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들어서 포뮬러 1 바닥에 굉장히 행복한, 하지만 한편으로는 전혀 행복하지 않은 고민을 하는 분이 있습니다. 그 이름하여 맥클라렌의 보스인 론 데니스 선생!



요즘 이 분 정말 행복합니다. 시즌 전에는 올해 맥클라렌이 꽤나 고전할 거라는 예상이 많았습니다. 일단 드라이버 두 명이 모두 바뀐 데다가, MP4-21은 영 꽝이었고, 게다가 미쉐린이 F1을 떠나는 바람에 브리지스톤으로 신발을 갈아 신어야 할 판이니, 다리돌(Bridgestone)과 오랜 밀월 관계를 가지고 있던 페라리가 당연히 올해는 압도할 거라는 예상이 많았다 이거죠. 2007년 개막전 호주 그랑프리에서, 맥클라렌에서 5년을 머물렀지만 결국 타이틀 우승에 실패하고 하필이면 맥클라렌이 영 싫어하는 페라리의 프란싱 호스를 탄 키미 라이코넨이 압도적인 우승을 나꿔채면서 그런 우울한 예상은 현실이 되는 듯 했습니다. 그러나... 시즌 6전이 끝난 지금. 맥클라렌과 페라리가 세 번 우승을 나눠 가졌고, 맥클라렌은 두 차례나 원투 피니시를 기록했습니다. 거기다가 지금까지 두 드라이버가 모두 포인트를 따냈고, 괴물 신인 루이스 해밀튼은 단 한번도 포디움을 놓친 적이 없는 놀라운 일을 해 내고 있지요. 덕택에 캐나다 그랑프리가 끝난 상황에서 루이스 해밀튼과 페르난도 알론소가 드라이버 챔피언십 1, 2위를 기록하고 있고, 컨스트럭터 챔피언십에서도 맥클라렌이 페라리를 20점 넘게 앞서면서 1위를 달리고 있습니다. 보다폰을 타이틀 스폰서로 맞아 들인 첫 해, 맥클라렌으로서는 지금까진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는 상황입니다.

그런데 뭐가 도대체 행복하지 않는 고민이냐! 맥클라렌 드라이버들이 5위냐 6위냐, 뭐 이런 상황이라면 별 문제가 없었겠지만, 드라이버 챔피언이 조금씩 또렷해지니까 두 드라이버가 서로 잡으려고 난리를 피우고 있기 때문이죠. 덕분에 드라이버들이 말 실수를 여러 차례 하고, 시끌시끌한 논란이 많아지면서 자칫 최고의 커플이자 최악의 커플이었던, 아일톤 세나와 알랭 프로스트 시절을 떠올리게 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그 출발은 루이스 해밀튼이었습니다. 모나코 그랑프리가 끝난 다음에, 첫 피트스탑을 예정보다 일찍 한 것과 피트스탑 뒤에 순위를 유지하라는 지시를 받은 것에 대해서, 기자 회견에서 의혹을 제기하면서 파문을 일으켰죠.

결국에는, 나는 신인입니다. 나는 포뮬러 1에서 첫 시즌이고 내 첫 모나코 그랑프리에서 2위로 완주했으니까 불평할 수는 없지만, 내가 페르난도와 비슷한 페이스였다는 걸 본 일은 내게는 긍정적입니다. 하지만 이는 내가 안고 살아야 할 그 무엇인가입니다. 나는 넘버 2를 내 차량에 받았습니다. 나는 넘버 2 드라이버입니다.

데이먼 힐 이후에, 10년 만에 영국인 챔피언을 기대하고 있던 영국 언론들이 벌떼같이 들고 일어나서 론 데니스의 뒷통수에 벌침을 갈겨대기 시작했습니다. 그 바람에 FIA에서 팀 오더 의혹에 대한 조사에 착수하는 사태로 번졌습니다. 물론 조사 결과는 무혐의였지만, 론 데니스로서는 상당히 체면을 구기는 사태였습니다. 아마 해밀튼, 론 데니스한테 많이 혼났을 겁니다. "이 자식이 배은망덕도 유분수지!"

2라운드는 페르난도 알론소로 넘어갑니다. 캐나다 그랑프리에서 여러 차례 실수와 불운, 거기에 페널티까지 겹쳐서 7위에 머무르고, 게다가 수퍼 아구리의 사토 타쿠마한테 앞지르기를 당하는 굴욕을 겪은 뒤에, 맥클라렌이 해밀튼을 편애하고 있다는 듯한 뉘앙스를 주는 말을 했습니다.

나는 영국 팀에서 영국 팀 동료와 함께 있으며, 그는 훌륭한 일을 하고 있고, 우리는 모든 지원과 도움이 그에게 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으며, 나는 시작 때부터 이를 이해했습니다.

