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지하철이나 버스를 타다 보면 사람들이 많을 때 어쩌다가 남의 발을 밟게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물론 아차, 싶은 마음에 "죄송합니다"라고 한 마디 하게 마련입니다. 그것에 대해서 지금까지는 별 생각을 안 했습니다. 늘 그래왔으니까요.

그런데 요즘 들어서 이상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가 발을 밟혔을 때, 상대방이 미안하다고 말하는 것을 거의 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얼마 전에도 하이힐 뒤축으로 세게 발을 밟힌 적이 있었습니다. 구두에 자국이 날 만큼 세게 밟혔는데도 발을 밟은 여성은 "어머" 하더니 그냥 고개를 돌려버리더군요. 얼마 뒤에도 발을 밟히고 나니 역시 상대방은 "이런..." 하더니 마는 겁니다. 좀 화가 나더군요. 분명히 남의 발을 밟은 걸 아는데, 미안하다는 말 한 마디 없이 외면하다니, 생각 같아서는 확 진단서라도 끊어서 따지고 싶었지만 부질 없는 공상이죠.

그 뒤로 가만 생각해 보니 지나가다가 남의 어깨를 치거나, 전철이나 버스에서 내리기 위해서 사람들의 틈을 억지로 비집고 갈 때, "미안합니다"라든가 "실례합니다"라는 말을 하는 사람을 별로 못 봤습니다. 지난 번에 중년 아주머니 한 분이 제 발을 밟고 나서 "어머, 미안해요"라고 말씀을 하시는데, 당연한 얘긴데도 괜히 고마운 마음이 들더군요. 요즘은 인심이 팍팍해져서 사람들이 정이 메말라가네 어쩌네 그런다지만, 보통 인심이 팍팍해지면 그 빈 자리에 매너라도 들어오는 법입니다. 그런데 정은 메마르고, 그렇다고 매너도 없고, 왜 이렇게 되어가나 싶더군요. "죄송합니다"를 입에 달고 사는 제가 멍청한 건지 모르겠습니다. 미안하다는 말 한 마디, 그게 그렇게 자존심이 상하는 걸까요? 남에게 지는 거라고 생각하는 걸까요?

하긴 그게 어디 일상생활에서만 일어나는 일은 아닐 겁니다. 용산에서 점거 시위 진압 참사가 나고, 한승수 총리는 곧바로 이에 대한 성명을 냈습니다. 언론에서는 한승수 총리의 성명에 대해서 '유감을 표명하고 유가족들을 위로'하는 성명을 냈다고 보도했습니다. 하지만 막상 내용을 들어보면 그게 유가족을 위로하라고 낸 성명인지, 유가족들 엿먹으라고 내는 성명인지를 모르겠습니다. 유감은 짧고 불법과 폭력 타령은 길었습니다. 어쨌거나 사람이 여섯 명이나 죽었는데 미안하다는 말 한 마디가 그리도 어려운 지 자존심 세우기에 정신 팔린 성명을 들으면서 유가족들이 위로는 커녕 화만 돋울 것만 같았습니다. 여름 내내 촛불 시위가 줄을 이어도, 경제 정책 실패로 서민들이 위기에 몰려도, 도대체 사과하는 사람은 없고 내가 뭘 잘 못했느냐는 목에 깁스한 사람들 뿐입니다. 국민들이 주인이라고 하건만, 왜 주인에게 "미안합니다"는 말 한 마디 하기가 그리도 어려운 걸까요.

법이니 질서니 이전에, 우리 사회를 지탱하고 윤기나게 유지시켜 주는 덕목은 아마도 배려일 것입니다. 미안하다는 말 한 마디, 그건 상대방에게 지거나 자존심 상하는 말이 아니라, 상대방을 배려하고 아량을 베푸는 넉넉한 한 마디가 아닐까요. 서로 자존심만 찾고 미안하다는 말에 인색하다면 결국 소통도 통합도 없을 것이고, 과격과 극단만이 넘쳐날 수밖에 없겠지요.
Posted by MP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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