. 이제 헌법재판소가 늑대의 흉폭한 어금니에 날개를 달아 줬으니 코너에 몰려 가고 있는 여당의 횡포는 더욱 더 거세질 것입니다.
한나라당이 최소한의 양심 비스무리한 거라도 있다면 적어도 일사부재의를 위반하고 의원들의 권한을 침해한 책임을 지고 김형오 국회의장과 이윤성 부의장는 물러나는 게 마땅합니다. 하지만, 아마 그럴 양심 비스무리한 게 있다고 믿는 분들은 저를 포함해서 거의 없을 겁니다. 아무리 재보궐 선거에서 참패한들, '그깟 몇 지역 아무 의미 없다'는 식으로 무시하고 날카로운 발톱을 들이대면서 온 강바닥을 파헤치고 서민의 가슴을 물어뜯고 할퀴어 댈 정부와 여당에게 면죄부를 준 헌법재판소의 '법은 위반했지만 법은 유효하다'는 엽기 판결은 아마도 길이길이, 21세기 사법부의 수치스러운 역사로 남을 것입니다.
뱀발 : 이로써, 김상혁 씨는 헌법재판소로부터 사면 복권 판정을 받았습니다. 김상혁 씨의 공중파 방송 복귀를 적극 지지합니다! 와~
'혹세무민' 카테고리의 다른 글
| 헌법재판소가 야구 심판이라면? (9) | 2009/10/31 |
|---|---|
| 니가 가라, 아프가니스탄 (4) | 2009/10/31 |
| 술은 마셨지만 음주운전은 안 했다는 헌법재판소 (4) | 2009/10/29 |
| 박근혜, 그녀를 믿지 마세요 (6) | 2009/10/24 |
| 이승한 홈플러스 회장의 해괴한 마인드 (6) | 2009/10/17 |
| 오바마 노벨 평화상 수상, 정치적 속셈이 보인다 (0) | 2009/10/09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