이해한다고는 했지만, 이게 또 듣는 스페인 기분 나쁘죠. 스페인 언론들이 또 들고 일어나서 맥클라렌이 해밀튼을 편든다는 식으로 기사를 써대는 겁니다. 론 데니스로서는 환장할 일이죠. 해밀튼이 입을 열면 영국에서 난리를 치고, 알론소가 한 마디 하면 스페인에서 들고 일어나니 말이죠.

물론 드라이버들 사이에 라이벌 의식은 서로 경쟁을 불러 일으켜서 더 좋은 성적을 거두는 데에 도움이 됩니다. 사실 탑 클래스 드라이버 둘이 팀 동료가 될 경우에 그다지 사이가 좋은 경우를 별로 못 봤죠. 다른 팀 선수한테 지면 머신 탓, 작전 탓, 뭐 이렇게 남탓할 여지가 있지만, 같은 머신 타고 같은 팀에서 경기를 하면 이런 핑계가 통할 리가 없지 않겠습니까?

지레짐작해 보는 알론소의 머릿속.

아이씨, 맥클라렌에서 3연속 월드 챔피언 좀 해 보려고 했더니, 저 녀석 왜 저렇게 잘해? 그리고 영국에서는 아주 해밀튼이라면 껌벅 죽고 말이야. 거기다가 맥클라렌은 영국 팀인데다가, 해밀튼 저 녀석, 열 세 살 때부터 맥클라렌한테 지원을 받았으니까 사람들하고도 더 친하고, 이거 이러다가 이 월드 챔피언님이 신인한테 깨지고 완전 웃음거리 되는 거 아녀? 사람들이 또 그럴 거 아녀, '알론소 저 인간, 월드 챔피언은 머신빨이었네'라고. 우 열받아...!

한편 해밀튼.

알론소 당신이 월드 챔피언이면 다야? 나는 맥클라렌의 황태자, 루이스 해밀튼 님이라구! 봤지? 내가 얼마나 잘 하는지. 잘 하면 내가 신인이 월드 챔피언에 등극하는, F1 역사에서 전무후무한 일을 해 낼 수도 있거든? 나머지 드라이버들은 신인한테 깨진 다 바보 되는 거지 뭐. 그럼 나는 F1 역사에 길이 길이 남을 텐데... 아... 진짜 이번에 꼭 해야 되는데... 그런데, 맥클라렌이 챔피언을 데려올 때는 뭔가 이러저러하게 밀어 주겠다는 정도 얘기는 하지 않았겠어? 나도 언제 실수 제대로 해서 리타이어할 지, 아니면 슬럼프에 빠질 지 모르는데, 불안불안하네... 그 전까지는 포인트 팍팍 따 놔야 되는데... 아 맘이 급하네...

맥클라렌은 이 팀을 좋아하던 그렇지 않던, 적어도 드라이버들을 공평하게 대우해 주는 것만큼은 인정을 받는 팀입니다. 언제나 똑같은 머신을 제공하고, 똑같은 수준을 가진 엔지니어들을 붙여 주고, 론 데니스가 항상 말하듯이, 한 드라이버가 "산수 계산을 해서 타이틀이 불가능하게 될 때까지는" 절대 팀 오더를 내지 않는 팀입니다. 하지만 이런 공평함은 항상 의심을 받고, 한쪽이 성적이 떨어진다던가, 레이스 결과가 기대에 미치지 못할 때는 좋은 핑곗거리로 종종 공격을 받게 마련입니다. 미카 하키넨 - 데이빗 쿨타드 시절에도 쿨타드가 가끔 공평함에 대해서 의심을 품는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머신보다는 사람과 지원에 대한 문제를 가지고 의심을 여러 번 품곤 했죠. 환장할 노릇인 겁니다. 차라리 슈마허 시절 페라리처럼 대놓고 한 쪽을 밀어주는 식이었다면, 의심은 안 받을 거 아니겠습니까?

이건 뭐, 나름대로 똑같이 대우해 준다고 노력하는데도, 끊임 없이 태클에 걸리니 말입니다. 물론, 론 데니스로서는 사이 나쁜 두 챔피언이, 사이 좋은 시시껄렁한 드라이버들보다는 백만 배 나을 것입니다. 그 사이 나빴던 세나 - 프로스트 시절이 맥클라렌 역사에서는 가장 빛나는 시절이었으니까요. 그래요, 알론소 - 해밀튼. 사이 나빠도 좋으니까 월드 챔피언을 잡아 먹으라구요.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올해는 알론소가 먹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라이벌이자 경쟁자로서 최선을 다하길 바라겠습니다. 뭐 론 데니스 머리도 다 빠져겠다, 고민해 봐야 더 빠질 머리도 없습니다. 단, 세나 - 프로스트 때처럼 자기들끼리 자존심 싸움 하느라 들이받고 리타이어 하고, 그러진 말고요.

아무튼 괴로워하는 데니스 형님을 위해서, 허접 실력으로 만든 그림 하나 바칩니다.


Posted by MP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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