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계형 F1 일본 그랑프리 관전기, 그 세 번째 얘기입니다. 두 번째 얘기를 보시려면 여기를 누르세요.
정말 일찍도 올립니다. 일본 그랑프리 끝난 지가 도대체 언젠데... 하지만 저도 먹고 살아야죠. 이 글 하나 쓰려면 몇 시간을 들여야 하니 쉽게 엄두가 나질 않는 게 현실입니다. 그러니 이해해 주시길 바랍니다. 그래도 기억은 아직도 생생하네요. 그만큼 여러 모로 제게 의미가 컸다는 증거겠죠.
아침 일곱 시까지 스즈카 서킷에 도착해야 하는 관계로 꼭두새벽 5시 45분에 숙소를 나섰습니다. 돌어올 때에는 너무 어두워서 계곡이 있었다는 것만 알았는데 이렇게 생겼군요. 숙소의 모습도 눈에 좀 더 잘 들어옵니다. 확실히 해가 일찍 뜨고 일찍 지는 듯합니다. 우리나라보다 아무래도 동쪽에 치우쳐 있다 보니...
스즈카 서킷은 혼다 겁니다. 그래서 스즈카 주위에 혼다의 공장이나 시설들이 많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그런 시설 가운데 하나가 스즈카 서킷이지요. 어쨌거나 서킷 근방에 큰 공장과 연구시설이 있습니다. 혼다가 F1에 참전하던 시절에 엔진을 여기서 개발했다는 얘기도 있던데...
스즈카 서킷 도착. 아직은 아침 일곱 시라서 내부 스태프들 말고는 사람은 별로 보이지 않습니다. 연습주행도 낮 11시에 시작되니까... 하지만 드문 드문 일반 관람객의 모습들도 보이기 시작합니다. 공식 스케줄 전에 여러 가지 프로모션 행사도 있긴 한데... 글쎄 아침 일곱 시는 그래도 아직 많이 이른 시간 아닌가...
어제 비도 오고 해서 아직은 하늘이 흐릿합니다. 구름 잔뜩 낀 하늘 속에 우뚝 솟아 있는 대관람차의 모습이 꽤나 멋져 보입니다. 저거 한 번 타 봤으면...
사람이 한산할 때 토요타 부스를 살짝 가 봤습니다. 차량의 주요 부분을 따로 떼어서 전시해 놨습니다. 콕핏에서 드라이버의 머리 주위를 감싸는 패드, 그리고 배기 매니폴드, 뒷쪽 날개가 보입니다. 모두 올해 스펙입니다.
아침부터 일찌감치 토요타 쪽 도우미들이 돌아다닙니다. 정확히 말하면 토요타가 아니라 토요타의 타이틀 스폰서인 파나소닉 쪽 도우미들입니다. 그랑프리 기간 동안 매일 발행되는 소식지를 나눠 주고 있는데, 저도 받긴 했지만 일본어라서...
브리지스톤 쪽에서도 깃발을 열심히 나눠 주고 있습니다. 저도 한 장 받았습니다. 아직은 쌀쌀하고 사람들도 한산하지만 슬슬 분위기가 달아올라가고 있습니다.
자... 이게 바로 문제의 캥거루TV입니다. 이번 일본 여행의 계기가 되었고, 이번 여행을 생계형 중노동 여행으로 만든 원인이 된 거죠. 그러자면 어떻게 일본에 가게 되었는지를 살짝 말씀드려야겠죠?
나중에 좀 더 자세히 설명드리겠지만 캥거루TV는 경기장 안에서 중계방송을 볼 수 있는 휴대용 TV입니다. 임대료를 내고 경기 기간 동안 기계를 빌린 다음에 반납하는 건데, 싱가포르와 일본에서 이에 대한 사업권을 가진 분이 우리 일행을 초청한 겁니다. 현장에서 어떤 과정으로 임대가 이루어지는 지를 체험해 보시라, 이런 차원인 거죠. 바로 이 '체험'이... 그야말로 <체험, 삶의 현장> 수준이었던 겁니다.
캥거루TV 시동 화면입니다. 아직은 뭐, 공식 스케줄까지는 한참 남았으니까 틀어 봐도 하는 건 없습니다. 하지만 스케줄 전후 한두 시간 동안은 지난 세션 하이라이트를 보여 줍니다.
여기가 캥거루TV 부스입니다. 기계 대여와 반납이 이곳에서 이루어지지요. 부스 안에 캥거루TV 본사 직원들의 모습이 보이네요. 이 사람들은 F1 시즌 내내 그랑프리 개최지를 쫓아다닙니다. 그리고 개최지마다 사업권을 가진 파트너가 현장에서 실무를 처리하고, 그런 식입니다.
아홉 반쯤 됐나요? 갑자기 바깥에 사람들이 몰려듭니다. 아직은 캥거루TV 부스가 한가할 때라서 어? 뭐지? 하고 밖으로 나가 봤습니다. 캥거루TV 부스 옆 브리지스톤 행사장에 사람들이 잔뜩 몰려들었습니다. 뭔가 인터뷰를 하고 있는 것 같은데... 누구지? 하고 자세히 보니.
