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포뮬러 1 시즌이 진작에 시작했는데 세 경기만에 드디어 뭔가를 쓰게 됐네요. 그동안 정말 먹고 사느라 바빴습니다. '웃기네, 그럼 다른 글들은 발로 썼냐?'라고 하실지 모르겠습니다만, 사실 F1에 관한 글은 다른 글의 몇 배 공을 들여야 합니다. 워낙에 F1 전문가들이 많아진 상황에서 괜히 헛소리 잘못 했다가는 바로 '글은 글대로 쓰고 욕은 욕대로 먹는' 본전도 못 건지는 굴욕을 당하기 때문에 레이스 리뷰 같은 건 서너 시간은 꼼짝 않고 써야 합니다. '왜 F1 리뷰 안 쓰냐'고 항의하신 분들께서는 부디 제 게으름을 너그러이 봐 주시기 바라며...

아무튼 2009년 포뮬러 1의 뚜껑을 열자, 그동안 중하위권을 맴돌던 팀들의 약진, 특히나 혼다가 철수한 브론 GP의 2연속 폴투윈(예선 1위 → 레이스 1위)은 그야말로 경악스러운 일이었습니다. 게다가 개막전부터 맥클라렌 팀의 거짓말 스캔들에다가 브론 GP를 비롯한 잘 나가는 팀들의 디퓨저를 둘러싼 논란까지 엉키면서 시작부터 정말 시끄럽고 탈 많은 시즌이 되었습니다. 어쨌거나, 디퓨저 논란은 일단 '합법'이라는 판정으로 일단락됐고, 맥클라렌의 거짓말 스캔들은 세계 모터 스포츠 평의회 심리를 앞두고 있습니다(아마도 해밀튼은 무사하고 팀이 덤터기 쓸 것 같습니다만).

원래 중국 그랑프리는 보통 9월에 일본 그랑프리 앞뒤로 놓였습니다만 올해는 말레이시아 그랑프리 다음으로 앞당겨졌습니다. 그러고 보면 F1에서 아시아권이 정말 많은 성장을 이루었습니다. 중동을 빼고도 중국, 일본, 말레이시아, 싱가포르에서 경기가 열리고 중동권인 바레인과 아부 다비까지 합치면 여섯 경기나 됩니다. 내년에는 우리나라에서도 그랑프리가 예정되어 있고, 내후년은 인도 그랑프리도 예정되어 있습니다. 이쯤되면 유럽과 비교해서도 별로 뒤처지지 않습니다. 뭐, 여전히 우리나라에서는 모터스포츠가 비인기 종목이지만 말입니다. (우리나라에서 인기 모터스포츠 종목이란 밤에 멋대로 도로를 막고 외제차들이 불법 드래그 레이스나 하는 양아치짓 정도랄까요)

일단 여기서 잠깐, 디퓨저 논란에 대해서 간략하게 짚고 넘어가 보죠. 디퓨저가 뭔지도 모르는 분들을 위해서 아주 간단하게 얘기하자면 F1 차량 뒷쪽에 붙이는 간단한 공기역학적 장치입니다. 차량 하체와 지면 사이를 타고 흐르는 기류가 이 디퓨저 부분에서 확산되면서 기류의 속도를 빠르게 만듭니다. 이렇게 되면 차량의 다운포스, 곧 양력과는 반대로 차체를 아래로 누르는 힘이 커지고, 이는 차량이 빠른 속도로 코너를 돌 때 차량이 미끄러지지 않고 돌 수 있도록 돕습니다. F1 차량의 특징이라 할 수 있는 앞뒤에 달린 날개도 이 다운포스를 위한 장치죠. 그래서 날개의 방향은 양력을 얻기 위한 비행기와는 반대로 되어 있습니다. 디퓨저는 간단한 장치입니다만 차량 전체의 다운포스에서 30% 넘는 비중을 차지할 정도로 중요합니다.

