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 철거민 참사의 수사가 슬슬 철거민들에게 모든 책임을 전가시키는 쪽으로 가고 있습니다. 총 책임자라 할 수 있는 김석기 경찰청장 내정자도 돌아가는 상황을 보니까 여론 눈치 살살 보면서 누그러지면 눌러 앉을 모양입니다. 그래서 보수언론에서는 날마다 철거민 참사를 '불순'하게 몰아가고 있습니다. 사실 어제 오늘 일이 아닙니다. 이런 종류의 일에 늘 등장하는 레퍼토리가 '순수' 타령입니다. 순수하지 못하면 불순해지고, 불불순해지면 나쁜 것이 됩니다. 그렇다면 대한민국에서 순수하게 살기 위해서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지금까지 순수 타령을 그렇게도 해 오신 분들의 말을 종합하자면 이렇게 살아야 합니다.
  • 어떤 단체, 어떤 '제3자'의 도움도 받아서는 안 됩니다. 모든 일은 오로지 당사자 혼자서만 해야 합니다. 어떤 도움이라도 받는 순간, 아무리 정당한 주장을 해도 무조건 불순해집니다.
  • 문제의식을 공유하는 사람들끼리 단체를 결성해서는 더더욱 안 됩니다. 단체는 그 존재 자체만으로도 불순하기 때문에 단체를 만들거나 집단 행동을 하면 내용에 상관 없이 무조건 불순해집니다.
  • 정치 문제를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어떤 문제를 단순하게 풀 수가 없고, 결국 정치의 문제로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하더라도 정치는 오로지 고매하신 정치인들의 전유물이기 때문에 감히 백성들 따위가 정치를 건드리는 순간 무조건 불순해집니다.
  • 때리면 그냥 맞아야 합니다. 경찰이 아무런 무장도 없는 여성을 군홧발로 짓밟고 운동화로 짓밟거나 말거나, 용역 깡패들이 연장을 들고 철거민들을 덮치거나, 그냥 때리면 맞아야 순수입니다. 그 상대가 합법이든 불법이든, 아무튼 공권력이나 기득권의 앞잡이들에게 걔기면 무조건 불순해집니다. 맞아 죽어도 그냥 맞아야 순수할 수 있습니다. 순수는 목숨 바쳐 지켜야 하는 고결한 것이기에.
알고 보면 순수하게 사는 거, 굉장히 쉽습니다. 권력이나 기득권자들에게 부당한 일을 당해도 피곤하게 맞서 싸울 필요 없이 입 다물고 술이나 마시면서 자신의 무능력을 탓하면 그만입니다. 내 밥줄이 걸린 문제 앞에서도 힘들게 행동하기보다는 고결한 법질서를 위해서 조용히 이 한 몸 희생하면 됩니다(그런 분들께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서 절대 보상이나 감사 표시 같은 거 없습니다). 뭐하러 피곤하게 단체를 만들고 연대를 하나요? 어차피 인생은 혼자서 왔다가 혼자서 가는 것입니다. 그냥 고독을 씹으면서 개인 플레이 하면 됩니다. 정 혼자서 힘들다면 가나 초콜릿이라도 씹으시면 고독마저도 감미로울 수 있습니다. 그냥 나는 이 나라의 주인이 아니라 노예다, 하고 생각하시고 한 세상 '순수하게' 살다가 가시면 됩니다.

순수한 대한민국, 여러분들의 참을성과 노예근성으로 이루어집니다.
Posted by MP4/13

BLOG main image
Drive with your sense. by MP4/13
Add to Technorati Favorites

카테고리

분류 전체보기 (1202)
광속질주 (205)
취생몽사 (160)
주지육림 (3)
독서삼매 (10)
음담패설 (28)
전광석화 (146)
우매상자 (66)
포장후면 (20)
악마사전 (6)
팔도유람 (20)
혹세무민 (508)
일상포착 (30)
Total : 3,916,413
Today : 90 Yesterday : 8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