헉. 쟝카를로 피시켈라였습니다. 그동안 TV로, 사진으로만 보던 F1 드라이버의 모습을 그것도 경기장에서 처음으로 본 셈이었지요. 이미 사람이 너무 많이 몰려 들어서 도저히 사진 찍기 좋은 자리가 나오지 않아서 결국 피시코는 먼 발치에서 옆 모습만 봤지만 정말로 일본 그랑프리에 왔구나, 라는 생각이 새삼 들었습니다.
이제 다시 캥거루TV 얘기를 해 볼까요? 사진에서 보시는 것과 같이 중계 방송을 볼 수 있는 휴대용 기기입니다. 이 TV는 경기장 안에서, 그리고 경기 기간 동안에만 유효합니다. 따라서 가지고 가 봐야 아무 소용 없다는... 하여간에, F1 팬들은 잘 아시겠지만 서킷의 크기는 적게는 3km에서 많게는 6km가 넘어갑니다. 따라서 자신이 앉아 있는 관중석에서 경기의 모든 것을 볼 수는 없습니다. 물론 관중석마다 대형 전광판을 통해서 중계를 볼 수 있지만 이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죠.
캥거루TV는 중계 화면을 볼 수 있는 것은 물론이고 현재 순위, 드라이버 별 시간 격차, 직전에 기록한 랩 타임과 섹터 기록까지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또한 차량 탑재 카메라를 통한 경기 중계도 볼 수 있는데 TV 중계와는 달리 차량 탑재 카메라 화면을 언제든지 볼 수도 있고, 여러 드라이버 중에서 좋아하는 드라이버의 카메라를 골라서 볼 수도 있습니다.
보시는 바와 같이 드라이버의 현재 기록이 섹터 타임별로도 확인됩니다.
레이스 관제실에서 나오는 메시지도 확인할 수 있는데, 보통 TV에서는 페널티라든가 조사 진행 중, 세이프티 카를 비롯한 중요 메시지만 나오지만 캥거루TV에서는 어디서 노란 깃발(추월 금지)이 나왔는지 어떤 차량이 어디서 스핀했는지를 비롯해서 좀더 세밀한 정보들이 나옵니다. 그 아래에는 기상 정보도 나옵니다.
각 드라이버에 대한 좀 더 자세한 현황도 파악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캥거루TV는 경기 중계를 볼 수 있는 주요 기능은 물론이고, 현재 진행되고 있는 경기에 대한 각종 세밀한 데이터들이 실시간으로 바로바로 전송됩니다. 따라서 관중석에 앉아서도 경기의 전체 상황을 충분히 파악할 수 있게 도와 주는 도구라고 볼 수 있습니다. 효용 가치가 무척 높죠. 문제는 너무 비싸다는 거... 일본 그랑프리 3일 동안 대여료가 12,000 엔이나 합니다. 우리 돈으로는 15만 원이 넘어가는 거액이죠. 게다가 보증금 3만 엔을 묻어 놔야 합니다. 물론 기계를 반납하면 돌려주지만 이 돈도 정말 장난이 아닌 액수입니다. 제가 이번에 여행 가면서 바꿔 간 돈이 달랑 3만 엔인데...
그래도 정말 많이들 빌려 갑니다. 스케줄이 다가올수록 부스 뒤 줄이 점점 길어지네요. 부스 안의 직원들은 일본인 알바생들입니다. 이제 정신 없이 바빠집니다. 3차 연습 주행이 오전 11시부터 있었지만 그냥 밖에서 소리만 들었습니다. 먼 발치에서 듣는 소리지만 TV에서 듣는 것과는 뭐 비교 자체가...
이젠 정말 사람들이 넘쳐납니다. 하늘도 화창하게 개었고, 분위기 제대로 납니다.
3차 연습 주행이 끝나니 낮 12시. 쏟아져 나온 사람들이 여기 저기서 점심을 먹는 풍경이 보입니다. 마땅히 자리가 있는 게 아니라서 앉을 만한 데에는 다 앉아서 점심을 먹는 모습이 보입니다. 계단은 말할 것도 없겠죠.
일단 제가 하게 될 일은 기계에 들어가는 배터리를 충전하는 일입니다. 이 기계가 사람 어깨 높이 정도끼지 옵니다. 저렇게 선반을 열면 배터리 수십 개를 충전할 수 있는 슬롯이 있는데, 이런 선반이 열 개가 넘습니다. 배터리 수백 개를 한꺼번에 충전할 수 있습니다. 그만큼 필요한 배터리가 많다는 얘기이자, 대여되는 기계가 장난 아니게 많다는 얘깁니다.
별 거 아닌 줄 알았는데 은근히 힘 많이 들어갑니다. 배터리 자체도 무거운 데다가 슬롯이 뻑뻑해서 배터리를 장착하고 빼는 데에도 힘이 좀 들어갑니다. 어우 손톱 아파... 방전된 배터리는 충전시키고, 수시로 선반을 열여서 다 충전된 배터리를 빼 내고 하다 보니 만만치 않은 일입니다.
자... 이쯤 되면... "야! 너 경기는 보고 온 거야?"라고 성질 낼 분도 있을 듯합니다. 그에 대한 해답은 다음 글에서 풀어들이도록 하죠. 너무 뜸 들이나?
네 번째 이야기로 이어집니다. 보시려면 이곳을 누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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