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뮬러 1을 본 지가 이제 11년이 됐지만, 솔직히 말해서 아직까지 한 번도 경기장에서 눈으로 직접 본 적은 없었습니다. 지금까지 얄팍한 지식으로 잘난 척 무지 했지만 그야말로 반쪽이었던 거죠. 그러던 와중에 알고 지내는 분이 일본 그랑프리에 초청 비스무리한 걸 받게 됐습니다. 완전 초청이면 비행기표부터 대 주겠지만 비행기표는 자체 조달하고 숙소하고 티켓은 제공해 주겠다... 뭐 이런 거였는데, 어쨌거나 정확한 초청의 실체(?)는 제대로 알지 못한 채, 난생 처음으로 F1을 TV가 아닌 생생한 현장에서 볼 수 있다는 그 하나만 믿고 따라나섰습니다. 그럼 지금부터 중노동과 감격이 오락가락했던 '생계형 F1 관전기'를 올려볼까 합니다. 아마 여러 편으로 잘라서 올려야 할 것 같습니다. 사실 F1은 물론이고 일본도 처음이라서 모든 게 마냥 신기했는데, 아마도 관전기 내용이 40년 만에 서울 처음 와 본 촌놈 같을 겁니다. 일본에 대해서 잘 아시는 분들은 마음껏 '이런 촌놈...' 하고 낄낄거리시면서 읽으시면 더 좋을 겁니다. 히히.




추석 연휴가 있어서인지 표 구하기가 어려워서 결국 금요일 오후 비행기로 출발하게 됐습니다. 그 바람은 금요일 연습주행은 애초부터 포기해야 했습니다. 당연한 얘기지만 이 때까지만 해도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 지 꿈도 못 꾸고 있습니다. 정말 오랜만에 타는 비행기, 기다려라 스즈카, 내가 간다! (놀고 있네...)




출발할 때는 날씨 참 맑았습니다. 일본으로 접근할 수록 흰 구름이 많아지긴 했지만 어쨌거나 푸른 하늘... 두 시간 남짓한 그리 길지 않은 비행시간입니다만. 어쨌거나 이미 마음은 비행기보다 훨씬 빠르게 스즈카 서킷에 착륙한 느낌입니다.




그리고 이 죽일 놈의 알콜중독... 대낮에... (생맥주도 좀 팔지... 퍽!)




그런데... 나고야로 접근할 수록 하늘이 점점 이상해집니다. 점점 파란 하늘이 사라지고 흰 구름 속을 날아가더니 결국은...




나고야로 접근하면서 하늘이 점점 망가지더니 급기야 비까지 쏟아지기 시작했습니다. 당연히 기류가 지저분해져서 비행기도 엄청 덜덜거리고... 잠재되어 있던 고소공포증 + 공황장애가 발동해서 불안불안했습니다만, 어쨌거나 착륙은 별 일 없었습니다. 비행기 많이 타 본 분들이야 심심하면 겪는 별 대단한 것도 아니지만 역시 촌놈에게는 괜히 오싹하다는.



큰 지도에서 鈴鹿ショッピングMAP 보기

자, 이제부터가 문제죠. 비행기가 도착한 중부국제공항에서 스즈카 서킷까지 가려면 먼저 공항에서 나고야까지 올라간 다음 다시 나고야에서 스즈카까지 내려가야 합니다. 구글 지도의 대중교통 안내를 보면 스즈카보다 한참 더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와야 합니다. 스즈카를 지나는 JR 라인이 평소에는 스즈카 서킷은 그냥 지나가버리기 때문에 스즈카역에서 내리면 서킷까지 꽤 멀리 걸어가야 하기 때문인 듯합니다. 하지만 F1이 열리는 기간에는 나고야에서 출발해서 스즈카를 통과하는 열차가 그 다음에 있는 간이역인 스즈카 서킷 역에 정차합니다. 따라서 일본 그랑프리 기간에는 그냥 나고야에서 JR 라인으로 가서 스즈카 방면 열차를 타면 됩니다.

