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론 아무리 원수지간 같던 사람들도 죽음 앞에서는 생각이 달라지는 게 인지상정이긴 합니다. 특히나 40년을 동지이자 라이벌로 지내면서 미운 정 고운 정 다 들은 사이일 테니, DJ의 죽음 앞에서 인간적인 애도를 표하는 거야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3당 합당으로 노태우 정권과 야합의 길을 걸은 이후 지금까지 YS가 보여온 모습을 보면 최근 모습은 단순히 인지상정이나 정으로 해석하기에는 너무 과감(?)한 모습입니다. 40년 넘게 정치판에 발을 담그면서 산전수전 다 겪은 YS가 절대 정치적 계산 없이 이런 모습을 보여줄 리 만무합니다.
지금 상황에서 YS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뭐가 있을까요? 아마도 두 가지일 것입니다.
- 민주화를 외치다가 난데없는 3당 합당으로 군사독재 정권과 야합
- IMF 구제금융 사태로까지 경제를 망가뜨린 주범
박정희 시대 때부터 반독재 민주화 투쟁의 선봉에 섰던 원로로서 대접받고 있는 DJ에 비해서, YS는 3당 합당으로 대통령 자리는 얻었으되 민주화 원로란 타이틀은 고스란히 DJ에게 헌납하고 말았습니다. 그 동안 YS가 DJ를 물고 늘어졌던 건 DJ에 대한 대한 컴플렉스라는 측면으로 해석할 수 있고, 다른 한 편으로는 DJ의 라이벌로서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기 위한 측면으로도 해석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DJ가 세상을 떠나는 마당에서는 다른 계산을 할 수 있습니다. 박정희 시대 야당의 거목으로서 반독재 민주화 투쟁에 앞장섰던 두 축이라 할 수 있는 DJ와 YS 가운데 DJ가 세상을 떠난 지금은 그의 타이틀을 물려받아서 '원 톱'으로 나설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 할 수 있습니다. YS로서는 자신이 박정희 시대와 80년대 서울의 봄으로 이어지는 군사독재 시절에 민주화 투쟁에 앞장섰던 한 축임을 부각시킴으로서 자신의 이미지를 회복하고 민주화 원로로서 자신의 입지를 되찾을 수 있는 타이밍인 셈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어떻게든 DJ와 '화해'를 할 필요가 있습니다. DJ의 민주화 역정을 부각시키고 추켜 주면서 자신이 DJ의 '민주화 동지'였다는 점을 부각시킴으로써 DJ 서거로 커다란 빈 자리를 남긴 '민주화 맹주'의 자리를 자신이 채울 수 있을 거라는 계산이 성립하는 것입니다.
물론 DJ의 죽음 앞에서도 입에 담지 못할 소리만 내뱉으면서 최소한 인간이 갖춰야 할 도리마저도 저버린 조갑제나 김동길, 지만원 같은 족속들의 모습보다야 그래도 DJ의 업적을 인정해 주는 발언을 하는 YS가 더 나은 것만은 인정해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YS의 '화해' 메시지가 입에 발린 소리나 정치적 계산이 깔린 소리로 들리지 않으려면, 최소한 온갖 희생으로 이루어진 민주화의 열매를 3당 합당으로 군사독재 정권에 갖다 바친 과오라도 인정하고 반성하는 모습을 보여야 할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서는 그의 '화해'는 진정성이 텅텅 빈, DJ가 내려놓은 '민주화 맹주' 자리에 눈독 들이고 있는 늙은 정치인의 얄팍한 계산 밖에는 되지 않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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