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1은 끊임없는 개발을 동력으로 하는 스포츠입니다. 옛날에는 디자이너들은 시즌이 끝날 때 즈음에 머신 설계를 시작합니다. 몇 달 만에 머신 개발은 완료되고, 어떤 경우에는 한 새시가 여러 해에 걸쳐서 운영되기도 했습니다. 이제는 더 이상 그런 편안한 사이클은 통하지 않습니다. 보통 새시 설계는 1년 전부터 시작됩니다. MP4-22가 1월에 트랙에서 열심히 테스트를 돌리고 있을 때, 팩토리에서는 기술 임원들이 MP4-23에 대한 기본 컨셉을 잡기 시작합니다. 이렇게 치열한 기술 전쟁 속에서, 기술진들은 드라이버 다음으로 중요한 일을 맡고 있습니다. 어쩌면 드라이버보다 더 중요할 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경기에서는 작전을 짜야 하는 경기 감독이 승리의 열쇠를 쥐고 있죠. 연료는 얼마를 넣고 시작할 것인가, 언제 피트 스탑을 할 것인가, 어떻게 페이스 조절을 할 것인가, 이런 결정은 경기 감독의 몫이 될 것입니다.




페라리가 미하엘 슈마허의 챔피언 5연패라는, 전대미문의 기록을 얘기하자면, 슈마허의 양 날개라고 할 수 있는 쟝 토드와 로스 브론을 빼놓을 수가 없습니다. 쟝 토드가 레이스 때 작전과 운영, 전반적인 팀 관리를 맡고 있다면, 로스 브론은 페라리 머신의 설계와 제작을 총괄하는 인물입니다. 이들은 이미 베네통 팀에서 슈마허를 챔피언으로 만들었던 인물들이고, 슈마허가 페라리로 이적했을 때, 이들도 함께 했습니다. 그리고 페라리를 슈마허 팀으로 만들어 버렸지요.

2006년을 끝으로 슈마허가 F1에서 은퇴를 하게 되었습니다. 슈마허를 중심으로 한 드림팀은 과연 2007년에 어떤 모습을 보일지! 사실 2007년은 페라리가 우세할 것으로 전망되었습니다.

첫째로는 타이어 문제. 맥클라렌이나 BMW와 같은 주요 라이벌들은 모두 미쉐린 타이어를 쓰고 있었지만, 미쉐린이 2006년을 끝으로 F1에서 철수하면서 이들 팀은 브리지스톤으로 신발을 바꿔 신을 수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브리지스톤과 밀월 관계였던 페라리가 당연히 큰 이득을 볼 것으로 예상되었습니다.

둘째로는 드림 팀 건재. 비록 슈마허는 은퇴했지만 쟝 토드를 비롯한 주요 멤버들은 계속 페라리에 남아 있기로 했습니다.로리 바인은 F1에서는 은퇴했지만 계속 페라리의 컨설턴트로 남아 있었고, 맥클라렌에게 빼앗겼던 공기역학 전문가 니콜라스 톰바지즈도 다시 페라리로 복귀했습니다. 또한 F2007은 드림 팀이 건재하던 시기에 만들어지고 있었기 때문에, 설령 2007년에 팀 안에서 문제가 생긴다고 해도, F2007은 강할 것으로 예상되었습니다.




그러나, 이 탄탄한 드림팀에 조금씩 금기 가기 시작한 것은 2006년 10월이었습니다. 2006년 10월, 이미 몇 달 전부터 1년 쉰다는 소문이 돌던 로스 브론이 '페라리에서 나가겠다'고 선언해서 충격을 줍니다. 그는 일단 1년 정도 휴식기를 가진 다음에 복귀를 고려하겠다고 했지만, 하지만 페라리로 복귀한다는 말은 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복귀를 고려할 때 일단 페라리와 먼저 얘기를 하겠다는 조건만을 달았습니다. 지금으로서는 혼다 이적설과 같은 몇 가지 소문이 돌고는 있습니다만, 영국 사람인 브론은 영국에 본거지를 둔 팀을 원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물론 페라리로 복귀할 확률이 가장 크고, 은퇴를 선택할 수도 있겠죠.

이렇게 되면서 페라리의 기술 진용에 변화가 생깁니다. 로스 브론의 자리를 채운 사람은 스테파노 도메니칼리인데, 이 사람은 페라리에서 팀 매니저, 물류 감독, 그리고 스포츠 감독을 맡고 있던 인물입니다. 로스 브론과 비교하자면, 아무래도 '기술'이란 면에서는 많이 처집니다. 왜 이 사람이 로스 브론의 후임이 됐지? 싶을 정도입니다. 여기에다가, 페라리 엔진 개발을 책임지고 있던 파올로 마르티넬리는 페라리를 떠나서 모회사인 FIAT로 자리를 옮깁니다.