이미 일본의 철도가 구석구석까지 거미줄까지 뻗쳐 있음은 물론 여러 회사들의 선로가 뒤엉켜서 무척 복잡하다는 얘기는 들은 바 있습니다. 하지만 직접 겪어 보니까 정말 장난이 아니더군요. 딱 한 번만 갈아타면 되는 건데 회사가 바뀔 때마다 다시 표 끊어야 하고, 환승 통로 찾아다니고 하는 게 경험이 없으면 정말 헷갈립니다. 하여간에 일본 그랑프리 기간에 공항에서 스즈카 서킷 가는 길은
  1. 중부국제공항 → 나고야역 (메이테츠 라인) : 8,50엔
  2. 나고야 → 스즈카 서킷 이노우역 (JR 라인) : 1,040엔
이렇습니다. 다 합치면 두 시간이 안 됩니다만 열차비만 2만 원이 넘는다는...




입국심사를 마치고 무빙워크로 나가면 공항 밖으로 나가지 않아도 열차를 탈 수 있습니다. 혹시 리무진 버스 같은 건 없냐고 물어 보니 전에 있었는데 없어졌다고 하네요. 결국은 열차 밖에는 방법이 없다는... 보니까 선착장 가는 길도 있던데, 지도를 보면 바다로 가로질러 가면 스즈카까지 훨씬 가깝습니다. F1 하는 기간만이라도 특별히 배를 띄우는 것도 방법일 텐데... 하여간 밖에 나갈 필요가 없으니 일단 우산을 꺼낼 일은 없을 것 같습니다.




이 열차입니다. 특급 열차가 마침 출발하려던 참이라서 냅다 올라탔습니다. 우리나라는 새마을호 - 무궁화호 - 누리로 이런 식으로 열차 등급에 따라서 돈이 다른데 일본 열차는 그런 게 없더군요. 공항에서 나고야를 잇는 구간도 등급이 다섯 가지나 있습니다만 별도로 표를 끊지 않고 그냥 거리에 따라서만 요금이 달라집니다.




오, 자리가 있네? 야... 널럴하고 편하게 나고야에 갈 수 있겠구나, 하고 자리를 잡고 앉았는데 뭔가 좀 이상합니다. 타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이렇게 자리가 비나? 싶었지요. 가만 주위를 둘러보니까 분위기가 좀 이상합니다. 그때서야 깨달았습니다. 여기는 특실이구나...

그 뒤에야 안 사실입니다만, 이런 곳에 편하게 앉아서 나고야까지 가려면 350엔을 더 내야 합니다. 그냥 표만 끊고 탔을 때도 승무원에게 돈을 더 내면 특별실에서 앉아서 갈 수 있도록 표를 다시 끊어 주는데, 그것도 제대로 모르고 일단 앞칸으로 갔습니다. 그냥 350엔 더 낼 걸...




일반실로 가니 지하철 같은 분위기더군요. 물론 자리는 이미 다 찼고 서서 가야 합니다. 뭐 한 40분만 가면 되니까 까짓거. 이 열차는 가장 윗단계인 뮤-스카이(μ-SKY) 바로 아랫단계인 특급입니다(사실 중간에 '쾌급'이 있긴 한데 실제 다니는 열차는 없더군요). 그래서 중간 중간 몇 개 역은 건너뛰어가면서 섭니다. 역을 보면서 느낀 건... '낡았다'는 생각이었습니다. 지저분하거나 하진 않지만 우리나라의 시골역 같은 분위기랄까요. 어딘가 오래되고 낡아 보이는 느낌입니다.




이런 열차표도 우리나라에서는 진작에 사라진 스타일이죠. 위에서도 얘기했지만 이걸로 등급에 관계 없이 아무 열차나 탈 수 있습니다. 물론 일반실만요.





나고야에 도착했습니다. 이제 메이테츠역에서 나와서 JR역으로 가야 합니다. 아예 밖으로 나와서 JR역으로 가야 합니다. 두 역이 바로 옆에 붙어 있긴 한데 지하 환승통로조차도 없더군요. JR 매표소는 매표소라기보다는 은행 창구 같은 분위기입니다. 매표소 직원이 무척 자세하게 설명해 줍니다. 물론 저는 못 알아듣지만서도...