그런데 올해 들어서 FIA에서 경쟁을 촉진한다는 명목으로 다운포스를 만들어내는 공기역학적 장치들을 대폭 금지시켰습니다. 그래서 바지보드나 윙렛을 비롯한 여러 장치들이 금지되었고, 뒷쪽 날개도 폭이 대폭 줄어들었습니다. 물론 디퓨저도 그냥 놔둘 리가 없죠. 그래서 FIA에서는 디퓨저의 크기를 줄이는 규정을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이 규정에 맹점이 있었습니다. 그 맹점이 뭔지는 좀 복잡한 얘기라서 글을 따로 하나 쓰던가 해야 하는데, 아무튼 그 맹점을 브론 GP와 윌리엄스, 토요타가 교묘하게 이용해서, 규정의 뜻을 그대로 받아들인 팀들보다 훨씬 성능이 좋은 디퓨저를 만들었습니다. 세 팀 모두 지난 해 성적이 형편없었습니다만 올해는 환골탈태, 특히 작년에 시즌을 완전히 망쳤던 혼다 팀이 자동차 산업 위기 속에서 손을 떼면서 결국 단장인 로스 브론이 팀을 인수해서 새롭게 출범한 브론 GP는 그야말로 압도적인 성능을 보이면서 개막전부터 2연속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미하엘 슈마허의 황금기를 기술 쪽에서 이끌었던 인물인 로스 브론이 올 시즌에 그 뛰어난 능력을 제대로 보여준 셈입니다.

반면, 안 그래도 이런저런 금지 때문에 다운포스가 대폭 떨어졌는데 디퓨저에서 이들 팀에 비해 손해를 보게 된 다른 팀들, 곧 페라리, 맥클라렌, BMW와 같은 팀들은 여기에 반발해서 브론 GP를 비롯한 팀들을 제소했지만 결국 기각됐습니다. '그렇다면 바로 디퓨저를 바꾸면 되잖아?'라고 생각하실 수도 있겠습니다만, 그게 문제가 그리 간단치 않습니다. 디퓨저를 바꾸려면 차량 뒷쪽 설계를 그에 맞춰서 다시 해야 하는데, 그러면 기어박스와 뒷쪽 서스펜션, 충격 흡수 구조물을 비롯한 뒷쪽의 여러 가지 부분들이 그에 맞춰서 바뀌어야 합니다. 그렇게 되면 FIA 충돌 테스트도 다시 받아야 합니다. 한마디로 장난 아니죠. 그나마 페라리나 맥클라렌, BMW 자우버 같은 돈 많은 팀들이야 개발비 쏟아부어서 개발하면 된다지만 돈 없는 팀들은 그야말로 대책이 없는 상황입니다. 아마 돈 많은 팀들도 빨라야 스페인 그랑프리 때는 돼야 합법으로 판정된 디퓨저를 들여올 수 있을 듯합니다.

하지만 F1 팀들이 또 어떤 팀인가요? 합법으로 판정난 디퓨저를 바로 장착하지는 못하지만 차량 설계를 바꾸지 않아도 어느 정도 이득을 볼 수 있는 방법들을 모색한 맥클라렌과 르노 팀에서는 이번 중국 그랑프리에서 약간 달라진 디퓨저를 선보였습니다. 어쨌거나 이른바 '디퓨저 갱'이라고 부르는 브론 GP와 윌리엄스, 토요타는 확실히 작년과 비교해서 훨씬 좋은 성적을 내고 있습니다. 그리고 다른 팀들은 이를 뒤쫓아야 합니다. 과연 디퓨저에 변경을 준 맥클라렌과 르노가 이를 뒤쫓는 첫번째 주자가 될 수 있을까요? 그리고 또한 KERS를 장착하기로 한 BMW 자우버의 쿠비차, 그리고 이번 경기에서는 KERS를 떼기로 한 페라리와 르노는 또 어떻게 달라질까요? 그리고 과연 브론 GP의 젠슨 버튼은 3연속 폴 포지션, 3연속 우승으로 확실하게 챔피언십 경쟁에서 초반 해트트릭으로 기선 제압을 할 수 있을까요? 결과는 결국 트랙에서 벌어질 것입니다.
Posted by MP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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