기술 진용 재편은 과연 성공적이었을까요? 조금씩 생기기 시작한 드림 팀의 금은 이제 수석 미케닉이었던 나이젤 스텝니로 이어집니다. 스텝니 역시도 로리 바인처럼 슈마허를 따라서 베네통에서 페라리로 옮겨 온, 드림 팀의 주요 멤버 중에 하나입니다. 그는 2007년 초에, 기술진 재편에 대해서 드러내 놓고 불만을 터뜨리면서, '나도 쉬고 싶다'는 폭탄 선언을 하기에 이릅니다. 결국 그렇게 되지는 않았지만, 2007년 6월에 페라리는 스텝니를 이탈리아 지방 검찰에 고소하기에 이릅니다. 그 혐의는 아직 확실치 않습니다만, 모나코 그랑프리 전에 레이스 차량 연료 탱크에 이물질을 넣었다는 설, 비품이나 기술을 유출시켰다는 설 같은 것들이 떠돌고 있습니다만, 확실한 것은 페라리와 스텝니는 돌아오지 못할 강을 건넌 셈입니다.

아무튼 이런 파열음 속에서, 2007년 시작은 좋았습니다. 맥클라렌에서 이적한 키미 라이코넨이 데뷔 레이스에서 압도적인 경기력으로 우승을 차지하면서, 2007년도 페리라가 석권할 것이라는 전망에 힘이 실렸습니다. 비록 말레이시아에서는 맥클라렌에게 원-투 피니시 패배를 당했지만,  이후에 바레인과 스페인에서 펠리페 마사가 우승을 거머쥐면서, 다시 페라리가 건재함을 과시했습니다. 특히나 스페인 카탈루냐는 머신의 진정한 성능을 제대로 보여주는 서킷으로 유명하기 때문에, 스페인 그랑프리 우승으로 페라리는 탄력을 받는 듯 했으나... 모나코에서부터 그런 탄력이 틀어지기 시작했죠. 모나코에서 페라리는 맥클라렌에게 충격적인 완패를 당합니다. 비록 마사가 3위로 완주하여 포디움에 섰지만, 1위와 무려 70초 차이라는, 거의 한 바퀴에 가까운 격차를 기록한 굴욕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물론, 모나코는 워낙에 특성이 독특한 곳인 데다가, 워낙에 맥클라렌이 강한 곳이긴 하지만, 70초 격차는 충격적이었죠.

페라리는 고속 특성을 가진 캐나다에서는 자신들이 유리할 것이라고 위안을 하면서 북미 2연전으로 들어갔으나, 여기서도 맥클라렌에게 지고 맙니다. 이제 다시 유럽으로 돌아 와서, 프랑스 그랑프리를 앞두고 있는 지금, 분명한 것은 시즌 초와 같은 머신 이득은 이미 끝났다는 것입니다.

개발 작업은 새 머신을 런칭했다고 끝나는 게 아닙니다. 시즌이 끝날 때까지 끊임없이 개량 작업과 서킷 최적화 작업이 이어집니다. 충격 테스트 문제 때문에 새시의 주요 구조를 바꾸기는 어렵지만, 여러 가지 공기 역학 장치들에 대한 개발, 서스펜션과 파워 트레인을 비롯한 주요 부분들에 대한 계속되는 개발이 시즌 도중에 이어집니다. 따라서 시즌 초에 유리하다고 해서 끝까지 그렇게 된다는 보장은 결코 없습니다. 시즌 중에도 계속 개발에 열중하지 못하면, 결국 다른 팀에게 따라잡히기 마련입니다. 작년 시즌 초에 그렇게 기세 좋던 르노가, 중반부터 페라리에게 추격을 당해서 하마터면 페르난도 알론소가 덜미를 잡힐 뻔한 일은, 시즌 도중에 머신이 얼마나 발전할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일이었습니다. 물론 르노가 매스 댐퍼를 금지당함으로써 받은 불이익도 꽤 컸지만요.

결국 지금 페라리의 내부 조직이 흔들리고 있는 문제는. 시즌 중 머신 개발은 물론 내년도 개발에도 차질을 가져올 수 있습니다. 2005년도에 챔피언십을 차지할 뻔 했던 맥클라렌이, 테크니컬 디렉터인 애드리언 뉴이와 수석 공기역학자 피터 프로드로무가 빠지면서 2006년에 급격하게 무너져 버린 일이 페라리에서도 되풀이 될 수 있습니다. 게다가, 페라리는 슈마허의 카리스마가 워낙에 오랜 시간을 압도했기 때문에 슈마허가 은퇴한 것은 단순히 드라이버 한 사람이 은퇴한 것보다 훨씬 큰 의미를 가집니다.

알론소가 이적하면서 챔피언의 모습을 잃어버린 르노, 슈마허 은퇴를 도화선으로 차례차례 흔들리고 있는 페라리 내부 조직. 과연 이 두 팀이 위기 상황을 잘 극복하고 다시금 정상에 올라설 수 있을까요? 2007년 F1을 보는 또 한가지 포인트입니다.
Posted by MP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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