스즈카로 출발! 객차 안에서는 기관실이 아예 보이지 않는 우리나라와는 달리 이 열차는 기관실이 시원하게 유리창으로 되어 있어서 앞의 풍경을 볼 수 있게 되어 있습니다. 두 칸짜리 열차인데 반 칸은 지정석, 나머지는 자유석입니다. 첫 역에서 많이 내려서 자유석에서도 금방 자리가 나더군요. 메이테츠와는 달리 JR은 우리나라처럼 승차권이 좀 큽니다.




이렇게 기관실이 훤히 들여다 보입니다. 그런데 가끔씩은 앞으로 갓! 하듯이 손을 앞으로 내뻗습니다. 역도 아니고, 앞에 누가 있는 것도 아닌데 그러는 걸 보면 그냥 혼자서 흥에 겨워서 그런 건지, 고객 서비스 차원인지...




열차 밖으로 보이는 풍경으로 두 가지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하나는 정말 경차가 많다는 거. 세워져 있는 차들을 보면 경차가 반은 되는 것 같습니다. 종류도 무척 다양하고요. 차에 대해서 만큼은 우리나라와는 정말 딴판인 풍경입니다. 또 하나는 주택가에서 사람 보기 정말 어렵다는 거. 그야말로 쥐 죽은 듯이 고요한 모습입니다. 공항에서 나고야를 거쳐서 스즈카까지 오는 동안에 주택가에서 사람 모습 본 게 열 명도 안 된 것 같았습니다.





드디어 스즈카 서킷 이노우 역에 도착했습니다. 역시나 낯익은 F1 로고가 선명한 깃발이 주욱 걸려 있습니다. 정말 'F1에 왔구나'란 느낌이 팍팍 들기 시작합니다. 평소에는 영업을 하지 않고 F1 기간에만 영업을 하는 곳입니다. 금요일 연습주행이 끝나서 그런지 주로 돌아가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외국인들도 무척 많은데, 아무래도 서킷 주위에 숙박시설이 그리 많지 않은 데다가 대회 기간에는 비쌀 수밖에 없고, 또 서킷 근처에는 그다지 놀 데도 마땅치 않으니 일단 나고야든 스즈카든 다른 곳으로 갔다가 내일 다시 올 사람들이겠죠.





스즈카 서킷 이노우역에서 서킷까지는 걸어서 약 20분 정도 걸립니다. 셔틀버스 갈은 건 전혀 없기 때문에 그냥 걸어서 서킷까지 가야 합니다. 여전히 비는 추적추적 내리고 있는데 분명 더운 날씨는 아니고 약간 서늘하지만 어딘가 후텁지근하고 땀이 흐릅니다. 사람들이 줄을 지여서 역 쪽으로 내려오는 모습이 보입니다. 그에 비해서 도로는 별로 막히지 않는 모습입니다. 하긴 차 끌고 와 봐야 주차비도 어마어마하고...





당연히 길 주변에는 노점상들도 많습니다. 역시 우리나라랑 비슷합니다. 비싸요... 꼬치 하나에 500엔이라니. 배가 살짝 고프긴 했는데 차마 지갑에 손이 안 갑니다. 어쨌거나 10분 남짓 걷다 보니 드디어, 저 멀리에 스즈카 서킷의 명물인 대관람차의 모습이 어른어른 보입니다. TV에서만 봤던 그 대관람차를 내 눈으로 직접 보니, 정말 일본 그랑프리에 왔구나 싶은 생각이 확 밀려듭니다. 올해로 열 다섯 번째로 F1 일본 그랑프리를 개최하는 곳이자 일본 모터스포츠의 성지인, 스즈카 인터내셔널 레이싱 코스가 바로 저 앞에 있습니다.

두 번째 이야기로 이어집니다. 보시려면 이곳을 누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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